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비아 트리마운츠의 라인 랩은 아홉 명의 주임이 다섯 개 연구과를 나눠 맡는 대형 오리지늄 아츠 기업이에요. 이 이야기는 그중 세 사람이 동시에 실종되며 시작됩니다.
생태과 주임 뮤엘시스는 자동 응답기에 다급한 메시지만 남기고 사라졌고, 오리지늄 아츠 응용과 주임 도로시와 그 조수 엘레나는 신규 실험 기지에서 자취를 감췄어요. 방위과 전 주임 사리아가 도움을 청한 상대는 로도스 아일랜드였습니다.
그런데 기지에 도착한 오퍼레이터들이 마주한 건 인질극도 실험 사고도 아니었어요. 실종자 전원이 제 발로 걸어 들어간 낙원이었죠.
1. 자동 응답기에 남긴 마지막 말
사건은 라인 랩 총괄의 개인 사무실 자동 응답기에서 시작돼요. "큰일이야, 크리스틴. 나, 아무래도 사고를 친 것 같아……" 뮤엘시스의 목소리였어요.
……크리스틴,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어…… 만약 그 사람이 아직 살아 있다면 우리는……
— 뮤엘시스
메시지는 거기서 끊겨요. 실제로 뮤엘시스는 그날 밤 정체불명의 여성에게 붙잡혀, 라인 랩 기밀을 캐묻는 심문을 당하고 있었거든요.
뮤엘시스가 입을 다물자 여자는 짧게 한마디만 남겨요. "처리해." 그리고 거대한 기동 장갑이 나타나 그녀를 덮칩니다.
다음 날, 사리아는 뮤엘시스와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에서 허탕을 쳐요. 대신 받은 건 실종 통보였고, 사리아가 도움을 청한 곳은 로도스 아일랜드였습니다.
정비사 메커니스트와 함께 현장에 도착한 박사는 심드렁한 브리핑부터 듣게 돼요. "난 정비사지 탐정의 조수가 아닌데……"라면서도 결국 따라나서죠. "내일 본함으로 돌아가서 내 사랑하는 작업대를 볼 수 있기를."
개척대 대장 사니, 조수 엘레나, 실험실 주임 도로시까지, 359호 기지에서 세 사람이 동시에 사라졌다는 것도 이때 알게 돼요. 골목을 뒤지던 둘은 곧 에너지 무기의 매복을 받습니다.
2. 359호 기지, 그리고 다정한 상사
기지 안에서는 전혀 다른 하루가 흘러가고 있었어요. 도로시의 조수 엘레나는 감염자 동료 조이스에게 커피를 건네고, 신입 연구원의 넋두리를 들어주는 평범한 아침이었죠.
도로시는 개척자들에게 몰래 발열 모듈을 만들어 챙겨주는 사람이었어요. 엘레나는 그게 못마땅했어요. "그들은 그냥 개척대야. 우리를 친구로 생각하지도 않아."
도로시는 웃으며 대답해요. "다들 그저 평범한 젊은이들이야." 사람 좋은 상사, 딱 그 정도로만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사니가 대원들을 이끌고 실험 기지를 급습해요. 목표는 엘레나와 조이스, 두 연구원이었죠.
우리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 이 기지에서 진심으로 우리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우리 자신을 빼고.
— 사니
사니는 법대생이었다가 광석병에 걸려 모든 걸 잃은 개척자였어요. 그에게 대기업 연구원은 커피 한 손에 들고 자기들 얘기나 하는 존재였죠.
이렇게 인질극이 시작돼요. 사니의 요구는 단순합니다. 자신과 동료 전원이 살아서 이 기지를 떠나는 것.
3. 이름 없는 것이 태어나다
인질극은 예상 밖의 손님을 부릅니다. 사니 일행 등 뒤에서 불규칙한 은빛 물체가 스멀스멀 기어 나온 거예요.
그것은 순식간에 개척자의 오두막 한 채를 통째로 분해해 버려요. 벽도 창문도, 그 안의 모든 것도 은빛 파편이 되어 하늘로 흩어졌죠.
저것들은…… 수많은 작은 개체로 분열해 그 집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을 분해해서 가져간 다음…… 다시 모여 하나의 형체를 구성해.
— 사일런스
빛과 목소리에 반응한다는 것도 곧 알게 돼요. 조수 그레이의 아츠로 잠깐 유인은 했지만, 결정적인 도움을 준 건 뜻밖에도 도로시였습니다.
실험실 스피커를 개조한 '상냥한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와요. "실험 구역의 문은 너희들에게 똑같이 열릴 거야." 도망칠 곳을 만들어 준 거죠.
4. 술집에서 알아낸 것, 그리고 잃은 것
실종 사건을 쫓던 박사 일행은 사리아를 따라 뒷골목 단골 술집으로 향해요. 사리아의 정보원은 예전에 실험실 집도의였던 한 남자였죠.
남자는 오른팔에 이식된 아츠 유닛 때문에 왼손으로만 술잔을 들어요. 은빛 시약의 정체를 묻자, 그는 겁에 질려 말을 아낍니다.

