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전략은 매번 무작위로 짜인 길을 반복해 탐험하는 놀이예요. 그래서 정해진 줄거리보다, 그 길에 깔린 세계관과 거기서 되풀이되는 하나의 물음이 이야기의 뼈대가 돼요.
이번 무대는 「살카즈의 영겁 기담」이에요. 그리고 되풀이되는 그 물음은, 이야기는 다시 쓸 수 있을까 하는 거예요. 이미 정해진 결말도, 상상으로 뒤집을 수 있을까 하는 거죠.
레버넌트의 목소리가 박사를 현실에서 끌어내요. 한 차례의 의식, 한 차례의 소통. 대지를 초월한 상상이 곧 시작돼요.

1. 용광로 곁의 이야기꾼
살카즈의 선조들은 죽어서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요. 그들은 레버넌트가 되어 카즈델의 영혼 용광로에 깃든 채, 끊임없이 이야기를 갈구해요.
그 곁엔 님프라는 이야기꾼이 있어요. 그녀는 선조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줘요. 현실의 이야기, 각색한 이야기, 상상의 이야기까지요.
그런데 들려줄 이야기가 다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레버넌트들은 님프 곁을 맴돌며, 그녀가 애써 꺼리는 생각들까지 자꾸 헤집어 새로운 이야기로 재구성해요.
박사는 그 상상 속으로 끌려 들어간 손님이에요. 여기서 걷는 건 행위라기보다 생각에 가까워요. 생각이 녹으면 수면에 잔물결이 일고, 이야기의 경계는 다시 한번 넓어져요.
혼자는 아니에요. 고성에서 만났던 탐정 틴맨이 여기서도 얼굴을 내밀어요. 그는 흩어진 인지를 그러모아 새로운 이야기로 엮고, 날뛰는 레버넌트들과 대신 교섭해 주기도 해요.
선조들은 더 짜릿한 경험을 바라며 끊임없이 굴러다녀요. 틴맨의 도움으로 그들을 이야기 속에 가둬 구슬로 만들어 배낭에 넣어도, 그들은 여전히 다음 번 '자유로운 표현'의 기회를 노려요.

2. 카즈델이라는 심장
무대의 이름은 카즈델이에요. 살카즈들이 목숨을 걸고 세운 고향 도시죠. 그 도시를 움직이는 건 심장처럼 뛰는 영혼 용광로예요.
용광로에 뼈를 던지면, 얽히고설킨 레버넌트들에게서 불만과 분노와 평온과 수치가 한꺼번에 터져 나와요. 그 감정이 곧 카즈델을 굴리는 동력이 돼요.

상상만으로 카즈델은 용광로밖에 없던 빈껍데기에서 번창한 도시로 다시 태어나요. 현실과는 조금씩 다른 디테일과 역사가 그 몸을 채우면서요.
그래서 카즈델의 구조는 상식과 동떨어져 있어요. 길은 직감대로 뻗고 풍경은 잠재의식대로 바뀌어서, 도시 안 사람들은 종종 길을 잃어요. 도시는 그 어리숙한 여행자들을 그저 흥미롭게 바라볼 뿐이에요.
3. 여덟 존을 따라 내려가는 길
이야기는 여덟 개의 존으로 층층이 이어져요. 영혼 융합의 시작에서, 단조된 철의 뿌리로, 먼지투성이 폐허로요.
그다음은 개연성의 갈림길이에요. 박사는 경계를 넘고 또 넘으며 하나 또 하나의 카즈델을 선택하고, 카즈델은 모두 그를 받아들여요. 종말도 통일도 안정도, 여기선 전부 새로운 장으로 가기 위한 분열일 뿐이에요.
허와 실의 경계를 지나 휘황찬란한 하늘에 이르면, 박사는 진실 앞에 쓰러져요. 진실의 저항이 너무나 커서, 오히려 진실로부터 도망치는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자유의 아란야. 궤범은 이미 전해졌고, 그것을 지키면 해탈에 이른다고 해요. 다만 진리는 과연 따를 수 있고 구할 수 있는 것일까요.
연꽃잎이 물에 빠져도 뿌리와 줄기를 상하게 하지 않듯, 집착하지 마라.
— 아란야의 목소리
마지막은 영겁의 안식이에요. 모든 이야기가 여기서 멈춰요. 눈앞의 빛이 어두워지고 용광로 소리가 사라지면, 이야기꾼도 조용히 입을 다물어요.

