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바르에는 세 개의 정부가 서로 물고 뜯는 나라 한복판에, 유일하게 전쟁을 모르는 도시가 있어요. 이름은 도솔레스. 인공 바다와 카지노와 술과 유흥으로만 굴러가는, 시장 칸델라 산체스의 개인 왕국이죠.
매년 이 도시는 용문에 초대장을 보내는데, 래트킹도 웨이 옌우도 한 번을 안 갔어요. 그런데 이번엔 웨이 옌우의 아내 후미즈키가 몰래 손을 써서, 래트킹의 딸 린 위시아와 로도스 아일랜드에 가 있던 첸을 각자 도솔레스로 떠밀어 보냅니다.
두 사람 다 서로가 온다는 건 전혀 몰랐고요. 도착하자마자 시장 관저에서 딱 마주친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같은 대사를 내뱉어요. '네가 왜 거기서 나와?!'
1. 놀러 왔다가 대회 우승자가 되다
칸델라는 첫 만남부터 화통했어요. 용문 총독 대신 왔으니 부담 갖지 말라며 한도 없는 카드부터 쥐여주고, 요즘 늘어난 무기 밀수 얘기를 슬쩍 흘립니다. 심심하면 조사하며 놀아도 좋다는 거죠.

에르네스토가 안내를 맡자마자 사고가 터졌어요. 배후 없는 만만한 카지노를 찾아달라던 린 위시아가 밑장 빼는 사장을 털어버리고 덤벼드는 패거리를 두들겨 쫓다 보니, 어느새 그날 열리던 예선 최종전 '대난투 스매시 스플래시' 경기장이었죠. 뒤늦게 연락받고 달려온 첸까지 휩쓸리면서, 둘은 자기도 모르는 새 본선 진출자가 됩니다.
예선 통과 시상식에서야 첫 정신이 들어요. 심사위원 판초가 내미는 순금 조각상을 받아 들고, 얼떨결에 지어야 했던 팀 이름은 첸이 즉석에서 던진 '용쟁쥐투'. 용의 여자와 쥐의 딸이 싸운다는 뜻이었겠지만, 린 위시아 표정은 이미 다 말하고 있었죠.
본선 전날 열린 팀 소개식에는 온갖 팀이 무대에 올라요. 닭살 커플 '허니 홀리데이', 대식가 미즈키의 '팩맨', 현지인 팀 '그레이 페더'까지. 그 사이에서 '용쟁쥐투'라는 이름을 MC가 진지하게 불러줄 때, 첸과 린 위시아는 나란히 한숨만 내쉬었죠.
네가 왜 거기서 나와?!
— 첸 & 린 위시아
2. 순금 스무 개, 우정은 0개
경기 전날까지 첸은 이 도시가 영 마음에 안 들었어요. 카지노, 바, 레스토랑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 보였는데, 마침 TV에서 특별 게스트 소식이 흘러나옵니다. 정체를 숨긴 인기 아티스트 D.D.D.가 이번 대회의 스페셜 MC를 맡는다는 거였죠.
본선 1라운드는 빈 주택가에 숨겨둔 순금 스무 개를 찾는 경기였어요. 첸과 린 위시아는 상의 끝에 따로 움직이기로 하죠. 협력을 피한다는 점에서만 의견이 완벽하게 일치했거든요.
혼자 다니던 첸은 포위당한 선수 미즈키를 구해주다 골목 한복판에서 열몇 명에게 둘러싸여요. 지붕과 담장 위에서 적의를 품은 선수들이 첸을 노려보는 그 순간, 뒤늦게 도착한 린 위시아가 조용히 지붕에서 뛰어내려 나머지를 정리합니다.

정작 린 위시아는 그날의 진짜 수확을 첸에게 말하지 않았어요. 팀 '그레이 페더'의 라파엘라가 주민 구역에 폭탄을 잔뜩 심는 걸 목격했거든요. 첸은 그것도 모른 채, 우승 후보 '용쟁쥐투'가 1위로 2라운드에 올랐다는 중계만 지켜봅니다.

