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스타는 화산과 흑요석, 그리고 한때 대륙 최고였다는 록 축제로 먹고살던 휴양 도시였어요. 그런데 그 화산이 진짜로 깨어날 조짐을 보이자, 도시는 통째로 짐을 싸서 100킬로미터 떨어진 이동도시로 이사해 버렸죠.
죽은 화산학자 부부의 딸 아델은, 새로 지어진 화산박물관에서 부모님이 남긴 연구 자료를 정리하러 시에스타를 찾아요. 마침 그 화산이 진짜 분화를 앞두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도착한 첫날 밤, 말하는 양떼가 나타나서 이런 제안을 해요. "내가 여기서 잃어버린 것 세 가지만 찾아줘." 북풍과 씨앗과 모피, 딱 그거면 된다면서요.
1. 말 거는 양은 원래 이런가요 — 대답까지 하는 건 처음이라
시에스타는 원래 화산 자락의 해변 도시였어요. 온천과 흑요석, 옵시디언 뮤직 페스티벌로 유명했지만, 화산이 다시 꿈틀대자 통째로 짐을 싸서 100킬로미터 떨어진 이동도시 '뉴시에스타'로 옮겨 갔죠.
4년 전, 화산학자 부부 카티아와 마그나 나우만이 우나 화산 관측 도중 사고로 세상을 떠났어요. 두 사람의 딸 아델은 광석병을 앓으면서도 부모님의 마지막 연구를 이어가는 신입 연구원이에요. 청력이 나빠져 보청기 없인 대화도 힘들지만, 화산 얘기만 나오면 눈이 반짝여요.
부모님의 옛 동료 켈러가 아델을 불렀어요. 새 화산박물관에서 나우만 부부의 자료를 정리해 달라고요. 마침 시에스타 화산도 곧 분화할 예정이라, 관측하기엔 더없이 좋은 기회라면서요.

박물관 진열장엔 낡은 화산 탐사용 방호복 한 벌이 전시돼 있어요. 아델에게 너무나 익숙한, 엄마 마그나의 옷이었죠. 유리 너머로 손을 뻗어보지만, 만질 수는 없어요.