4. 상상이 곧 역사가 되는 규칙
이곳에선 박사의 선택이 그대로 역사가 돼요. 어떤 생각을 이야기에 바치느냐에 따라, 카즈델은 희망 시대로, 원한 시대로, 혹은 소원 시대로 갈라져요.
희망 시대의 낙서엔 이렇게 적혀 있어요. 재앙으로 부모를 잃은 티카즈 고아를 이웃집 필라인 아저씨가 가족으로 거둬줬다고요. 나는 당당히 에인션츠의 후손이라고요.
원한 시대의 증오는 정반대예요. 여동생은 뱀파이어에게 물려 죽고 아빠는 끌려갔으니, 참회하더라도 그건 살카즈가 멸종한 다음 일이라고요. 같은 대지 위에서 두 시대가 이렇게 엇갈려요.
한 리치는 살카즈의 예언서를 제 운세책으로 착각해요. 온통 고향의 파멸과 원수의 잔인함뿐이라, 좋은 내용을 적어넣으면 불행도 끝나지 않을까 하고요.
……결국 우리는 모두 행복해졌다. 끝!
— 리치

5. 이야기 속을 떠도는 배역들
카즈델은 온갖 배역들로 북적여요. 용암 위에 사슬로 매달린 흉터의 상점에선 자원만 있으면 어떤 용병이든 살 수 있고, 훗날 '흉터 인터내셔널'로 다시 태어나 클립 클리프 같은 리더가 조직을 이끌어요.
스스로를 상업 제국의 주인이라 여기는 오리 '덕로드'는 경매장을 휘저으며 박사와 오리지늄각뿔을 걸고 자존심 싸움을 벌여요.
함락한 도시를 '잃어버린 도시 카즈델'이라 써 붙인 관광지도 있어요. 흙투성이 살카즈 사기꾼이 왕정의 보물이라며 돌멩이를 팔고, 티켓값으로 '바사삭' 세 개를 요구하며 박사를 골리기도 해요.
설산 우체국 도장이 찍힌 수첩을 떨군 버든비스트 '당근', 파이프 속 폐기물에 산다는 절지형 사촌 '슬러그카즈'까지. 저마다 짧은 촌극을 품은 채 이 이야기를 떠돌아요.
그런가 하면 균열을 찢고 나타난 한 사이클롭스는 사뭇 진지해요. 그녀는 박사에게 '미래를 바꾸는 열쇠'를 넘기라 청해요. 자신이 예견한 비참한 미래를 시간 속에서 없애 버리겠다면서요.
갤러리에선 화가가 옛 군왕의 초상을 그려 팔고, '잃어버린 보물'의 뒷이야기를 들으면 그 보물의 새 주인이 박사가 돼요. 카즈델은 이렇게 이야기를 사고파는 것으로 굴러가요.
그중 '떠난 자들의 정원'은 결이 달라요. 두 마왕이 곁을 떠난 친우들을 기리려 카즈델 중심에 세운 기념공원이거든요.
호위대장 아스카론, 과로로 세상을 떠난 의료 전문가 터치, 상업으로 컬럼비아를 움직인 상인 피츠로이, 천수를 누린 기록자 에릭슨. 저마다의 기념비가 조용히 늘어서 있어요.
그리고 반지 10개가 조각된 한 기념비. 거기 새겨진 이름은 아미야예요. 정신을 차려 보면 그 열 개의 반지가 어느새 박사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어요.
어째서인지 그 반지들은 눈앞의 아미야만의 것이 아닌 것 같아요. 마왕의 것이고, 로도스 아일랜드의 것이며, 박사가 아는 그 카우투스의 것이기도 해요.
6. 마지막 핏줄의 수난
이야기들은 살카즈가 걸어온 길도 곳곳에서 되짚어요. 마족이 마지막 핏줄만 남았을 때, 검은 행렬이 살길을 찾아 대지 위를 꿈틀거려요.
밴시의 피리 소리를 따라 땅속 깊이 내려가거나, 리치가 제 생명함을 바쳐 부족을 통과시키거나, 사이클롭스를 따라 사미에 정착하거나. 어느 길을 골라도 카즈델을 세우는 꿈은 아직 멀기만 해요.
훗날 살카즈는 내스티의 설계를 손에 넣어 아예 하늘로 날아올라요. 카즈델이 처음 떠오른 밤, 엔지니어들은 도면을 불태우며 다른 종족과의 화해는 결코 오지 않는다고 냉소해요.
그리고 호국전쟁. 필라인 장군이 4국 연합을 끌어들이자, 새 마왕들과 여섯 영웅이 침입자를 물리치고 테레시스가 그 장군을 참수해요. 박사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이미 제 이야기에 녹아든 역사예요.
7. 최초의 사냥꾼, 최초의 왕
이야기의 가장 밑바닥엔 태고의 장면이 있어요. 은빛 산맥에서 죽어가던 한 추방된 사냥꾼이, 검은 상자에 떠오른 진홍빛 무늬를 보게 돼요.
새하얀 빛이 그의 등 뒤 머리에서 솟아올라요. 칠흑의 사냥꾼이 최초로 각성하자 질서가 생기고 낙원이 세워져요. 그가 계시를 받은 자리엔 훗날 성스러운 뿔이 안치돼요.
그런데 박사는 그 뿔이 살카즈의 것이 아님을 직감해요. 그를 위해 유물을 바꿔준 건 '추방자'라 불린 첫 번째 마왕이었고, 사냥꾼은 훗날 왕관을 쓰고 뭇 생명과 영혼의 왕이 돼요.