3. 용문 아가씨들, 몰래 도시를 해부하다
첸과 린 위시아가 경기에 몰두하는 동안, 뒤늦게 도솔레스에 도착한 스와이어와 호시구마는 다른 종류의 조사를 하고 있었어요. 몰래 놀러 온 주제에, 스와이어는 이 도시의 뒷사정이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거든요.
도시마다 심장이 있다면 용문의 심장은 신선한 피로 건강하게 뛰지만, 도솔레스의 심장은 탁한 피를 마시고도 오히려 더 세차게 뛴다는 게 스와이어의 결론이었어요. 유흥과 도박만으로는 절대 이런 도시를 굴릴 수 없다는 거죠.
용문보다 더 생명력이 넘치는 것 같아. 더군다나 이 도시는 정세가 복잡한 볼리바르 안에 있는데도.
— 스와이어
그중에서도 눈에 띈 건 도시 외곽의 공장 지대였어요. 술과 커피와 설탕을 볼리바르 전역에 대는 이 공장들 덕분에, 도솔레스는 유흥만으로 굴러가는 도시가 아니라는 게 드러났죠.
교외의 공장들, 넘치는 술과 커피와 설탕, 그리고 잘 무장한 경비들까지 훑어본 두 사람은 결론을 내려요. 이 도시를 이렇게 만든 사람은 분명, 강하면서도 광적인 지배자일 거라고요.
4. 술 한잔 하자던 언니, 사실은 취조였다
린 위시아는 첸을 바로 불러내 폭탄 얘기를 꺼내요. 유력한 용의자는 둘의 가이드 에르네스토였지만, 그다음이 문제였죠. 첸은 칸델라 시장에게 알리자 했고, 린 위시아는 알려봐야 소용없다고 잘랐어요.
린 위시아는 자신은 그저 웨이 옌우의 체면을 지키러 왔을 뿐, 이 도시가 어떻게 되든 관심 없다고 잘라 말해요. 첸의 정의감이 오히려 걱정된다는 말까지 얹으면서요. 순간 첸의 주먹이 린 위시아의 눈앞에서 멈추고, 린 위시아가 그 주먹을 움켜쥡니다.
찻잔 대신 주먹이 오갈 뻔한 자리였지만, 결국 둘 다 손을 거뒀어요. 오랜 앙숙답게, 화해도 정리도 없이 각자 할 일로 돌아갔을 뿐이죠.
언젠가는 너를 법으로 처리할 거야. / 그래도 정의보다는 듣기 좋네. 정말 그런 날이 온다면 목을 씻고 기다릴게.
— 첸 / 린 위시아
5. 자전거 한 대, 발판은 상대 선수 머리
2라운드는 마라톤·사이클·수영을 잇는 철인 삼종. 이번엔 다른 팀들도 전략을 바꿔서, 싸우는 대신 둘을 지름길로 몰아넣어요. 그 골목 끝엔 에르네스토의 무기점이 있었고, 둘이 몸을 피하자마자 가게가 통째로 폭발합니다.
이 소동마저 칸델라에게는 구경거리였어요. 중계 화면 너머로 상황을 지켜보며, 저 둘을 막을 방법이 없다면 그것도 나름 재미있는 그림이라며 웃어넘겼거든요.
에르네스토가 남아서 시간을 벌겠다 했지만, 정작 폭발한 건 그의 가게였어요. 잿더미 속에서 걸어 나온 두 사람에게 남은 자전거는 단 한 대. 린 위시아가 짧게 한마디 던져요.
타. / 진심이야?
— 린 위시아 / 첸
자전거 한 대에 둘이 타고 앞뒤로 싸우며 달리는 꼴은 우스웠지만 효과는 확실했어요. 해변에 닿자 린 위시아는 모래를 유리로 바꿔 발판을 만들고, 앞선 선수들 머리를 사뿐히 즈려밟으며 1위로 골인합니다.

