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퍼스트본' 이샤믈라를 잡으러 간 어비설 헌터스는 전멸했다고 알려졌어요. 그런데 그중 셋, 글래디아와 스카디와 스펙터가 살아 돌아옵니다. 심지어 몸속에 시본의 흔적을 지닌 채로요.
때마침 침묵하던 에기르가 먼저 이베리아에 손을 내밀어요. 켈시와 박사, 이베리아 서기 조르디, 재판소 사절 아이린까지 육지의 대표단이 헌터들과 함께 심해 도시 밀리아리움으로 향하죠. 목적은 '항로 계획'—바다와 육지를 잇는 길을 여는 것.
하지만 그 길은 시작부터 삐걱거려요. 실종된 연구원 한 명, 행방을 감춘 헌터 한 명, 그리고 아무도 입 밖에 내지 않은 질문 하나가 있거든요. 이 이야기는 결국 그 질문에 대한 서로 다른 대답들로 끝납니다.

1. 죽었다던 사람들이 돌아왔는데, 다들 심문 준비부터 하시네요
밀리아리움은 조르디에게 너무 낯선 곳이에요. 나이프 없이 밥을 먹고, 옷을 안 벗고 빨래를 하고, 사람들이 갑자기 공중에 둥둥 떠다니죠. 학자 아비투스가 친절히 설명해주지만, 들을수록 더 혼란스러워져요.
길에서 만난 순찰 로봇 '조력자'에게 구역을 비켜달라는 말을 듣자, 조르디는 반사적으로 존댓말로 사과부터 해요. 아비투스는 그럴 필요 없다며 웃죠, 그건 그냥 안내 기계일 뿐이라고.
심지어 조르디는 이곳에서 자신의 뿌리를 찾아보려 해요. 전설의 선박 설계자 브레오간이 한때 이 도시를 거쳐 갔거든요. 하지만 영상 속 그의 얼굴에서, 자신과 닮은 구석은 하나도 찾지 못하죠.
정작 더 시끄러운 건 헌터들 쪽이에요. 거대한 원형 투지장에서 평의회가 열려요. 5년 만에 부활한 셋의 몸에 남은 시본의 흔적을 두고, 온 도시가 그들 앞에 서서 질문을 쏟아내죠.
다행히 옛 동료 블란두스가 나서서 보증해줘요. 어비설 헌터스의 몸에는 시본 유전자를 억누르는 '자가 적응 접점'이 있고, 지금의 변이는 전부 예상 범위 안이라고요.
그들은 시본으로 변하지 않을 거야.
— 블란두스
물론 다 믿어주는 건 아니에요. 기술원 과학 연구원 한 명이, 울피아누스가 전한 '여러 마리의 퍼스트본' 정보가 너무 딱 맞아떨어진다며 의문을 던지죠.
이렇게 딱 들어맞는 설명은 유일한 진실이거나, 혹은 모든 의문에 대응하도록 짜인 답변일 수 있죠.
— 기술원 과학 연구원
그런데 관중석 그늘 속에서 누군가 박사의 목을 조르겠다고 협박해요. 어비설 헌터스 울피아누스—5년째 행방불명인, 이 이야기의 가장 수상한 사람이죠. 그는 스카디를 잘 지켜보라는 말만 남기고 사라져요.
청문이 끝난 뒤엔 스카디와 스펙터가 박사에게 도시 구경을 시켜줘요. 스펙터는 원래 조각가 지망생이었고, 스카디는 도시 전체 조명을 혼자 관리하던 기술자였대요. 5년 전엔 미처 나누지 못했던, 아주 사소하고 다정한 옛날이야기죠.
2. 조용한 실종, 시끄러운 예감
도시의 데이터 분석가 툴리아가 사라져요. 해양 순찰대 지휘관 세쿤다가 수사에 나서고, 아이린도 자진해서 거들어요. 세쿤다는 사실 예전에 어비설 헌터스가 되고 싶었던 연구원이었어요—신청서가 반려됐을 뿐이죠.
세쿤다는 블란두스와 옛 사제지간처럼 티격태격해요. 인공 눈물이니 눈치 없는 농담이니 하면서요. 하지만 그 다정한 대화 밑에는, 서로에게 묻지 못한 앙금이 조용히 깔려 있어요.
사실 세쿤다는 예전에 직접 어비설 헌터스 개조를 신청했던 적이 있어요. 스승이 그 계획의 첫 헌터였고, 매번 상처투성이로 돌아오는 걸 지켜만 봐야 했거든요. 하지만 신청은 반려됐고, 이유조차 듣지 못했죠.
한편 그늘 속의 울피아누스는 박사에게만 살짝 귀띔해요. 5년 전 그 전투에서 죽인 게 유일한 '퍼스트본'이 아니었다고요.
바다에는 '여러 마리의 퍼스트본'이 존재한다.
— 울피아누스
그사이 시본 습격으로 함대 두 개가 전멸하고 26명만 살아남아요. 항로 계획은 이미 순조롭지 않았던 거예요. 글래디아는 씁쓸하게 인정하죠, 5년 전 그 전쟁 설계에는 애초에 오류를 인정할 여지가 없었다고.
3. 옥덩굴을 사랑한 사람
툴리아는 사실 별일 아닌 사람이었어요. 멸종 위기 해조류를 키우는 게 취미였고, 도시가 화산 기지를 포기할 때도 그 아이들만은 몰래 옮겨 키웠을 뿐이죠.
동료 루실라와 카시아는 그녀를 잘 모르면서도 걱정해요. 그런데 카시아의 말 한마디가 세쿤다의 의심을 슬쩍 툴리아 쪽으로 돌려놓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요.
심해 교회가 그녀를 미끼로 썼던 거예요. 누명을 씌워 도시 밖으로 몰아냈고, 툴리아는 순환 시스템 배수구로 떨어져 시본에게 잠식됐죠.
며칠 후, 아이린과 세쿤다는 반쯤 시본이 된 툴리아를 찾아내요. 그녀는 여전히 영양액을 품에 안은 채, 자기가 가꾸던 해조류 상자로 힘겹게 기어가고 있었어요.
수경 상자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 순간, 툴리아는 몸부림을 멈춰요. 세쿤다가 그녀를 배웅해요. 대장이 대원들을 재울 때 부르던 그 자장가로.
그녀의 여정이 끝났네♪ 그녀의 고향이 바로 눈앞에♪
— 세쿤다
4. 좋은 사람이 제일 무섭다
헌터들이 재수술을 받으러 갔을 때, 심해 교회가 수술실을 습격해요. 다행히 어렵지 않게 격퇴하지만, 진짜 배신자는 그 자리에 서 있던 블란두스였어요.
그는 5년간 몰래 연구했어요. 울피아누스의 몸에서 우연히 관측된 현상—시본 유전자와 인간이 서로를 거부하지 않게 되는 균형점을요. 그 이론을 항로 계획의 제4급 무기에 몰래 심었죠.
시본을 죽이는 무기 대신, 시본과 인간이 공생하는 미래를 만들겠다는 것. 블란두스는 그게 헌터들을 진짜로 구하는 길이라 믿었어요.
어비설 헌터스 계획은 실패했지만 헌터들에겐 아직 해결책으로 사명을 완수할 기회가 있네.
— 블란두스
울피아누스가 그를 찾아가요. 선의였다는 변명도, 오랜 우정도 소용없었어요.