또 다른 태고의 장면에선, 검은 짐승과 황금빛 생물이 처음으로 마주쳐요. 세월이 흐르며 종족끼리 더는 서로를 구분하지 않게 되고, 협력해야 모두가 산다는 게 공통된 인식이 돼요.
티카즈는 눈앞의 생물이 굶지 않기를 비는 소원을 듣고 먹이를 양보해요. 안타깝게도 훗날 사람들은 티카즈가 소원을 이뤄준다는 것만 기억한 채 끝없이 빌었고, 결국 티카즈도 자신들도 모두 파멸시켜요.
살카즈가 어떻게 산크타일 수 있을까. 이 물음은 답을 미룬 채 밑바닥에 가라앉아, 나중에 결말 하나를 통째로 뒤흔들어요.
8. 여섯 갈래로 갈라지는 끝
이야기를 어디까지 밀고 갔느냐, 무엇을 손에 쥐었느냐에 따라 「기담」은 서로 다른 끝을 내줘요. 다섯 개의 완결과, 한 번의 붕괴로요.
어느 쪽이든 마지막 페이지에서 박사는 곤란해져요. 상상 속 카즈델을 완벽하게 되살릴수록, 두 마왕에게 박사는 '문명의 존속' 기록에 없는 이례적 존재가 되거든요. 그들에겐 이 이변을 제거할 의무가 있어요.
디 엔드? —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리치의 주인 프레몬트 때문에 끊겨 버려요. '모든 생각의 해답'이라 불리는 그는, 망령을 달래는 것보다 박사가 현재를 위해 벽돌을 쌓아 올리길 더 바라요.
상상 속 카즈델이 아무리 완벽해도, 그건 결국 지어낸 이야기라는 거예요. 그러니 이야기는 여기서 멈추고, 진짜 대지로 돌아가 진짜 도시를 세우라고요.
선조들을 봉인했다 여긴 순간, 그들이 도리어 박사의 이야기를 통해 빠져나가기도 해요. 창백해진 프레몬트와 연신 땀을 닦는 에르망가르드를 보고 있으면, 이 결말이 정말 끝인지 영 불안해져요.
트윈 크라운 — 전임 마왕이 죽고 검은 왕관은 테레시아와 테레시스에게 돌아가요. 그런데 왕관이 둘로 갈라져 두 사람의 머리 위에 나란히 떠올라요.

쌍둥이 왕 덕분에 대지는 평화를 되찾고, 두 세기를 거친 상처가 드디어 치유돼요. 인간의 시대이자, 살카즈가 기꺼이 나누고 싶은 꿈의 터전이에요. 박사의 대담한 가설과 상상이 끝내 이런 결말을 낳은 거죠.
시티 오브 엔젤 — 신성 경비 총기사 불드록카스티가 지키는 결말이에요. 여기서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그 물음이 열매를 맺어요.
살카즈가 곧 산크타이다.
— 괴이한 이야기

카즈델의 용광로 옆엔 낡은 수호총 한 자루가 놓여 있어요. 이 총이 울리면 천지가 뒤집힐 거라는 예감이 들어요.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흐릿하던 연결감이 선명해지며 새하얗고 신성한 도시가 눈앞에 펼쳐져요.
박사는 이 괴이한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어, 레버넌트의 분노도 리치의 주인의 개입도 그를 빼내지 못해요. 마침내 총성이 울리자 '살카즈'와 '산크타'라는 두 단어가 동시에 사라지고, 밝고 신성한 '티카즈' 한 단어만 온 세상에 전해져요.
카쉬냐나의 지혜 — 마하사트바의 권화, 콜람이 여는 결말이에요. 그는 동쪽으로 떠나 해탈을 얻고 아나사가 된 살카즈예요.
콜람은 박사와 수많은 이야기를 나눠요. 오늘은 서로를 계몽했지만, 내일이면 다 함께 아나사의 고향이자 여법의 국토인 '카치디야'에 들어갈 거라고요.

