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의 수도 런디니움을 두고, 빅토리아 대공작들과 카즈델의 살카즈 군대가 성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던 전쟁의 끝자락이에요.
전쟁이 끝나면 다들 집에 갈 줄 알았거든요. 근데 그 귀갓길이, 누군가에겐 또 다른 시작이었어요.
누구는 명령을 내리러, 누구는 죄를 갚으러, 누구는 평생 찾던 사람을 만나러 이 폐허를 가로질렀어요. 모든 걸 결국 불로 끝맺겠다는 어떤 목소리와 함께요.
먼지 한 톨보다 미약한 우리가, 대공작에게 명령을 내렸어요
리드는 스카타나 들판에서부터 자길 따라온 타라인들을 이끄는 작은 리더예요. 근데 정작 런디니움 전장 앞에서는, 다들 캠프에 두고 혼자 가겠대요.
"우린 싸우러 왔어요"라며 따라온 사람들이 서운해하는데도요. 리드는 자기 힘이 먼지 한 톨보다 미약하다는 걸 알거든요. 그래도 마주해야 할 사람이 있었어요. 언니요.
리드가 향한 곳은 웰링턴 공작의 고속 전함 '가스트렐'호였어요. 근데 언니 대신 웰링턴 공작이 나와서, 평화를 논하는 리드를 그저 유세꾼 취급하며 "전장에서 부탁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잘라요.
그래서 리드는 부탁을 접고, 태어나 처음으로 명령을 해요.
타라의 이름으로 명령한다. 도시에 있는 빅토리아 시민들을 구해라.
— 리드
공작은 순순히 따라요. 그가 여태 런디니움 밖에 머문 건 리드의 언니 에블라나 — 더블린의 '리더' — 때문이 아니라, 리드가 명령을 내릴 의지를 보였기 때문이라면서요.

에블라나의 보라색 불꽃이 성벽을 집어삼키고 나흐체러르 킹 네츠살렘과 맞붙는 사이, 리드는 그 성대한 '공연'을 등지고 자길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돌아와요. "집에 가자"고요.
죄를 갚으러, 하필 그 순백의 설원으로
한편 런디니움 뒷골목에선, 갈 곳 없는 살카즈들을 숨겨주는 감염자 부대가 있었어요. 나인이 이끄는 새 리유니온이에요.
나인은 눈앞의 부당함을 지금 당장 뒤엎고 싶어 하고, 이들을 감시하러 온 오퍼레이터 첸은 "여긴 빅토리아니 더 안전한 방법을 쓰라"며 부딪쳐요. 두 사람이 생각하는 '공평'이 서로 달랐거든요.
그 사이에서 오래 침묵하던 사람이 탈룰라예요. 진실을 모르는 감염자들에겐 영웅으로 추앙받는 드라코죠.

탈룰라가 드물게 입을 열어 행선지를 정해요. 우르수스. 자기가 죄를 저지른 그 설원으로 돌아가 진짜 심판을 마주하겠대요.
진정한 불꽃에 이 몸을 던져, 그대로 불사르는 거야. 냉혹한 설원이 녹을 때까지.
— 탈룰라
리유니온의 최후와, 그 시체 속에서 태어날 새로운 무언가를 지켜보라면서요. 첸도 감시자로서 동행하기로 하고, 세 사람은 우르수스로 향해요.
평생 찾던 사람을, 만나기 직전에 놓쳤어요
봉쇄된 런디니움 안으로 사람을 찾으러 들어온 남자가 있었어요. 노웰이에요. 그는 자길 죽지 않는 몸으로 만든 존재, 소원을 들어준다는 전설의 '호국공'을 찾고 있었죠.
대피하는 시민들을 엄호하던 노웰은 자경단 리더 클로비시아를 만나요. 근데 함몰 사고가 나요. 클로비시아는 마지막 순간까지 빨간 머리 아이 올리를 감싸 안고 땅속으로 떨어지고요.
노웰이 폐허를 뒤져 올리를 구해내는데, 어둠 속에서 그 목소리가 울려요. 소원을 말하라고, 보상을 주겠다고요. 노웰은 거절해요. 아이를 데리고 나가는 게 먼저라면서요.
밖으로 나온 뒤에야 노웰은 알게 돼요. 클로비시아는 이미 폐허에서 숨을 거뒀다는 걸. 그리고 자기가 평생을 바쳐 찾던 그 존재가…… 방금 놓친 클로비시아였다는 걸요.
그 순간부터 노웰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어요. 죽지 않던 몸이었는데요.
피를 쏟으며 무릎을 꿇으면서도, 노웰은 자기 상처를 돌보는 대신 이렇게 말해요. 지금은 더 많은 사람을 구해야 한다고요.
죽은 자의 피에서, 마지막 인사를 읽어냈어요
켈시가 지키는 로도스 아일랜드의 안전지점에 오랜만에 손님이 찾아와요. 엔텔레키아 — 죽은 이의 피를 읽어 기억을 꺼내는 '로즈 리버사이드'의 뱀파이어예요.
그녀는 도시를 드나들 통로를 열어주는 대신, 오래 사라진 자매 '노블'의 단서를 원해요. 그리고 함께 움직이던 동료 '똑똑이'와, 무전기 너머로 옛날처럼 서로를 지켜주죠.
근데 지휘 센터를 정리하고 돌아왔을 때, '똑똑이'는 수신기를 끌어안은 채 피 웅덩이에 쓰러져 있었어요. 누군가 그녀의 마지막 존엄만은 지켜준 채로요.

