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베리아에는 원래 바다가 있었어요. '고요함'이라는 재난이 그 바닷물을 통째로 앗아가기 전까지는요.
지금 남은 건 온통 흰 소금과 뼈뿐인 사막이에요. 그리고 그 밑에는, 사람이었던 것과 짐승이었던 것의 경계가 흐려진 무언가가 아직도 헤엄치고 있죠.
이 사막에서 해적한테 붙잡힌 방랑 검사가 하나 있어요. 아무것도 원해본 적 없다던 그가, 이 이야기 끝에서는 딱 하나를 간절히 원하게 됩니다.
1. 탈출 시도 n회차, 매번 실패
이시드로는 해적선단 캡틴 후아나의 손에 붙잡혀 있어요. 막사 바닥에 몰래 구멍을 파서 도망치려 하지만, 후아나는 번번이 그를 가볍게 낚아채 오죠.
선단에는 셰프 하비에르와 고참 선원 티치, 그리고 후아나가 주워온 정체 모를 생물 '네네'가 있어요. 다들 이시드로를 그냥 '애송이'라 불러요.
한 선원이 '미친 할망구'라며 후아나 욕을 하자, 하비에르는 그 자리에서 목을 졸라 조용히 시켜요. 어머니를 잃은 어린 하비에르를 후아나가 거둬 키웠다는 걸, 이시드로는 나중에야 알게 되죠.
그렇게 여길 벗어나고 싶다면, 나침반을 고쳐.
— 후아나
이시드로가 지닌 낡은 금화 하나가 화근이었어요. 후아나는 그 금화가 사라진 지 오래된 연금술 유파의 증표라는 걸 한눈에 알아봤거든요.
이시드로는 자긴 연금술 같은 거 모른다고 잡아떼요. 근데 밤마다 꾸는 꿈에서는, 어릴 적 어떤 남자가 호숫가에서 그에게 헤엄치는 법과 연금술을 함께 가르쳐 주고 있거든요.

2. 보름 전, 검술 좀 배우러 왔다가 괴물한테 물림
시간을 되감으면, 이시드로는 사실 로도스 아일랜드 오퍼레이터 '쏜즈'예요. 동료들의 연락도 씹어가며 홀로 '풍랑에 맞설 수 있다'는 전설의 검술을 찾아 이베리아를 떠돌던 중이었죠.
지도에도 안 나오는 '창백한 바다' 근처에서, 그는 거대한 염린한테 그대로 들이받혀요. 정신을 잃은 그를 발견한 건 시체 뒤지길 좋아하는 괴도 소녀 파스콸라였고요.
파스콸라가 이시드로 주머니에서 슬쩍한 물건 때문에, 이베리아 재판소의 신임 집행관 아나스타시오가 그녀 목에 칼을 겨눠요. 겨우 깨어난 이시드로가 부러진 검으로 끼어들어 그녀를 구해주죠.
마을에서 아나스타시오는 다들 손잡고 인사할 만큼 신망 두터운 인물이에요. 다친 곳을 어루만져주고 다정하게 포교하는 그를, 마을 사람들은 진심으로 고마워하고요.
쫓기던 둘은 마침 지나가던 염린 등에 올라타 아론 마을로 도망쳐요. 마을 사람들은 '에기르인'이라 불리는 이시드로를 보고도, 그저 겁먹은 얼굴로 창문부터 닫아버립니다.
마을의 한 노인은 그 검술을 만든 이가 반년 전 조용히 돌아와 죽었다고 알려줘요. 유언이 궁금하면 무덤이나 파보라는, 농담 같지 않은 농담을 남기고요.
3. 무덤 도굴범이 됐다가, 알고 보니 유명인
검술 전수자의 유언이 궁금했던 이시드로는 무덤을 팠다가 딱 걸려요. 마을 심사관 실버는 파스콸라와 함께 그를 교수형에 처하려 하죠.
오른손이랑 왼손 중에 어느 쪽을 남기고 싶어? 네가 선택해.
— 하비에르
형장에 올라간 순간, 하비에르가 해적들을 끌고 습격해 둘을 구해내요. 벼랑에서 뛰어내려 낙하산처럼 펼쳐진 후아나의 소금배 돛에 안착하고서야 이시드로는 다시 해적선 신세가 되고요.
한편 마을에서는 로도스 아일랜드 오퍼레이터 엘리시움과 위디가 실종된 '쏜즈'를 찾고 있어요. 실버는 두 사람에게, 그가 강도들과 손잡고 마을 사람 시체를 훔쳤다며 슬쩍 겁을 줍니다.
마을 밖 깃대에 걸린 강도들의 시신을 본 엘리시움은 잠시 말을 잃어요. 강도 소굴에 남아도 죽고, 마을로 돌아와도 강도로 몰려 죽는다는 걸 깨닫고는, 결국 홀로 소금 사막으로 뛰어들죠.
4. 연금술사로 취직, 조수는 도둑에 절친
후아나는 이시드로가 지닌 낡은 금화와 검술이 옛 연금술 명인 '아울루스'를 빼닮았다고 확신해요. 결국 이시드로는 선단의 함상 연금 공방을 떠맡게 되죠.
마침 마을에 잠입해 있던 엘리시움이 찾아와 재회해요. 둘은 서로를 '브라더'라 부르는 사이였고, 파스콸라는 자기 대신 부하 '빨간 털'을 조수로 밀어 넣어요.
네 손가락이 탐침의 바늘처럼 가늘다면 도움이 되겠네.
— 이시드로
실은 갑판장 루스가 몰래 부탁을 하나 해요. 연금술 할 때 적당히 소란만 피워서, 실패한 척 후아나를 단념시켜 달라는 거죠.
이시드로는 대답하지 않지만, 표정이 복잡해져요. 도망치는 대신 이곳에 남기로 한 이유를 그 자신도 아직 잘 모르거든요.

