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도스 아일랜드는 광석병 환자와 갈 곳 잃은 이들을 태우고 테라를 떠도는 이동 함선이에요. 여기 오퍼레이터들은 하나같이, 어딘가를 떠나온 사람들이거든요.
그런 함선에서 요즘 유독 같은 단어가 자주 들려와요. 고향. 누군가는 축제를 준비하고, 누군가는 옛 기억을 더듬고, 누군가는 편지를 부치면서요.
떠나온 사람들이 왜 자꾸, 돌아갈 곳을 떠올리는 걸까요. 이건 그 물음을 안고 사는 사람들의, 일곱 갈래 이야기예요.
기억 속 고향을 찾으러 갔다가, 광산 붕괴만 해결하고 온 사람
카즈델 변경의 벨로니 마을. 광산이 붕괴돼 봉쇄된 이 낡은 마을에, 로도스 아일랜드가 초기 탐사대를 보내요. 살카즈 오퍼레이터 메테오라이트, 그리고 굳이 따라나선 수르트요.
수르트는 원인 모를 기억 장애를 안고 있어요. 머릿속엔 너무 많은 기억이 뒤섞여서, 무엇이 진짜인지 몰라 기억 속 장소를 하나하나 찾아다니는 중이거든요. 이 지역이 왠지 익숙했대요.
근데 막상 와 보니 비슷하면서도 완전히 달라요. 건조한 식물 냄새는 기억나는데, 정작 기억 속 거리는 진흙 냄새로 가득했거든요.
조급해진 수르트는 위험한 갱도로 혼자 뛰어들어요. 그러곤 붕괴 원인만 깔끔하게 찾아내죠. 갱도 아래 원석충 소굴과, 그 밑의 거대한 지하 동굴을요.
문제는 해결됐지만, 정작 찾던 기억은 여기 없었어요. "아무래도 내가 잘못 짚었나 봐." 기억 속 장소를 헷갈린 건, 수르트한테 처음 있는 일도 아니래요.
메테오라이트는 그런 수르트한테 말해요. 오늘 못 찾았어도 돌아갈 곳이 없는 건 아니지 않냐고. 필요하면 자길 의지해도 된다고요. 돌아가는 길, 수르트는 촌장한테 딱 하나를 부탁해요. 아까 아이들이 다투던 그 아이스크림, 하나만요.
서명 하나 받으러 갔다가, 눌러앉아 버린 산크타
아렌은 무기 신뢰성 증명서에 서명을 받으러 제3수리공방에 가요. 라테라노를 떠나온 산크타 감염자인데, 이런 절차가 그저 귀찮기만 하죠.
근데 기능공들이 다 자리를 비웠어요. 남은 건 견습생 아드나키엘 하나. 태어날 때부터 광륜이 휘어 총도 못 드는, 좀 특이한 산크타요.
대충 서명만 받아 치우려던 아렌은, 결국 아츠 유닛 검사까지 받게 돼요. 그러면서 둘은 라테라노 이야길 하죠. 모자를 못 쓰는 산크타의 습성 같은, 시시한 이야기들도요. 아렌은 몰래 명찰의 사인을 아츠로 베껴 위조까지 해 놓고요.
자유롭게 사는 저격수 엠브리엘도 끼어들어요. 라테라노에 미련 없는 엠브리엘, 총이 싫어 돌아가지 않는 기능공 이야기… 떠나온 이유는 다 다르지만, 그곳으로 돌아갈 생각은 아무도 없어요.
무뚝뚝하던 아렌이 하루를 다 써 버린 이유요? "재미있는 사람들을 찾았거든." 그거면 충분한 이유죠. 위조한 서명은 결국 들통나서, 오후에 제대로 받으러 다시 가기로 하고요.
고향이 그립냐 묻자, 그냥 따분한 곳이라 답하는 이유
오퍼레이터 휴게실. 염국 출신 퓨어스트림이 고향 축제를 준비하고 있어요. 사람 많고 시끌벅적한 걸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아이죠.
거기 이베리아 출신 엘리시움과 쏜즈, 그리고 아버지의 낡은 시전 도구를 물려받은 캐스터 압생트가 모여요.
고향이 그립지 않냐는 물음에, 엘리시움은 웃으며 답해요. 이베리아는 그냥 답답하고 따분한 곳이라, 딱히 말할 게 없다고요.
근데 쏜즈가 조용히 그 말을 받아쳐요. 이베리아는 에기르한테 그렇게 상냥한 곳이 아니었다고. 많은 이들이 성 변두리를 떠돌거나, 법정의 추적을 피해 버티며 살아야 했다고요.
엘리시움이 굳이 밝게 넘기려던 진실이, 그렇게 슬쩍 드러나요. 그래도 엘리시움은 끝까지 말하죠.
어쩌면 언젠가는, 그곳에 돌아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
— 엘리시움
고향에 데려다주고, 정작 자기들은 돌아가지 않기로 한 사람들
그리고, 아주 오래전 편지 한 뭉치가 있어요. 머드락이 컬럼비아로 떠난 옛 친구 '밥'에게 부치던 편지들이요.
리유니온 시절, 머드락은 라이타니엔의 감염자들을 이끌고 고향 카즈델로 향하고 있었어요. 근데 짙은 안개 속에서, 정체 모를 캐스터들이 그들을 쫓아와요.
그 캐스터들은 감염자를 아츠의 도구로 써요. 감염자 몸속 오리지늄을 폭주시켜서요. 누가, 몇 명이, 어떤 수단으로 감시하는지도 모른 채 동료들은 하나둘 스러져 가요.
밥에게 안부를 전하던 체인스모크가 먼저 죽고, 무기가 되긴 싫다며 스스로 생을 놓은 전우도 있었어요. 그 숲을 빠져나오는 것만으로 인원의 절반이 당했죠.
머드락은 늘 같은 말을 반복해요. 뒤돌아 보지 말라고.
전진하자. 뒤돌아 보지 마.
— 머드락
겨우 카즈델 근처 마을에 닿았을 때, 머드락 일행은 동포들을 먼저 보내요. 자기들은 다리에 남아 추격자와 결판을 짓기로 하고요. 고향에 데려다주는 것까지가 자신들의 몫이라는 듯이요.
죽음을 각오한 그 다리 위로, 누군가 걸어와요. 손을 대는 것만으로 머드락의 거대 석상을 멈추고, 안개마저 걷어낸 어린 살카즈요. "너는 누구지?" 편지는 거기서 끊겨요.
밥에게 부친 마지막 편지에서 머드락은 담담히 적어요. 그 동료들과는 다시 모일 수 없게 됐다고. 하지만 그들은 명예롭게 전사한 거라고요.
고향은 신경 안 쓴다더니, 옥상 사진을 부탁하기까지
에이프릴은 함선의 전달자가 의료부 안셀의 편지를 받는 걸 우연히 봐요. 둘 다 광업의 나라 림 빌리턴 출신이죠.
안셀은 큰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의사가 됐어요. 말로는 돌아가기 번거롭다면서도, 사실은 고향의 커다란 굴뚝과 기계 소리, 시끌벅적한 거리가 여전히 그리운 사람이에요.
에이프릴은 자긴 림 빌리턴이 싫다고 했어요. 희뿌옇고 새까맣고, 샤워 도중 물도 끊기던 그곳이요. 근데 이야기하다 보니 자꾸 좋았던 기억이 떠올라요.
반찬을 나눠 주던 이웃, 딴 데선 못 팔던 완자, 옥상에 누워 헤드폰으로 듣던 노래 한 곡. 그 노래 제목이 바로 자기 코드네임, 《에이프릴》이었죠.
결국 에이프릴은 림 빌리턴으로 가는 전달자한테 부탁해요. 높은 건물 옥상에 올라가, 거기서 보이는 풍경을 사진으로 찍어다 달라고요. "나, 의외로 꽤 신경 쓰고 있었구나."
존재하지 않는 고향에서 태어난 유령
팬텀은 매일 밤 같은 꿈을 꿔요. 크림슨 극단의 무대, 그리고 죽은 배우들이요.