몸을 이렇게 떠는 것 보니 술집 냉방이 너무 센가 보네. 몸이 따뜻해지게 한잔 더 마시지 그래?
— 오올헤약
정체불명의 여성 오올헤약이 나타나 남자에게 억지로 술을 권해요. 남자는 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지고, 왼쪽 어금니에 숨겨둔 독니가 드러나죠.
오올헤약은 폐허가 된 실험실 '로켄 수조'의 유산을 쫓고 있다고 말해요. 그리고 사리아에게 한마디, "누구도 성급하게 적으로 돌리지 말라"는 경고를 남기고 사라집니다.
5. 갑옷 속에서 발견한 눈동자
골목을 뒤지던 박사 일행은 또 다른 기동 장갑의 습격을 받아요. 이번엔 사리아가 직접 나서 맨손으로 상대합니다.
장갑은 아무리 부서져도 반응이 없었어요. 마치 안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요.
사리아의 주먹이 코어를 향하던 순간, 박사가 소리쳐요. "멈춰, 사리아!" 사리아는 그 외침 하나에 손을 멈춥니다.

장갑 안에서 나온 건 사람이었어요. 박사는 손을 내밀며 말합니다. "안녕, 뮤엘시스."
실종된 지 며칠, 뮤엘시스는 살아있었어요. 다만 정신을 잃은 채 무기로 이용당하고 있었을 뿐이죠.
정신을 차린 뮤엘시스가 남긴 단서는 하나였어요. 물에 젖은 옷자락에 새겨진 숫자, '359'였습니다.
6. 아름다운 낙원, 그리고 낯선 손님들
359호 기지 실험실 안에서는 여전히 대치가 이어지고 있었어요. 사니 일행은 실험실 문을 통과했고, 마침내 목소리의 주인과 마주합니다.
"여러분, 안녕. 난 라인 랩 오리지늄 아츠 응용과 주임이자 359호 실험 기지의 책임자야." 도로시가 웃으며 인사해요.
사니는 곧바로 석궁을 겨눠요. 도로시가 만들어낸 은빛 생물이 자기 동료들의 피를 자양분 삼아 자랐다고 믿었거든요.
도로시는 부정하지 않아요. "진실을 안다고 너희에게 좋을 건 없어. 아는 게 많을수록 위험해질 뿐이지." 대신 손을 내밀며 실험 참가를 권합니다.
사니가 무기를 내리려던 찰나, 화살이 도로시를 향해 날아가요. 실험실을 지키던 은빛 물체들이 일제히 반응합니다.
이 사악한 온상을 파괴하지 않으면 저 괴물들을 처치할 수 없어!
— 사니
엘레나와 사일런스는 그 사이에서 다른 사실을 눈치채요. 은빛 물체들은 도로시를 공격하지 않고, 오히려 지키고 있었던 겁니다.
7. 사람이 아니라 목소리
실험실 가장 깊은 곳에서 정체가 드러나요. 뒤엉킨 케이블 끝에는 실종된 개척자들이 전극을 쓴 채 나란히 누워 있었죠.

더크, 헬렌, 게일, 소피아…… 하나같이 도로시가 '구해준' 사람들이었어요. 보험료를 못 내 쫓겨날 위기였던 이들 말이죠.
도로시는 모두를 '중추'라는 거대한 기계에 연결해, 오리지늄 아츠 적응성이 낮은 사람도 캐스터로 만드는 실험을 하고 있었어요. 감염자와 개척자, 재능 없이 태어난 이들에게 평등한 기회를 주고 싶었다는 거였죠.
사일런스는 그 꿈에 정면으로 반박해요. "수십 명, 수백 명, 수천 명이 힘을 합치면? 아무리 견고한 성채라도 가볍게 으스러뜨릴 수 있는 장난감이 되겠지."
그때, 의식을 잃었던 조이스가 갑자기 깨어나요. 그리고 낯선 말투로 입을 엽니다. "프랭크스 주임님을 해치지 마." 마치 저 안에 잠든 사람들을 대신 말하는 것처럼요.
8. 배신, 그리고 오랜만의 인사
실험이 잠깐 멈춘 사이, 라인 랩 방위과 직원들이 들이닥쳐요. 그런데 목적은 인질 구출이 아니라 개척자 전원에게 정체불명의 주사를 놓는 거였죠.
엘레나는 그제야 눈치채요. 개척자에게 지급된 '긴급 의료 팔찌'가 사실은 감시 겸 처형 장치였다는 걸요. 조이스가 깨어난 이유도 이 팔찌 때문이었습니다.
엘레나는 상사 퍼디낸드에게 연락해요. 그런데 돌아온 반응은 걱정이 아니라 냉담한 철수 명령뿐이었죠.
결국 엘레나는 라인 랩 본부로 뛰어들어요. 퍼디낸드는 실험실과 승진을 약속하며 회유하려 하지만……