5. 염린 사냥, 그리고 아무도 못 본 캡틴의 상처
선단 역사상 가장 거대한 염린이 발견돼요. 후아나는 직접 배에서 내려 사냥을 지휘하겠다고 고집을 부리고요.
갑판장 루스는 처음부터 이 사냥이 께름칙했어요. 이렇게 큰 염린은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뿐이라, 홀로 나타났다는 것 자체가 불길한 징조라고 경고하죠.
염린은 죽기 직전 폭주해 후아나를 등에 태운 채 멀리 달아나요. 다들 그녀가 죽었으리라 여기지만, 다음 날 그녀는 갈비뼈가 부러진 채로도 태연하게 돌아오죠.
요즘 선원들이 모두 불안해해. 선원들에게 나약한 모습을 보여줄 순 없어.
— 후아나

돌아오는 길, 실버와 아나스타시오가 이끄는 재판소 병력이 매복해 있었어요. 사냥해 온 염린을 빼앗기지 않으려 몸싸움이 벌어지고, 하비에르는 재판소 편에 서길 거부해요.
선원들 사이에는 오래된 소문이 하나 있어요. 후아나가 옛날에 바다 괴물과 거래해 그 대가로 긴 수명을 얻었다는, 다들 반쯤은 믿지 않으려 하는 이야기죠.
6. 시본, 그리고 백 년 묵은 이별
후아나는 이시드로를 동굴로 데려가, 그동안 감춰온 진실 하나를 보여줍니다.
동굴 속에 갇힌 시본은 사실 후아나의 옛 선장이자 연인이었던 '크루즈'예요. 백 년 전 시본들과 싸우다 스스로 이곳에 갇혀버렸고, 후아나는 그를 죽이지 못해 여태 홀로 가둬 두고 있었죠.
후아나는 이시드로에게 검술을 완성해, 대신 그를 명예로운 결투로 끝내달라 부탁해요. 이시드로는 그 부탁을 들으며, 관계의 끝이 결국 서로를 집어삼키는 것뿐이라 믿었던 자신의 옛 두려움을 떠올려요.
결국 이시드로는 부탁을 들어주고, 크루즈의 검을 유품으로 건네죠.
당신의 영혼이 소금 사막에서 해방되어, 구름과 비를 타고 바다로 돌아가기를. 잘 가, 내 사랑.
— 후아나
7. 믿었던 부관, 칼을 겨누다
나침반 수리가 늦어지자 하비에르 패거리는 결국 파스콸라를 재판소에 넘기려 해요. 다급해진 파스콸라는 모두를 붙잡고 딱 일주일만 더 기다려 달라 설득하죠.
나침반이 있는데 왜 선조들처럼 대박을 노리지 않는 거야? 너희들은 자신을 해적이라 칭하지만, 바다를 본 적도 없잖아!
— 파스콸라
약속한 일주일이 지나도록 나침반 수리는 실패해요. 사실 이시드로는 원본을 망가뜨릴까 봐, 일부러 복제품만 만들다 실패한 거였죠.
설령 성공 확률이 만 분의 일이었다 해도, 나는 그 한 번의 기회에 모든 걸 걸었을 거야.
— 후아나
실패 소식을 들은 하비에르는 결국 선을 넘어요. 재판소에 나침반과 선단의 위치를 넘기는 대신 후아나만은 풀어주겠다는 조건으로 거래하죠.