그런데 도착한 첫날 밤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져요. 뭉게구름처럼 복슬복슬한 생물이 우체통 위에 앉아 말을 거는 거예요. "안녕, 좋은 밤이야."
이 생물은 자기를 돌리라고 소개해요. 아델의 부모님을 옛날부터 알았다는데, 정작 자기 정체는 얼버무려요. 시에스타 곳곳에 사람 눈엔 안 보이는 복슬복슬한 양떼가 널려 있는데, 그것들도 전부 돌리의 '분신'이래요.
간단히 말해서 내가 시에스타에서 잃어버린 몇 가지 물건을 찾아줬으면 해. 일종의 보물찾기 게임인 셈이지.
— 돌리
돌리가 찾는 건 딱 세 가지, 북풍과 씨앗과 모피예요. 대신 아델이 "계속 찾고 있던 것"을 보상으로 주겠다고 하죠. 뭘 찾고 있었냐는 물음엔 끝까지 답을 안 해줘요.
한편 이 도시엔 이미 수상한 사람이 여럿 도착해 있었어요. 그중 한 명이 용문 근위국 총경 스와이어, 최대 상단 가문의 후계자인데 이번엔 "그냥 휴가"라고 우겼죠. 물론 아무도 안 믿었어요.
2. 알바 네 개 뛰는 소년, 정작 숨기는 건 자기 몸 하나
에니스는 화물 운송 기사부터 매표원, 수영 코치까지 알바를 몇 개나 겹쳐 뛰는 시에스타 소년이에요. 입양된 두 동생 루트와 리브, 그리고 술집 '순백의 화산'을 운영하는 엄마 헤일리를 먹여 살리는 게 그의 일이거든요.
그런 에니스가 길에서 뛰다가 아델과 정면으로 부딪혀요. 미안한 마음에 치료비까지 대신 내주지만, 정작 자기 몸에 대해선 아무 말이 없어요.
사실 에니스도 광석병 환자였어요. 3개월 전 흑요석을 몰래 캐다가 오리지늄에 긁혔거든요. 가족한테는 끝까지 숨기려 했지만, 얼굴에 다 티가 나요.
아델은 에니스에게 연구용 흑요석 표본을 얻는 대신, 다시는 화산 근처에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해요. 정작 그 약속, 에니스는 지키지 못해요.
나중에 엄마 헤일리가 진실을 알게 됐을 때, 그녀가 한 말이 정곡을 찔러요. "네가 아무것도 안 해도 넌 내 아들이야, 이건 거래가 필요한 관계가 아니니까."
혈연이 아니어도 가족은 가족이라는 거예요.
3. 제자가 스승을 의심하다 — 근데 의심할수록 수상해지는 건 자기 마음
아델 앞으로 배달된 편지 한 통. 봉투가 반쯤 뜯긴 채, 안엔 우나 화산에서 찍은 아버지의 사진이 들어 있었어요. 몇 년째 소식이 끊겼던 아버지가 보낸 편지처럼요.
이상한 건 이뿐만이 아니에요. 박물관 자료 중, 아빠 카티아의 연구 노트에 있어야 할 페이지 몇 장이 통째로 사라져 있어요. 대신 그 자리엔 켈러만 갖고 있던 낯선 노트가 있죠.
칸은 나우만 부부의 제자였어요. 그리고 스승 켈러를 오랫동안 의심해 왔죠. 사고 나기 1년 전, 라이타니엔 군부가 자꾸 두 사람의 연구실을 드나들었다는 거예요.
칸의 말로는, 그때 두 사람의 연구를 자유롭게 볼 수 있던 사람은 딱 한 명, 켈러뿐이었대요. 게다가 켈러는 등반 전날 갑자기 탐사대를 이탈했고요.
그래서 나는 두 분의 희생이 정체 모를 그림자에 뒤덮이는 걸 절대 받아들일 수 없어.
— 칸
아델은 아직 몰라요. 칸의 의심이 맞는지, 아니면 켈러에게 말 못 할 다른 사정이 있는지. 켈러는 그저 "관측이 끝나면 다 알려줄게"라는 말만 반복해요.
4. 재벌 2세 두 명이 진흙탕 싸움을 하다가, 어느새 동업자
바이슨은 마운틴대쉬 로지스틱스 후계자예요. 아버지 에우릴의 그늘에서 벗어나려고, 시에스타 신규 구역 개발권 입찰에 혼자 뛰어들었죠. 상대는 하필 스와이어.
두 사람은 술집에서 만나자마자 기 싸움부터 시작해요. 스와이어는 워터파크를, 바이슨은 물류센터를 짓겠다며 팽팽하게 맞서죠. 근데 정작 둘 다 은근히 서로를 마음에 들어 해요.
스와이어는 상가 주민 에니스를 정보원으로 포섭하고, 온천 호텔 사장 펠리페와는 흑요석 소장품을 미끼로 거래를 트고, 몰래 워터파크를 뚝딱 지어 버려요. 그 과정에서 돌리의 쪼꼬미양 떼가 수로에 난입해 서프보드가 하늘을 나는 대참사가 벌어지지만요.

결국 여론조사에서 스와이어의 방안이 앞서요. 그런데 스와이어는 승부욕보다 다른 셈을 하고 있었어요. 입찰에서 빠지는 대신 바이슨 회사의 지분을 받는 조건으로요.
"똑똑한 상인은 항상 윈윈할 방법을 찾잖아." 두 사람은 결국 라이벌에서 동업자가 돼요. 스와이어는 이걸 빌미로 용문 가문 내 자기 입지까지 다지려 하고, 바이슨은 아버지 회사에서 독립을 선언하죠. 재벌 2세들의 여름휴가치고는 스케일이 좀 크네요.
5. 1년 넘게 문 닫은 카페에 손님이 왔다 — 근데 사장님 옛 친구였다
코스타는 주민들에게 이주 의향서에 서명을 받으러 다니는 시청 직원이에요. 사실 그는 폐업한 지 1년 된 '카페 모킹버드' 집 아들이고, 젊을 때는 록 밴드를 했던 사람이었죠.
어느 날 밤, 코스타는 아무도 없는 카페 문을 다시 열고 커피를 내려요.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요. "혹시 아직 영업해?"

