라인 랩 연구원 사일런스와 엔지니어링과 메이어는, 컬럼비아 국경의 조용한 바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약속한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고, 대신 정체불명의 내부 회선 통신 한 통이 걸려왔죠. '앤소니가 당신 손에 있고, 당신이 그의 탈옥을 도왔단 걸 알고 있어.'
그렇게 나타난 사람이 라인 랩 생태과 주임 뮤엘시스였어요. 이 바를 통째로 빌렸다며 웃었죠. 넉 달 전, 주립 맨스필드 형무소에서 있었던 탈옥 사건을 낱낱이 캐묻기 위해서였어요.
사일런스는 그 탈옥의 설계자였어요. 하지만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뮤엘시스는 이미 알고 있었죠. 이 탈옥에는 사일런스조차 몰랐던 이름이 하나 더 있었다는 걸.
1. 술집을 통째로 빌려서 하는 취조, 술값은 안 받습니다
뮤엘시스는 생태과 주임이라고 자기소개부터 했어요. 규칙은 간단했죠. 질문 하나에 대답 하나, 서로 번갈아 가면서.

사일런스는 메이어를 먼저 부엌으로 보냈어요. 아직 메이어에게는 이 사건의 배후에 라인 랩 에너지과가 있다는 걸 말하지 않았거든요.
몰락한 사이몬 컴퍼니의 외동아들 앤소니. 그 가문을 무너뜨린 건 벙커힐 시티의 건재업체 하이드브로였고, 하이드브로 뒤에는 에너지과 주임 퍼디낸드가 있었어요.

2. 신입 사기꾼, 카드빨로 감옥부터 접수하다
카프카는 사기꾼이었어요. 감옥에 들어가자마자 카드 도박으로 죄수들 코 묻은 돈부터 털었죠.

이 감옥은 이동식이었어요. 감염되지 않은 죄수는 A구역, 감염자는 B구역, 흉악범만 가두는 탑이 C구역이었죠.
형무관들은 죄수들끼리의 패싸움을 오히려 내기거리로 즐겼어요. 이기는 쪽 식사가 더 좋아진다나요. 카프카는 그 틈에 숨어 이곳저곳 정보를 캐냈죠.
그리고 C구역 탑에서, 카프카는 마침내 그 이름을 들었어요. 앤소니, 감옥에서 가장 강하면서 가장 예의 바른 죄수, 형무관조차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요.
3. 위장 잠입 킬러, 출근 첫날 남의 싸움에 휘말려 기절하다
로빈도 그 무렵 감옥에 들어와 있었어요. 표면적으로는 청소부, 실은 앤소니를 노리고 온 살인청부업자였죠.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고 병까지 얻자, 로빈은 치료비를 위해 이 일을 받아들였어요. 그렇게 청소 임무를 따내 앤소니의 방까지 들어가는 데 성공했죠.
그런데 정작 손을 쓰기도 전에, 전혀 다른 자객 팀이 먼저 들이닥쳤어요. 앤소니를 노린 또 다른 킬러들이었죠.