네겐 유감이나 미련을 품고 죽을 자격이 없다.
— 울피아누스
블란두스는 마지막까지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고 말해요. 인간과 시본, 두 종족을 잇는 진짜 다리를 놓았을 뿐이라고요. 울피아누스는 그 말을 끝까지 듣고도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어요.
블란두스가 조작한 무기가 발동하는 순간, 밀리아리움 전체가 그 대가를 치르기 시작해요.
5. 도시 한복판에 소굴이 피었습니다
비콘탑이 통째로 시본의 둥지가 돼요. 도시 곳곳에서 명흔이 자라나고, 심해 교회 신도 카시아가 정체를 드러내 도시 유닛을 파괴하려 해요.
그녀를 막아선 건 뜻밖에도 만년 후배 루실라였죠. 늘 농담이나 하던 후배가, 목숨을 걸고 안전밸브를 붙잡아요.
왜냐하면, 왜냐하면 내 뒤에는 길이 없으니까.
— 루실라
카시아는 끝까지 자기 신념을 굽히지 않아요. 사람이 가치에 너무 매이면, 그 가치가 무너지는 순간 함께 무너져버린다고요.
인간의 생명이 어떤 가치에 매이게 되면, 어느 순간에 무의미하게 무너지게 되어 있어요.
— 카시아
조르디는 울피아누스와 함께 비콘탑 중앙 통제실에 남아요. 시설관리소 프레임을 고쳐 탑을 통째로 분리해 가라앉히는 게 유일한 방법이었거든요.
그가 장치를 고치는 동안, 장치를 고치는 사이, 조르디는 등불 하나로 시본을 막아서며 아비투스에게 그동안 묻지 못했던 질문을 던지죠—당신의 반려자를 실망시킨 채 떠나게 한 건 정말 에기르의 미래였냐고, 아니면 당신 자신이었냐고.. 그리고 조르디는 그동안 묻지 못했던 질문을 던지죠—당신을 절망에 빠뜨린 건 정말 에기르의 미래였냐고, 아니면 당신 자신이었냐고.

