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베리아 해안에는 등대가 있었어요. 한때 수십 개였다는 그 등대들은 고요함이라는 재앙 이후 거의 다 무너졌고, 이제는 딱 하나만 남아 있어요.
그 마지막 등대 아래, 그란파로라는 작은 마을이 있어요. 재판소는 이 마을을 잊었고, 에기르인은 여전히 '섬 주민'이라는 이유만으로 쫓기고 있어요.

그란파로에서 자란 에기르인 청년 조르디는, 자기 부모가 왜 그 등대 아래서 실종됐는지도 모른 채 예배당 간병인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어요.
로도스 아일랜드의 켈시는 오래전부터 이 마을을 지켜봐 왔어요. 이베리아와 바다 건너 에기르, 그 둘을 화해시킬 마지막 기회가 이 조용한 마을에 숨어 있다고 믿으면서요.
1. 예배당에 죽치는 수상한 방문객

조르디를 아버지처럼 키운 촌장 티아고는, 늘 바다를 조심하라고 일러요. 그런데 자칭 잘생긴 리베리 엘리시움이 예배당에 나타나 죽치기 시작해요.
로도스 아일랜드 소속이라는 그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중이라는데, 통 정체를 밝히지 않아요. 조르디는 그런 그가 신기하면서도, 조금은 부럽기까지 해요.
엘리시움은 툭하면 자기가 이베리아에서 제일 잘생긴 남자라고 너스레를 떨어요. 조르디는 그런 그를 볼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와요.
그러던 어느 날, 마을 광장에 죽은 시테러 한 마리가 나타나요. 오랫동안 조용했던 이 해안이 다시 시끄러워지기 시작한 신호였어요.
사실 나이 든 어부 페드리는 예전부터 '바다 괴물'을 봤다고 말해 왔어요. 다들 술주정으로만 여겼는데, 이번엔 아무도 웃지 못해요.
2. 얼라이브 언틸 선셋과 어비설 헌터스
사실 마을에는 심해교회 신도들이 이미 숨어 살고 있었어요. 재판소 눈을 피해 조용히 움직이며, 언젠가 등대를 되찾을 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었죠.
켈시가 도착하고, 록밴드 얼라이브 언틸 선셋 — 알티, 아야, 프로스트, 댄 — 과 에기르의 정찰대 어비설 헌터스 — 스카디, 글래디아, 스펙터 — 도 차례로 그란파로에 모여들어요.
엘리시움은 실은 켈시를 대신해 이 마을을 살피던 로도스 아일랜드의 눈과 귀였어요. 일행이 모이자, 그는 자신의 오리지늄 아츠로 만든 통신기를 헌터들에게 나눠 줘요.
켈시는 오래전 밴드에게 맡겨 뒀던 열쇠 하나를 돌려받아요. 브레오간이라는 에기르인 기술자가 남긴 물건이라는데, 아무도 그 쓰임새는 짐작하지 못해요.
그사이 대재판관 다리오와 그 제자 아이린까지 마을에 잠입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그란파로는 순식간에 온갖 세력의 각축장이 돼요.
3. 촌장이 숨겨온 것

재판관이 나타났다는 소문에 티아고는 조르디를 도망시키려 해요. 그러면서 처음으로 진실을 말해요 — 조르디의 부모는 이 등대를 되살리려다 실종됐고, 그란파로는 한때 이베리아를 재건할 요새가 될 뻔했다고요.
하지만 조르디는 떠나지 않아요. 태어나 처음 마주한 검은 바다 앞에서, 자기 손으로 부모의 자리를 직접 보고 싶다고 말해요.
조르디의 집에는 부모님이 남긴 낡은 도면과 사진이 아직도 쌓여 있어요. 조르디는 그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그저 오래된 물건이라고만 여겨 왔죠.
그란파로는 반세기 전, 재난에 맞서 해안 방어선을 구축하려던 노동자들의 꿈이었대요. 조르디의 조부모와 부모, 두 세대가 그 꿈을 위해 등대로 떠났고 끝내 돌아오지 못했죠.
실은 티아고도 재판소에 연인 마린을 잃은 뒤로, 심해 신도들의 존재를 알면서 눈감아 왔어요. 그 침묵이 곧 마을 전체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요.
4. 재판소의 등불, 마을을 태우다
대재판관 카르멘이 상륙해 심해교회 신도들을 가차 없이 처단하기 시작해요. 켈시는 카르멘과 손잡고, 헌터들의 힘으로 마을을 정리하는 대가로 등대까지 가는 길을 열어달라 요청해요.
이교도로 몰릴까 겁먹은 몇몇 마을 사람들은 서로를 밀고하기 시작해요. 재판소도, 사교도도 아니었던 이들까지 그 틈에서 애꿎게 흔들려요.
조르디는 브레오간의 후손일지 모른다는 말 덕분에, 처형 대신 재판소 원정대에 끼게 돼요. 그사이 정신을 잃었던 티아고는 사교도의 습격을 받아 서서히 괴물로 변해가요.
카르멘이 도착했을 땐 이미 늦은 뒤였어요. 죽어가는 티아고는 재판소가 죽인 에기르 여인 마린의 진실만을 캐물었고, 대답을 다 듣기도 전에 숨을 거둬요.
카르멘은 그제야 진실을 들려줘요. 60년 전 잡혀간 그란파로의 에기르인 중 절반이 실제로 사교도였고, 그 수장이 바로 '마린'이었다고요. 조르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해요.
5. 등대지기가 된 소년