문 앞엔 켈러가 서 있었어요. 두 사람은 20년 전, 이 카페에서 카티아·마그나와 처음 만났던 여름을 함께 추억해요. 코스타가 몰래 만들어 준 '화산 커피'까지도요.
켈러가 갑자기 시에스타를 떠났던 그 여름, 코스타는 이유도 모른 채 그녀를 떠나보내야 했어요.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길을 걸어 지금 여기까지 왔죠.
코스타의 할아버지는 그날 밤 조용히 세상을 떠나요. 손자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건 낡은 칼림바 하나와, 안정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잔소리였어요.
6. 양털 두 마리와 밤 산책을 갔다가 — 사실은 하늘로 가는 길이었다
어느 날 밤, 아델은 엄마의 낡은 방호복을 입은 채 이상한 꿈에 빠져요. 온화한 생물과 엄숙한 생물, 두 마리의 쪼꼬미양이 그녀를 데리고 상점가를 걸어요.
이 가게에서 파는 건 나침반이나 텐트가 아니에요. '지식'과 '용기', 그리고 아주 비싼 '행운'. 지불 수단은 신기하게도 병뚜껑이에요.
두 생물은 아델에게 옛이야기를 들려줘요. 오래전에 심었던 돌멩이 하나를 잃어버렸는데, 그 돌멩이는 결국 땅속 깊은 곳에서 마그마가 됐다고요. 슬프냐는 물음에 둘은 너무 후회한다면서도, 돌멩이가 결국 마그마가 된 것만은 아주 마음에 든다고 해요.
과거의 모든 일들은 정말로 지나가 버리는 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네 옆에 남아 있는 거야.
— 온화한 생물
이 이야기가 곧 자기들 얘기라는 걸, 아델은 어렴풋이 눈치채요. 그런데 화산 쪽에서 정체 모를 심장 박동이 울리자, 두 생물의 표정이 갑자기 달라져요.

"비가 내리기 전에 화산으로 가야 해." 둘은 그렇게 말하고 야경 속으로 사라져요. 다음 날 아침, 아델은 시에스타의 어느 거리에서도 쪼꼬미양을 단 한 마리도 볼 수 없었어요.
7. 쪼꼬미양이 다짜고짜 가슴에 머리를 박다 — 그 심장 소리의 주인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
실론은 시장 허먼의 딸이자 로도스 아일랜드 소속 의사예요. 감염자를 돕겠다며 시에스타로 돌아왔지만, 정작 아버지와는 데면데면해요.
실론은 흑요석 불법 채굴 노동자들을 조사하다가, 뜻밖의 이름을 들어요. 예전에 광산을 드나들던 임신한 학자, 바바라. 노동자들은 그녀가 실론과 꼭 닮았다고 해요.
온천 호텔 사장 펠리페의 수집품 중엔, 오래전 노동자들이 그 학자에게 주려다 못 준 흑요석 정동이 있었어요. 아기의 탄생을 축하하며 준비했던 선물이었죠.
그날 저녁, 아델이 쫓던 쪼꼬미양 한 마리가 갑자기 실론의 품으로 뛰어들어요. 그러곤 가슴에 머리를 대고, 오래전에 놓쳤던 심장 소리를 듣는 것처럼 가만히 있어요.
실론은 그 순간 이유 모를 그리움을 느껴요. 한 번도 본 적 없는 엄마 생각이 났거든요. 시에스타의 관대한 감염자 정책이 사실 누구의 뜻이었는지, 실론은 어렴풋이 깨달아요.
8. 화산 코앞에서 벌어진 취조 — 근데 심문관도 피고인도 벌벌 떨고 있었다
1호 관측소에서 신호가 끊겼어요. 마지막으로 보내온 데이터엔 설명 안 되는 고온 반응이 찍혀 있었죠. 켈러는 기기 오류라며 넘기려 하지만, 아델은 물러서지 않아요.
"이제 와서 회피하면, 두 분의 희생이 무의미했다고 인정하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결국 두 사람은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화산으로 향해요.
그런데 그런데 뒤늦게 칸이 헐레벌떡 관측소까지 쫓아와요. 손엔 낡은 서류 봉투 하나. 켈러와 라이타니엔 군부가 주고받은 편지, 아델조차 본 적 없는 증거였죠.
칸은 화산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켈러에게 답을 요구해요. 왜 사고 직전에 탐사대를 이탈했는지, 왜 군부와의 서신에 카티아의 자료가 들어 있었는지.
아빠랑 엄마…… 두 분의 희생은 정말 사고인가요……?
— 아델
답은 나중에야 밝혀져요. 켈러는 부부가 방해받지 않고 탐사를 마치도록, 대신 군부를 만나 시간을 끌어주려 했을 뿐이었어요. 그사이 사고가 날 줄은, 켈러 자신도 몰랐던 거예요.
9. 화산이 터지는 밤, 다들 도망칠 시간에 파티를 열었다
방송이 분화 임박을 알려요. 상가 사람들은 짐 대신 그릴과 기타를 챙겨 나와, 옛 시에스타를 향해 마지막 파티를 열어요. 어차피 다시는 못 볼 풍경이니까요.
그 소란 통에 동생 리브가 안 보여요. 에니스는 바닷물이 차오르는 옛 해안까지 리브를 쫓아가요. 그리고 몸속 오리지늄 결정이 뜨겁게 뛰는 걸 처음으로 느껴요.
봐…… 내가 말했지…… 나는 마술을 부릴 수 있다고……
— 에니스
동생들에게 늘 흙 인형으로 마법 흉내나 내던 에니스가, 정말로 흙과 돌을 일으켜 파도를 막아요.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쪼꼬미양들이 몰려와, 몸으로 파도를 막는 둑이 되어줘요.