결정은 빛나지만, 수면은 잔잔하다. 연이 닿고, 법이 이루어져, 카치디야로 향하는 문이 열렸다.
— 카치디야로 향하는 길
완벽한 하루 — 노심의 종곡, 아미야가 서 있는 결말이에요. 레버넌트들은 마왕이 모든 걸 파괴했다고 여기지만, 이 이야기는 다른 답을 상상해요.
끝을 향한 맹목적인 갈망은 '종결'이라는 존재를 불러내요. 그것은 '아미야'라는 겉옷을 뒤집어쓴 채 허무에서 나타나요. 절망과 구원과 정지가 각각 그 시작과 변화와 종점을 이뤄요.
재앙과 전쟁 속에서 모든 의료 행위가 증오의 공범이 되어버리자, 아미야는 고통받는 사람들을 하나씩 '고치'에 봉인해요. 오리지늄도 더는 그들의 목숨을 앗아가지 못하도록, 그들의 시간을 통째로 멈춰 놓는 거예요.
그리고 아미야만 홀로 시간 속에 남아, 모든 병의 근원을 치료할 해독제를 찾아 떠나요. 그전까지는 절대적인 고독과 끝이 보이지 않는 긴 여정이 기다릴 뿐이에요.

만약 시간이 충분히 길고, 만약 아미야가 정말로 모든 것을 구할 수 있는 답을 찾아낸다면. 정지 상태에 빠진 모든 생령은 언젠가 구원을 받을 거예요.
끝났든, 끝나지 않았든, 모든 이야기의 고난은 이날에 끝날 것이다.
— 완벽한 하루
9. 행방불명 — 붕괴하는 이야기
완결에 이르지 못한 이야기도 있어요. 실마리만 붙잡고 맹목적으로 끝을 쫓으면,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만 남거든요.
그것을 깨달았을 땐 이미 늦어요. 님프의 발밑은 혼돈으로 변하고, 이야기를 붙들던 실이 하나씩 끊어져요. 끝을 향한 조급함이, 정작 이야기를 지탱하던 뼈대를 부숴 버린 거예요.

"모든 고난이 사라졌습니다." 언뜻 다정한 말 같지만, 그건 구원이 아니에요. 동료는 무응답이고, 앞길은 허무 그 자체이며, 나는 의미마저 잃어요.
너만 남았다. 이야기가 붕괴되었다. 생각. 세 마디가 차례로 끊기며, 상상의 대지는 흔적도 없이 흩어져요. 아무런 결말도 남기지 못한 채로요.
에필로그 — 다시, 처음부터
이야기 밖 현실에선, 두 마왕의 꿈을 이은 자들이 여전히 카즈델을 짓고 있어요. 리치의 주인 프레몬트와 에르망가르드가 그 다리 위에서 박사의 상상을 지켜봐요.
가끔은 '게이트' 하나가 열려, 박사를 감염자의 피난처 '로도즈델'로 데려가기도 해요. 그곳에서 만난 테레시아와 켈시는 이야기들 간의 연결이 생각보다 훨씬 긴밀하다고 일러줘요.
게이트 너머 로도즈델에서 켈시는 이렇게 말해요. 네가 원한다면 다시 이곳에 돌아오는 것도 어렵지 않을 거라고요.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엔 늘 되돌아올 문 하나가 남아 있는 셈이에요.
레버넌트의 목소리가 박사를 다시 부르면, 용광로 곁의 기담은 또 처음부터 시작돼요. 상상이 역사가 되고, 그 역사가 다시 누군가의 이야기가 되면서요.
이야기는 다시 쓸 수 있을까요. 여섯 갈래의 끝과 한 번의 붕괴를 지나도, 카즈델은 아직 하지 못한 마지막 이야기를 기다려요. 용광로 소리가 사라지고 이야기꾼이 침묵할, 그 영겁의 안식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