싸움에 휘말린 로빈은 순식간에 기절했어요. 정신을 잃기 직전 마지막으로 본 건, 자신을 감싸는 낯선 죄수의 등이었죠. 앤소니였어요.
4. 목숨 구해준 은인에게 대뜸 탈옥을 부탁하는 남자
사실 카프카는 기절한 척이었어요. 다들 정신을 잃은 틈에, 앤소니에게 살짝 말을 걸었죠. '카프카라고 불러. 널 도우러 왔어.'
카프카는 진실을 전했어요. 사이몬 컴퍼니는 오리지늄 밀수죄로 이미 압류됐고, 가족들은 전부 벙커힐 시티 감옥에 복역 중이라고.
앤소니는 옆 테이블을 내리쳤어요. 물건들이 와르르 쏟아졌지만, 그는 곧 담담하게 말했죠. '가족들이 죽지 않은 것만으로도 기쁩니다.'
그리고 고개를 숙였어요. '제가 탈옥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6년 만에 처음으로, 이 감옥에서 가장 자유로운 죄수가 자신의 진짜 소원을 말한 순간이었어요.
5. 사일런스가 짊어진 죄책감, 그리고 두 도둑의 뒷담화
그런데 애초에, 사일런스는 왜 이런 무모한 일을 벌인 걸까요. 취기가 오른 김에 그녀는 결국 털어놨어요.
라인 랩에서 있었던 '다이아볼릭' 사태. 실험체 이프리트가 감당 못 할 일을 겪었고, 사리아는 모든 책임을 지고 회사를 떠났어요. 사일런스는 그 뒷수습을 보며 처음으로 라인 랩을 의심하기 시작했죠.
로도스 아일랜드로 옮긴 뒤, 그녀는 선생님이 예전에 남긴 자료를 다시 들여다봤어요. 그러다 사이몬 가문의 몰락에 얽힌 흔적을 찾아낸 거예요. 원래는 그냥 심심풀이 삼아 시작한 일이었는데.
로도스 아일랜드의 켈시에게 조언을 구했을 때, 그녀가 해준 말은 딱 하나였어요. '자신이 좋은 일을 하고 있단 생각을 끝까지 관철할 수 있길 바란다.'
취한 사일런스는 결국 메이어 앞에서 무너졌어요. '난 줄곧, 노력만 하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이번엔, 해결할 용기가 없을까 봐 무서워.'
한편 감옥 지하에서는, 카프카가 청소부로 위장한 미나와 몰래 만나고 있었어요. 미나는 예전에 앤소니가 자기 가족을 구해준 적이 있었지만, 지금 앤소니는 그때와 다른 사람 같다며 씁쓸해했죠.
카프카가 사일런스를 돕는 이유는 간단했어요. '사일런스는 좋은 사람이니까.' 미나가 지적했죠. 그 좋은 사람을 돕는다면서 정작 하는 일은 남의 탈옥 아니냐고.
아무리 좋은 생각을 갖고 있어도 하는 짓이 나쁜 짓이면, 좋은 사람이라 할 수 없잖아? 그럴 바에야 차라리 처음부터 자기를 나쁜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편이 낫지.
— 카프카
6. 제셀톤, 로빈에게 원수의 진짜 이름을 알려주다
그런데 로빈에게는 또 다른 그림자가 있었어요. 감옥에서 형무관 행세를 하던 남자, 제셀톤. 그도 사실 앤소니를 노리는 킬러였고, 앤소니가 로빈에게 탈옥을 제안하는 순간을 몰래 엿들은 참이었죠.
제셀톤은 로빈에게 진실 하나를 던졌어요. 로빈의 아버지 회사 블랙클라우드를 무너뜨린 게, 다름 아닌 사이몬 가문의 마지막 발악이었다고.
고통은 평등한 것입니다. 당신의 고통이 앤소니의 고통보다 못하다고 할 수 있나요?
— 제셀톤
로빈은 대답 대신 침묵했어요. 아버지의 수술비, 앤소니가 해줄 수 없는 것들, 제셀톤이 해줄 수 있는 것들. 결국 그녀는 짧게 답했죠.
'……함께 하겠어.'
7. 장의사는 왜 6년째 감옥 밖을 못 나가나
탈옥 계획도 손에 잡혀갔어요. 감옥은 산 모양으로 지어진 인공 구조물이었고, 한가운데 C구역 탑은 지하로 가라앉는 구조였죠.

탑 꼭대기 관제실에서 트랩을 작동시켜 탑을 가라앉히고, 전기를 끊어 혼란을 일으킨다. 그리고 돔마가 파놓은 땅굴로 빠져나간다. 그게 계획이었어요.
그런데 정작 팀의 일원인 돔마는, 함께 떠날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이 감옥에서 나고 자라 단 한 번도 밖에 나가본 적이 없었거든요.
'난 밖으로 나가는 게…… 두려워.' 돔마가 말했어요. 그러면서도 앤소니의 탈옥만큼은 목숨을 걸고 도울 생각이었죠. 로빈이 그런 그녀를 다독였어요.
'당신이야말로 더 나은 삶을 살아야 해.'
8. 실행일, 로빈만 나타나지 않았다
청소 담당으로 위장해 탑에 오르기로 한 날, 로빈만 나타나지 않았어요. 카프카는 초조해하며 중얼거렸죠. '탓하려면, 이렇게 긴박한 순간에 없었던 너 자신을 탓해.'
카프카와 앤소니는 예정대로 관제실로 향했어요. 버튼을 잘못 눌러가며 겨우 트랩을 작동시켰죠.