탑은 결국 가라앉고, 울피아누스는 그 안에 남기로 해요. 자신이 시본과 얼마나 가까워졌는지, 아무도 모르게 확인하고 싶었던 거예요.
6. 이야기 속에서 걸어 나온 학자
투지장 한복판에 시본 한 마리가 나타나요. 200년 전 실종된 전설의 학자 '마르투스'의 목소리로 말하면서요. 그가 바로 심해 교회의 시초였어요.
마르투스는 켈시를 알아봐요. 심지어 아주 오래된 이름으로요.
박사도 낯이 익은 눈치예요. 마르투스는 박사가 예전에 이곳, 바다 깊은 곳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말하죠.
하지만 박사에게는 그 기억이 남아 있지 않아요. 켈시가 대신 대답을 가로채요, 어떤 이유로 박사는 그 시절 대부분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켈시…… 자료에 나온 AMa-10이여. 너는 나를 놀라게 하는군.
— 시본(마르투스)
그는 고대 문명의 멸망과, 그보다 더 큰 파멸의 예감을 봤다고 말해요. 그래서 시본을 키워 종족의 '존속'에 인생을 걸었다고요.
존속 없이 어떻게 문명을 논할 수 있지?
— 시본(마르투스)
클레멘티아가 검을 들이대며 대화를 끊어요. 하지만 마르투스의 마지막 한마디는, 이미 모두의 마음에 박혀버린 뒤였죠.
7. 시본을 몰아내려던 길이, 시본과 함께 열리다
밀리아리움은 병든 부위를 스스로 떼어내며 해수면 위로 떠올라요. 도시 반대편에서는 진짜 광란의 파도—살아있는 시본 떼가 함께 몰려오죠.

이베리아의 잃어버린 등대들도 하나둘 다시 불을 밝혀요. 반세기 넘게 죽은 듯 침묵하던 곳들이에요. 성도 카르멘은 그 빛을 보며 조용히 되뇌죠, 존속 아니면 파멸, 다른 길은 없다고.
그런데 아무도 예상 못 한 일이 벌어져요. 200년 전 죽었던 비콘탑의 부유 기계들이, 시본의 손에 다시 부화한 거예요. 시본은 그 갓난 기계들을 자식처럼 감싸고 헤엄쳐요.
그 빛이 하나둘 이어지며, 마침내 바다 전체를 가로지르는 항로가 완성돼요. 인간이 만들려던 길이 아니라, 시본과 함께 만들어진 길로요.

사실 클레멘티아가 항로에 거는 희망은 처음부터 소박했어요. 10만 명의 군인과 민간인에게, 그리고 그란파로의 징벌군에게, 에기르의 주력 부대가 살아서 참전하는 걸 두 눈으로 보여주는 것. 그거면 충분했죠.
그 사이, 에기르는 드론 대열을 통해 모든 육지 문명에 처음으로 공식 선언을 보내요. 인류가 반드시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고, 그것도 에기르의 지도 아래서요.
에기르의 지도 아래, 우린 반드시 이 난관을 함께 극복해 낼 것입니다.
— 에기르의 방송
글래디아는 이제 남은 임무가 하나 더 있다고 말해요. 옛 동료 울피아누스를 붙잡아, 어비설 헌터스로서 마지막 책임을 묻는 일이죠.
에필로그: 각자의 다음 걸음
글래디아의 어머니이자 과학발전계획소 집정관 호라티아가 홀로그램으로 등장해요. 항로가 열린 지금, 에기르는 우르수스도 카즈델도 볼리바르도 '도와주겠다'고 선언하죠.
켈시는 그 호의 뒤에 숨은 오만을 곧바로 짚어내요. 도움이 정말 도움으로만 끝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는 거예요.

클레멘티아는 정작 호라티아에게 스카디와 박사의 비밀은 숨겨요. 켈시와 이미 뜻을 모았거든요—두 사람의 정체가 밝혀지는 건, 스스로 선택한 순간이어야 한다고.
골목 한구석에서는 스카디가 홀로 마르투스와 마주쳐요. 그는 스카디에게, 그녀가 이샤믈라의 마지막 희망일지도 모른다고 말해요.
스카디는 대답 대신 검을 휘둘러 대화를 끊어버려요. 하지만 검을 거둔 뒤에도, 그녀의 손은 조금 떨리고 있었죠.

아비투스는 항로가 열린 김에, 더 먼 미지의 바다로 떠나겠다며 조르디에게 동행을 제안해요. 혈통을 증명할 필요는 없다고, 그가 처음으로 진심을 담아 말해주죠.
우리는 자신이 어디에 속했는지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 아비투스
조르디는 아비투스와 함께 미지의 항해를 떠날지, 이베리아에 남아 더 무거운 책임을 질지 아직 정하지 못했어요. 성도 카르멘은 어느 쪽이든 자네 몫이라고, 담담히 말해주죠.
그리고 울피아누스는, 답을 좇아 시본의 소굴 더 깊은 곳으로 걸어 들어가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향해서요.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했었죠. 헌터가 해안가에 올라섰지만, 왜 망설이고 불안해하냐고. 이제는 알 것 같아요.
돌아온다는 것과, 정말로 돌아왔다는 것은, 어쩌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