멀리서 마침내 화산이 분화해요. 사람들은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숨을 죽여요. 검붉은 연기가 하늘 절반을 뒤덮더니, 이내 놀랍도록 새하얀 빛깔로 바뀌어요.

전설로만 떠돌던 '순백의 화산'이, 분화하는 그 순간에야 진짜 모습을 드러낸 거예요. 다들 그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사라지는 고향과 작별 인사를 나눠요.
에필로그. 다시, 여름
분화 다음 날, 아델은 부모님께 편지를 써요. 시에스타에서 만난 옛 친구들 얘기, 자신이 생각보다 강하지 않다는 고백, 그리고 여전히 화산을 사랑한다는 다짐까지 담아서요.

켈러는 아델에게 마지막 남은 상자 하나를 보여줘요. 폐기 도장이 찍힌 '소나기 프로젝트' 서류, 부모님의 연구가 한때 무기화 논의에 휘말렸다는 증거였죠. 그리고 진짜 잘못은 자기 몫이라 여기던 죄책감도, 조금씩 내려놓기 시작해요.
에니스는 결국 가족에게 여행을 떠나겠다고 말해요. 아버지가 그랬듯, 자기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어서요. 술집 '순백의 화산'은 철거 대신 워터파크의 일부로 살아남고요.
실론은 뉴시에스타에 감염자 치료 센터를 세워요. 엄마 바바라가 하려 했던 일을, 이번엔 딸이 자기 방식대로 이어가는 거예요.
돌리는 마지막으로 아델에게 진짜 보상을 건네요. 다름 아닌 화산경보꽃. 화산 너머 비탈에 몰래 심어뒀던, 부모님이 평생 찾아 헤매던 바로 그 꽃이었어요.
"다음에 만날 때는 진심으로 행복한 아델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할게." 돌리는 그렇게 인사하고, 화산 놀이동산의 개장을 맞으러 훌쩍 떠나가요.
이야기의 맨 처음, 정체 모를 목소리가 새로운 재밌는 걸 만들지 못하면 자기도 지루해서 못 견디겠다고 푸념했었죠. 그 목소리의 주인이 바로 돌리였다는 걸, 이제는 알 것 같아요. 화산이 하얗게 타오른 이 여름, 돌리도 아델도 마침내 자기만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씩 찾은 셈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