피가 식어가며 기억도 희미해지는데, 손끝에 단단한 게 닿아요. 로즈 리버사이드의 시작점이자 서약이었던, 엔텔레키아 자신의 핏빛 결정. 사라진 노블이 돌려주고 간 거였어요.
노블은 이 전쟁 때문이 아니라 그저 작별하러 왔던 걸지도 몰라요. 엔텔레키아는 '똑똑이'의 꽃잎을 켈시에게 맡겨 고향 카즈델로 보내고, 자매들을 찾아 다시 피의 강으로 떠나요.
전쟁의 신은, 자기가 키운 전쟁 속에서 스스로 죽기로 했어요
성벽이 뚫린 뒤 전장은 성왕궁 서쪽 회당으로 옮겨가요. 네츠살렘이 부패의 짙은 안개로 광장 전체를 죽음의 늪으로 만들어버렸거든요.
부식되는 안갯속에서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버텨요. 마가렛과 나이팅게일은 한 명이라도 더 살려 부패의 양분을 끊고, 비나 — 돌아온 빅토리아의 국왕 — 가 사람들을 이끌어요.
살카즈 쪽에서도 외드레르, 이네스, 위셔델이 '바벨'의 이름으로 지휘 센터를 장악하고, 파라곤 부대의 델핀은 "이 살카즈들의 목표는 우리와 같다"며 길을 터줘요.
그리고 네츠살렘은, 싸우러 온 게 아니래요.
상관없다. 나를 길러주고, 또 내가 길러 낸 이 전쟁, 이미 끝났다.
— 네츠살렘
천 년을 반복된 전쟁의 목적은 이뤄졌고, 살카즈는 처음으로 스스로 운명을 쥐게 됐다면서요. 그는 남은 여운 — 목적조차 없는 전쟁 그 자체 — 을 위해, 스스로를 죽음에 바쳐요.
안개가 걷힌 자리에 떠오른 건 승리가 아니라, 시체의 산 위로 피처럼 쏟아지는 차가운 일출이었어요.
집에 가는 길 위로, 처음 보는 재앙이 떠올랐어요

전쟁이 끝나고, 살카즈들은 노인과 아이와 부상자까지 데리고 카즈델로 향하는 대규모 철수를 시작해요. 외드레르는 이 행렬이 약해 보이는 순간 물어뜯길 걸 알아서, 강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해요.
그 수단이 무서웠어요. 살카즈의 왕관 권능 '암나남'이 각국 수도 상공에 재앙 구름을 띄운 거예요. 츠빌링슈튀르메, 라테라노, 몬텔루페…… 테라 전역이 그 그림자를 올려다봤어요. 위협이자 시연이었죠.
그런데 그 재앙 행렬을 막으러 온 함대 앞에, 작은 카우투스 소녀가 걸어 나와요. 아미야, 로도스 아일랜드의 리더예요.

테레시아에게서 검은 왕관을 물려받은 아미야가, 처음으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 순간이었어요. 살카즈들의 공포와 광기가 머릿속으로 밀려드는데도, 그녀는 장벽을 지켜내요.
원한의 굴레는 이제 끝날 때가 됐어요.
— 아미야
함대 하나가 마침내 방향을 돌리고…… 그때 아미야는 이상하리만치 선명한 목소리를 들어요.
아직 밝혀지지 않은 계시

라테라노의 교황 이반젤리스타 11세였어요. 자신과 닮은 존재가 스스로 선택을 내렸음을 감지하고, 아미야에게 첫 질문을 던져요. "너는 누구냐"고요.
두 사람은 긴 여정을 이야기해요. 원한을 내려놓는 데엔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할 텐데, 만약 테라에 그만한 시간이 남지 않았다면 어떡하냐고요.

같은 시각, 한 사람이 어떤 발자국을 따라 정지된 허공에 들어서요. 하지만 그가 찾던 이는 이미 손 닿지 않는 곳으로 떠난 뒤였어요. 그는 자신이 늦었다는 걸 받아들여야 했죠.
모든 걸 불로 끝맺겠다던 목소리는 전장과 함께 사라졌어요.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행렬 위엔 재앙 구름이 따라붙었고, 교황은 지금껏 맞서본 적 없는 위기가 이미 눈앞에 왔다고 했어요.
그것이 눈앞에 다가왔다.
— 이반젤리스타 11세
전쟁 하나가 겨우 재로 사그라든 자리에서, 아무도 이름 붙이지 못한 다음 불씨가 막 피어오르고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