6. 그 사람, 처음부터 미끼였다
무기점이 왜 하필 자기들 발밑에서 터졌는지, 첸은 그날부터 의심을 거두지 않았어요. 에르네스토를 다시 만난 자리에서 첸은 담담히 말합니다. 자신을 함정에 가둔 것도, 스스로 배후처럼 보이게 만든 것도, 전부 진짜 배후를 감추기 위한 수였다고요.
에르네스토는 부정하지 않아요. 오히려 인정하죠. 자기 아버지, 이 도시의 원로 심사위원 판초가 오래전 볼리바르 독립군 출신이며, 도솔레스를 통째로 빼앗을 계획을 몇 년째 준비해왔다는 사실을요.
에르네스토는 씁쓸하게 덧붙여요. 자기 아버지는 국가라는 허상만 좇을 뿐 볼리바르가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할지 모르지만, 칸델라는 적어도 하나의 길을 찾아 그 안에서 존재 이유를 만들어냈다고요. 궤변인 걸 알면서도 그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고, 첸에게 고백합니다.
그는 개입하지만 말아 달라고, 두 사람에게는 절대 해를 끼치지 않겠다고 청해요. 첸은 그 제안을 거절합니다.
지금까지 내가 네 함정에 잘 빠져 있었지? 에르네스토.
— 첸
7. 그랑프리 최종전은 사실 쿠데타였다
3라운드를 앞둔 밤, 판초가 도시 전체 방송을 가로채요. 3천 명의 전우를 잃고도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던 지난 독립전쟁, 그리고 그 위에 세워진 도솔레스라는 낙원을 향해 그는 선전포고를 합니다.
아무도 이 나라를 구하지 않는다면, 내가 구한다.
— 판초
도시 곳곳에서 폭발이 일고, 크루즈 위에서는 판초의 부하들이 각국 권력자들을 인질로 잡아요. 그런데 정작 시장 칸델라는 피하기는커녕 특등석에 앉아, 이 상황마저 그랑프리의 '진짜 클라이맥스'라며 생중계를 이어가라고 지시합니다.
동요하는 시민들 앞에서 칸델라는 태연히 전체 방송을 켜요. 오히려 판초에게 고맙다고, 덕분에 그랑프리가 훨씬 흥미진진해졌다고 너스레를 떨면서요. 소란 피우는 놈들을 막아주면 응당한 보상을 주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죠.
해변에서도 정체 모를 습격자들이 날뛰자, 마침 놀러 왔던 시데로카와 호시구마가 발 벗고 나서요. 관광객이라 나설 필요 없다던 호시구마도, 결국은 앞장서서 습격자들을 막아섭니다.
만약 정말로 두 사람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긴다면, 배 위에 있는 저 권력층들도 불쌍한 판초와 함께 매장될 거야.
— 칸델라
배 위에 갇힌 첸과 린 위시아는 통신을 붙든 채 역할을 나눠요. 린 위시아가 인질을 빼내는 동안, 첸이 판초의 시선을 붙드는 것으로.
8. 인질은 구했고, 배는 터뜨렸다
인질을 구한 린 위시아가 갑자기 연락을 끊어요. 그사이 첸은 갑판 위에서 판초와 정면으로 마주칩니다. 판초는 돈과 향락밖에 모르는 자들을 모조리 없애겠다며 닻을 들어 올려요.
판초의 말에 첸은 선뜻 반박하지 못해요. 볼리바르도 전쟁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자신에게, 더 나은 방법이 있을 리 없었으니까요.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물러설 마음도 없었죠. 첸은 조용히 검 대신 챙겨온 워터건을 겨눕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하지 않는다면, 나는 첸 훼이지에가 아니야.
— 첸
판초가 닻을 내리치려는 순간, 끊겼던 통신 너머로 린 위시아의 목소리가 끼어들어요. '뛰어.' 첸은 망설임 없이 갑판에서 그대로 뛰어내립니다.
결정타를 날린 건 린 위시아였어요. 작은 보트로 첸을 낚아채고는, 빠져나오며 미리 심어둔 폭탄으로 크루즈를 통째로 날려버립니다.

그 후, 도솔레스
판초는 순순히 항복했지만 칸델라는 그를 벌하지 않아요. 그저 마주 앉아 커피를 대접하며, 정의도 독립도 없는 이 도시가 그런 단어들보다 사람을 더 잘 지킨다는 걸 담담히 되새겨줄 뿐이죠.
판초는 분통을 터뜨려요. 몇 년을 준비한 계획이 하필 우연히 초대된 외지인 둘 때문에 무너졌다고요.
칸델라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받아쳐요. 애초에 상대는 자신이 아니었으니, 패배한 것도 아니라고.
진짜 위협은 사람들이 더 이상 욕망을 가지지 않는 것, 더 이상 향락을 추구하지 않는 거야.
— 칸델라
에르네스토와 라파엘라는 추방됐어요. 떠나기 전, 에르네스토는 첸에게 속내를 털어놔요. 이 도시가 어떻게 세워졌는지 똑똑히 알면서도, 반짝이는 빌딩과 푸른 바다를 보면 저도 모르게 옳다는 생각이 든다고요.
당신들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나는 기꺼이 칸델라 시장 밑에서 계속 일했을 거야.
— 에르네스토
그럼에도 그는 떠나기로 해요. 다른 나라에는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첸이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 때문에요. 린 위시아는 그런 그를 두고 짧게 한마디 남기죠.
'이대로 두기엔 좀 아깝달까.'
한편 특별 MC로 고생한 D.D.D.는 그날 밤의 두려움과 짜릿함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그걸 담은 곡을 쓰겠다고 다짐해요. 정작 그날의 주인공들은 그런 노래가 나오는 줄도 모르고 있었지만요.
호시구마와 스와이어는 뒤늦게 나타나 두 사람과 재회하고, 넷은 사진 한 장을 남겨요. 그 사진은 후미즈키의 손을 거쳐, 웨이 옌우의 책상 위 커피잔 옆에 놓입니다.

첸이 돌아올까요? / 돌아올 거야.
— 후미즈키 / 웨이 옌우
초대장 한 장으로 시작된 억지 휴가는, 결국 두 앙숙이 도시 하나를 지켜내는 것으로 끝났어요. 여전히 둘은 화해했다고 말하지 않아요. 그저 다음에 또 마주치면, 또 '네가 왜 거기서 나와?!'를 외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