다리오, 아이린, 조르디는 시테러 소굴로 변한 등대에 상륙해요. 조르디는 부모가 남긴 낡은 도면 하나로 등대의 제어실을 되살리기 시작해요.
조르디는 자신이 그저 평범한 간병인일 뿐이라고 되뇌면서도 손은 멈추지 않아요. 그렇게 등대의 심장을 하나씩 되살려 가요.
다리오는 부하 하나 없이 홀로 문 앞을 지키며 두 사람에게 시간을 벌어줘요. 등불이 다시 켜지는 순간, 그는 이미 마지막 힘까지 다 써버린 뒤였어요.
너희들이 죽어야, 인류가 산다. 이건 우리의 율법과 경문이 아니라, 너희들이 말하는 '약육강식'이다.
— 대재판관 다리오

조르디가 되살린 신호 덕분에, 60년째 실종 상태였던 이베리아의 기함 스툴티페라 나비스의 위치가 마침내 드러나요. 카르멘은 제자의 스승이 지켜낸 이 등불이 헛되지 않았다고, 조용히 되뇌어요.
6. 60년째 가라앉지 않은 배

어비설 헌터스와 아이린은 스툴티페라 나비스에 올라요. 배는 이상하리만치 깨끗하고, 아무도 없어야 할 복도에서 피아노 선율이 들려와요.
배의 주인은 아직 살아 있었어요. 시본으로 변해가면서도 인간이라 우기는 선장 알폰소와, 이미 말도 제대로 못 하게 된 그의 연인 가르시아예요.

알폰소는 60년간 매일 이 황금빛 홀을 '이베리아'라 부르며 거울을 들여다봤어요. 사냥이 끝나면 다시 거울 앞으로 돌아오는 나날의 반복이었죠.
그는 예전에 가르시아와 함께 이베리아 해안에서 아이들을 보며 꿈을 꾼 적이 있어요. '이 아이들이야말로 우리의 미래'라고 말했던 꿈인데, 이젠 아주 가끔씩만 찾아와요.
가르시아는 이미 목소리를 잃어서, 시테러의 피로 글씨를 써 가며 알폰소와 대화해요. 그마저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대화였죠.
그런데 알폰소가 스카디를 보자마자 던진 말은 따로 있었어요. "놈들은 널, 이샤-믈라라고 불렀다." 아무도 그 이름의 뜻을 설명해 주지 않아요.
네가 만일 정말로 옛 이베리아에서 왔다면, 지금 국교회 교황은 누구냐? 카르멘인가? ……하하, 성도라니, 놈은 부끄럽지도 않은 건가.
— 선장 알폰소
7. 배 밑바닥에서 마주친 얼굴들
배 아래 깊은 곳에서 글래디아는 뜻밖의 인물과 마주쳐요. 오래전 실종된 줄로만 알았던 어비설 헌터스 제4대장 울피아누스예요.
울피아누스는 그 소굴 가장 깊은 곳에서 '건물'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무언가를 봤다고 해요. 함께 갔던 제1대와 제4대의 나머지 대원은 모두 그 자리에서 죽었고, 그만이 죽은 거대한 무언가의 몸속에 숨어 살아남았죠.
그 뒤로 그는 소대를 이탈해 홀로 다른 답을 찾고 있었어요. 지금은 스카디의 정체에 대해서도 불길한 추측을 흘려요.