바로 그때 로빈이 나타났어요. 예비용 카드로 몰래 뒤따라온 거였죠. 폭발과 함께 전력이 나가고, 탑이 굉음을 내며 지하로 가라앉기 시작했어요.
엘리베이터 안으로 로빈이 떨어지려던 찰나, 앤소니가 그녀를 붙잡았어요. '어금니 꽉 무세요, 혀 깨물지 말고!' 캄캄한 어둠 속에서, 탑은 그렇게 지하로 내려앉았어요.
9. 배신자의 진짜 선택
정전된 복도에서, 로빈은 결국 다 털어놨어요. 자신을 감옥에 보낸 사람도, 아버지 회사가 무너진 진짜 이유도, 그리고 지금 이 선택도.
'너무 지쳤어. 난 어떤 일이 맞고 틀린 건지, 좋고 나쁜지 판단하고 싶지 않아. 왜 그래야 하는 건데!' 로빈이 외쳤어요.
당신은 선택권을 다른 사람의 손에 넘겨서는 안 됩니다. 우린 스스로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어요.
— 앤소니
자신도 실수가 두렵지만, 그렇다고 선택을 피할 순 없다고 앤소니는 덧붙였어요. 로빈은 한참을 그 말을 곱씹었죠.
그런데 그 복도 끝, 돔마의 방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아니, 날 찾지 못할 거란 걱정은 마세요. 난 이곳에서 당신들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10. 카운트다운, 그리고 철판 뒤덮인 사나이
돔마의 방에는 제셀톤이 죄수를 시켜 그녀를 인질로 잡은 채 기다리고 있었어요. '5초 드리죠, 로빈 씨.' 그가 카운트를 세기 시작했어요.
3, 2…… 로빈이 마침내 발걸음을 내디뎠어요. 천천히 앤소니에게 다가갔죠.
그러나, 그녀의 비수가 향한 곳은…… 앤소니가 아니었어요. 돔마를 붙잡고 있던 죄수의 목이었죠.
제셀톤의 손이 검게 물들며 칼날로 변했어요. 오리지늄 아츠로 철을 다루는 데다, 피부 밑에는 라인 랩 기술로 만든 금속판까지 심어 놨더군요.

'당신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힘이 충분히 드러나는 사람이었어요. 그 가식적인 모습을 벗어던지는 순간이 기대됐거든요.' 제셀톤이 몰아붙였어요.
앤소니는 대답 대신 마지막 힘을 쥐어짰어요. '당신은 내 본성을 판단할 자격이 없어!!!' 하지만 아무리 부딪혀도, 그 손은 꿈쩍하지 않았죠. '곧 다른 경호원이 몰려올 겁니다. 당신들의 탈옥 계획은 여기까지인 거 같군요.'
그때, 낯익은 목소리가 끼어들었어요. '유감스럽지만 죽음의 신은 당분간 오지 않을 거다.' 순찰 중이던 형무관 하나가 가면을 벗듯 정체를 드러냈어요. 라인 랩 방위과 주임, 사리아였죠.

제셀톤의 검은 칼날과 사리아의 하얀 칼날이 부딪쳤어요.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밀리는 건 언제나 제셀톤 쪽이었죠.

쓰러진 제셀톤을 뒤로하고, 사리아는 앤소니에게 낯선 이름 하나를 물었어요. '퍼디낸드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 있나?' 앤소니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아버지가 종종 입에 담던 이름이었으니까요.
그런데 그 은인, 원래는 뮤엘시스의 카드였습니다
이야기를 다 들은 뮤엘시스는 한숨을 쉬었어요. '사리아 씨가, 왜, 맨스필드에, 나타난 거냐고!'
사일런스가 되짚어봤어요. 사리아는 원래 뮤엘시스의 협력자였고, 앤소니라는 카드를 손에 넣자 약속을 어기고 로도스 아일랜드로 넘겨버린 거라고.
뮤엘시스는 순순히 인정했어요. '정답. 사리아 씨한테 한 방 먹은 거지.' 그러고는 이번엔 사일런스에게 거래를 제안했어요. 앤소니를 넘겨주면, 라인 랩으로 돌아갈 기회를 주겠다고.
사일런스는 딱 잘라 거절했어요. '내게 있어 앤소니는 하나의 단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이야. 미래의 카드로 곁에 남겨두는 게 아니라, 그를 돕는 게 맞다고 생각해.'
협상이 결렬되자 뮤엘시스가 웃었어요. '설마 그렇게 순순히 놔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 순간, 사일런스가 숙소에 남겨뒀던 앤소니를 불러냈어요. 애초에 컬럼비아를 떠났다는 건 거짓말이었거든요.
만약 당신이 옳은 일을 하고 싶다면, 우선 무엇이 옳은 일인지 알아야 해. 그리고, 옳은 일을 한다고 해서 대가가 없는 건 아니란 것도.
— 뮤엘시스
뮤엘시스는 마지막 충고를 남기고 물처럼 흩어졌어요. 대화 내내 마주 앉아 있던 건, 그녀의 아바타였을 뿐이었죠.
바에 남은 건 사일런스, 메이어, 그리고 앤소니 세 사람뿐이었어요. 넉 달 전 걸려온 통신 한 통이, 결국 한 사람을 감옥이 아니라 로도스 아일랜드로 데려온 셈이었죠.
'로도스 아일랜드는 어떤 곳일까요?' 앤소니가 물었어요. '여기서 거긴 갈 길이 머니까, 천천히 설명하지.' 단서가 아니라 사람으로, 그렇게 새로운 여정이 시작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