그런데 아나스타시오는 애초에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었어요. 협상이 끝나기도 전에 선단을 습격해 배를 불태우고 후아나를 붙잡죠. 소금 사막 저편에서 불길을 본 이시드로는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돌립니다.
8. 얼어붙은 유령선, 그리고 두 번째 기회
돌아온 이시드로와 티치, 엘리시움은 후아나를 구해내 백 년 묵은 낡은 배 '정복 선언호'로 탈출해요. 물도 식량도 바닥난 채, 다들 담요 하나에 몸을 욱여넣고 밤을 버티죠.
그 와중에도 이시드로는 다시 나침반 수리에 매달려요. 후아나는 그런 그에게 처음으로 진짜 바다 이야기를 들려주며 함께 가지 않겠냐고 묻고요.
하비에르와 루스는 배신한 대가로, 재판소에 협조해 재판소에 협조하며 궂은일을 떠맡는 신세가 돼요. 요리사였던 하비에르는 더 이상 아무것도 요리하고 싶지 않다며 주방 근처에도 가지 않죠.
한편 마을에서는, 한편 마을에서는, 이시드로가 폭파한 배에서 죽은 줄 알았던 아나스타시오가 온몸에 피를 묻힌 채 다시 나타나요. 아론을 소금 사막에서 옮길 야심을 품고 있던 실버 앞에 서서, 그를 추궁하죠.. 재판소의 조력자가 되어준 아나스타시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며, 실버는 자신만의 야심을 슬쩍 드러내죠.

엘리시움은 몰래 마을을 돌며 통신기와 비타민, 방수화 같은 물건을 하나둘 챙겨 모아요. 정작 이시드로한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가방 하나에 슬쩍슬쩍 채워 넣을 뿐이죠.
9. 해골 협곡, 스스로를 심판하는 남자
정복 선언호는 재판소의 추격을 피해 아무도 살아 나온 적 없다는 '해골 협곡'으로 뛰어들어요. 후아나가 목숨 걸고 타륜을 돌리는 사이, 이시드로는 선내에서 나침반을 마저 고치려 하고요.

핸드캐논 유탄에 연금 장치가 폭주하고, 이시드로는 맨손으로 코라소닉스를 붙잡아요. 그 순간부터 나침반은 그의 팔에 눌어붙어, 그의 살과 피의 일부가 되어버리죠.
협곡 안, 다친 티치를 업고 도망치던 파스콸라는 결국 추격병들 앞에 혼자 남아요. '그냥 좀도둑'이라 손가락질받던 그녀가, 이번엔 스스로 칼을 들고 맞서 싸우죠.

협곡 한복판, 아나스타시오가 다시 나타나 마지막 결투를 걸어와요. 그는 이시드로에게 묻죠. 네 욕망이 대체 뭐냐고, 그걸 알아야 제정신으로 저항하며 죽을 수 있을 거라고.
인정하지. 나는 바다로 나가고 싶다. 내 두 눈으로 바다를 보고, 직접 그 바다를 정복하고 싶다.
— 이시드로

한편 배 위에서는 후아나와 하비에르의 마지막 결투가 벌어져요. 패배를 인정한 하비에르가 죽여 달라 청하지만, 후아나는 그저 웃으며 축하한다는 말만 남기고 그를 살려 보내죠.
그 후, 각자의 바다로
하비에르와 루스는 남은 소금배들을 팔아 선원들에게 나눠주고, 각자 새 삶을 찾아 흩어져요. 하비에르는 어딘가에서 식당을 열 거라 하고, 루스는 처음으로 자기 갈 길을 스스로 고민해 보기로 하죠.
파스콸라는 큰돈을 챙겨 컬럼비아행 대박을 꿈꾸는 낯선 이들 틈에 슬쩍 끼어들고요.
엘리시움과 위디는 로도스 아일랜드로 복귀해요. 다만 위디는 정복 선언호의 구조가 탐나서, 잠시 남아 수리를 돕기로 하죠.

정복 선언호는 이시드로를 새 선장으로, 후아나를 부선장으로 삼아 다시 돛을 올려요. 팔에 눌어붙은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선원들은 마침내 진짜 바다로 출항하고요.
저 먼 곳을 위하여.
— 이시드로
그때, 죽은 줄로만 알았던 네네가 뒤늦게 헤엄쳐 와 배에 오릅니다. 후아나는 뺨을 마구 핥는 네네를 끌어안으며, 다 함께 갈 수 있게 됐다고 기뻐하죠.
그리고 소금 사막 저편에서는, 목이 잘린 아나스타시오의 잔해가 여전히 꿈틀거려요. 살고 싶다는 욕망만 남은 그것은, 시본의 잔해와 뒤엉킨 채 영원히 대지를 떠돌 거고요.
한때 바다였던 땅에서, 누군가는 여전히 아무것도 원하지 않으려 몸부림치고 있어요. 그리고 누군가는, 처음으로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며 수평선을 향해 나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