당신의 '선물'과 그 가식적인 친절을 가지고 내 눈앞에서 사라져. 퍼디낸드 클루니, 당신과 난 이제 끝이야.
— 엘레나
한편, 사리아는 뮤엘시스와 함께 라인 랩 본부로 잠입해 총괄 크리스틴을 찾아가요. 1497일 만의 재회였죠.
"돌아왔구나, 사리아." "……안녕, 크리스틴." 짧은 인사였지만, 그 안에 담긴 세월은 짧지 않았습니다.
9. 하늘을 가득 채운 것
퍼디낸드의 계획은 이미 마지막 단계에 들어서 있었어요. 그는 전달물질을 실험 구역 전체에 풀어, 실험을 강제로 완성시켜 버립니다.
우리가 잡을 수 있는 건 지금뿐이다.
— 퍼디낸드
실험실 건물이 안쪽에서부터 찢겨나가요. 그 틈으로 거대한 은빛 기하학 물체가 기지 전체를 집어삼키며 솟아오릅니다.

도로시조차 숨을 멈춰요. 자신이 설계했지만 한 번도 실제로 본 적 없던 광경이었으니까요. "너무 아름다워……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무서웠다."
괴물의 공격은 점점 빨라져요. 개척자도 오퍼레이터도 속수무책이던 그 순간, 조수 그레이가 홀로 걸어 나갑니다.
발을 내디뎌보지도 않고 어떻게 가능성이 있는지 알 수 있겠어요?
— 그레이

프틸롭시스가 뒤늦게 합류해 그레이의 아츠를 지탱해요. 두 사람의 힘으로 잠깐이나마 괴물의 위치를 정확히 짚어낼 수 있었죠.
10. 엄마가 들려준 이야기
모래벽 뒤에서 도로시는 스스로 몸에 전달물질을 주사해요. 사일런스가 말려도 소용없었죠. "나도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그녀는 의식 저편에서 어린 시절의 자신을 만나요. 엄마가 들려주던 동화 속, 사막을 건너 캐스터를 찾아가던 소녀의 이야기였습니다.

동화는 이렇게 끝나요. 소녀는 더 이상 소문 속 캐스터를 찾지 않아요. "너희가 곁에 있으면 그곳이 나의 새집이야."
도로시는 꿈속에서 자신이 실험으로 가둬버린 사람들과도 만나요. 모두가 그녀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지만, 어딘가 지쳐 보였습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좋은 곳을 또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고……" "……아무리 도망쳐도 결국 내일은 오는 거겠죠?"
도로시는 어린 개척자 친구의 눈물을 닦아주려다, 손을 거둬요.

난 너희를 여기에 가둬두면 안 됐어. 나도…… 나 자신을 여기에 가둬두면 안 됐어. 분명 나중에 너희가 본 풍경은 내가 본 것보다 훨씬 더 멋질 거야.
— 도로시
실험실 밖에서는 은빛 물체가 방향을 틀어요. 향한 곳은 다른 어디도 아닌, 자신이 태어난 실험실 그 자리였습니다.

퍼디낸드의 실험은 이렇게 끝나요. '중추'는 붕괴했고, 그는 실패자가 되어 도망치는 신세가 됩니다.
11. 그 후
도로시는 무사했어요. 다만 그날 이후로 개척자들 몸속엔 여전히 전달물질이 흐르고 있었죠. 사일런스도 아무도, 그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장담하지 못했습니다.
사니는 4년 전 소꿉친구 메리에게 저지른 죄를 고백해요. 메리는 대신 그를 꼭 안아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죠.
용서니, 뭐니 그런 소리 좀 그만해. 소꿉친구가 널 배웅해 주러 왔는데 더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하지 않겠어?
— 메리
사니는 다시 개척대와 함께 길을 떠나요. D로 시작되는 이름의 누군가에게서 온 수상한 초청장을 들고서요.
퍼디낸드는 마지막 순간, 오올헤약과 재회해요. 그녀는 그를 죽이지도 돕지도 않은 채 기동 장갑 한 대만 남기고 떠나죠. "……개척자여."
황무지에 홀로 남은 퍼디낸드는 결국 항복을 택해요. 자신을 둘러싼 개척자들 앞에서, 그는 처음으로 저항하지 않습니다.
사리아와 사일런스는 각자 다른 도시에서 같은 하늘을 올려다봐요. 100km나 떨어져 있었지만, 두 사람은 똑같은 말을 중얼거립니다.
트리마운츠에 곧 비가 내리겠네.
— 사일런스 & 사리아

크리스틴의 책상 위엔 어느새 '중추'의 잔해가 놓여 있어요. 보고서에는 '완전히 파괴됨'이라고 적혔지만요.
정체불명의 오올헤약은 크리스틴에게 짧은 인사를 남겨요. "머지않아…… 어쩌면 내가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협력 파트너가 될지도 몰라."

실종된 세 사람은 모두 돌아왔어요. 다만 누군가는 그 자리에 남았고, 누군가는 새로운 여정을 떠났고, 누군가는 처음으로 자신이 만든 낙원 밖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실종된 동료를 찾으러 갔다가, 정작 발견한 건 실종자 전원이 자원해서 걸어 들어간 낙원이었어요. 그리고 그 낙원을 만든 사람은, 자기 손으로 가장 사랑하는 이들을 풀어주는 쪽을 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