"무슨 문제가 생긴다면, 우린 스카디를 죽여야 한다." 울피아누스는 그렇게 잘라 말해요. 글래디아는 그 말을 믿고 싶지 않지만, 마땅히 반박할 근거도 찾지 못해요.
한편 배 위에는, 조르디를 재판소에 팔아넘기려 했던 심해교회의 배후 — 번역가 행세를 하던 아마이아 — 도 먼저 와 있었어요. 그녀는 오래전부터 스펙터를 알고 있었어요.
8. 잠들었던 이름이 돌아올 때

스펙터는 아마이아와 춤을 추듯 시간을 끌면서, 조각가가 되고 싶었던 자신의 옛 기억을 하나씩 되찾아요. 부서진 흰 조각상, 그리고 그 앞에서 올렸던 낯선 '기도'라는 몸짓까지도요.
아마이아는 잔인한 진실 하나를 알려줘요. 스펙터의 몸속 시본의 피가, 실은 그녀를 서서히 잠식하던 오리지늄 중독을 억누르고 있었다는 사실이에요.
하지만 위험을 감지한 아마이아는 몸을 피해요. 자신이 길들인 시본 하나에게, 조르디 대신 붙잡아 둔 아이린을 맡기고요.

희생은 숭고한 게 아닙니다. 헌신은 미덕이 아니죠. 생명은 결코 무질서한 것이 아니다 — 이게 제가 바다에서 구하려 했던 마지막 답이에요.
— 아마이아
아마이아는 그 말만 남긴 채, 자신을 따르는 시본과 함께 사라져요.
9. 배를 버리지 않은 사람들
배는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기 시작해요. 알폰소는 자신이 60년간 사냥해 온 시본에게, 마지막으로 목숨을 걸고 맞서요.
가르시아는 그 틈에, 마지막 순간만큼은 인간으로 죽겠다며 그 시본을 끌어안고 심해로 가라앉아요. "나는 이베리아인으로서 전사할 거야." 그 말이 유언이 됐어요.
가라, 난 이곳에 남겠다. 이곳은 나의 이베리아다. 내 배를 배반할 수는 없다.
— 선장 알폰소
알폰소는 왕좌에 앉아 눈을 감아요. 고향의 햇빛과 가르시아 손의 온기, 오랜 벗들의 웃음소리를 마지막으로 떠올리면서, 녹슨 칼로 스스로 목숨을 끊어요.
10. 침몰하는 배, 대답 없는 이름

사실 조르디는 켈시의 만류를 뿌리치고, 낡은 배 한 척을 몰고 홀로 바다에 나가 있었어요. 시테러 떼가 몰려들자 그는 등대의 수호수 Mon3tr에게만 의지한 채, 오차투성이 항로를 그대로 밀어붙였죠.
조르디가 그렇게 몰고 온 작은 배 덕분에 아이린만 간신히 구조돼요. 아이린은 스툴티페라 나비스가 실은 에기르인들의 피난 도시 바로 위를 60년간 맴돌고 있었다는 사실까지 알게 돼요.
사실 알폰소가 그 이름을 처음 부른 순간부터, 스카디는 애써 태연한 척해 왔어요. 정작 자신도 그 답을 짐작하고 있었지만,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했을 뿐이에요.
마지막까지 배를 쫓던 시본은, 죽어가면서도 스카디에게 물어요. 자신들이 '이샤-믈라'라 부르는 존재가 바로 당신이 아니냐고요.
스카디는 아니라고 답해요. 하지만 목덜미를 문지르는 그 손은, 자꾸만 떨려요.
위매니는 영원할 것이다.
— 시본
그 후

그란파로에는 재판소의 텐트가 들어서요. 아이린은 스스로 재판관 자리를 내려놓고, 조르디는 '재판소에 합류한 최초의 에기르인'이 될지를 두고 고민에 빠져요.
희생자만이 '위대하다'는 말을 들을 자격이 있어. 하지만 사람의 의지로 이 등불을 밝힐 수만 있다면, 우리는 서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
— 아이린
엘리시움은 로도스 아일랜드에 남기로 하고, 어비설 헌터스는 배 한 척 없이도 에기르로 돌아갈 방법을 다시 찾아 떠나요. 울피아누스는 여전히 혼자, 다른 답을 좇고 있어요.
켈시는 글래디아에게 마지막으로 말해요. 바다는 이미 오리지늄과 동급으로 중요한 문제가 되었으니, 더는 지체할 수 없다고요.

등대는 오랜만에 다시 불을 밝혔어요. 하지만 그 빛이 가리키는 답을, 아직 아무도 다 알지 못해요 — 스카디도, 조르디도, 바다 밑에서 여전히 이름을 부르는 무언가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