꿈속에서 옛 극단의 배우들이 망령이 되어 돌아와요. 함께 노래하던 형제들. 팬텀이 악마를, 그리고 자신들을 모두 죽이고 이곳을 떠났다고 말하죠.

목소리를 잃어 가는 팬텀에게 그들은 속삭여요. 넌 노래하면 안 된다고, 이 무대에 있어선 안 된다고요.

한편 인사부에선 팬텀의 파일이 텅 비어 곤란해해요. 그가 적어 낸 출생지 '셀라이블라손'이, 아무리 찾아도 실재하지 않는 지명이었거든요.
팬텀은 거짓말한 게 아니에요. 자길 거둬 준 사람이 그렇게 알려줬을 뿐이죠. 그는 과거의 망령에게서 벗어나려고, 진짜 과거를 알려 줄 누군가를 찾아 이 함선까지 왔어요.
그리고 신입 민트가 그 낯선 지명을 되뇌던 순간, 한 오퍼레이터가 다가와 말해요. "엄청 옛날에, 전 그곳에서 살았었거든요." 아주 긴 이야기가 될 거라면서요.
왜 옛날이야기는 다들 그렇게 끝나 버릴까요
기념일 밤. 샤마르가 인형 모르테의 터진 곳을 꿰매는 소파 곁으로, 오퍼레이터들이 하나둘 모여 이야기를 나눠요.
스즈란은 염국 신화 《석아분월》과 극동의 니토 죠 전설을, 무스는 빅토리아의 용과 오누이 이야기를, 샤마르는 시라쿠사 어미 늑대 이야기를 들려줘요. 포푸카는 밀랍 인형과 신부 이야기를 더듬더듬 이어가고요.
근데 어느 이야기든 끝이 참 비슷해요. 탐욕과 전쟁, 좋은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 그리고 폐허요. 아무도 안 죽는 결말을 바라던 포푸카는 시무룩해지죠.
왜 이야기들이 다 그렇게 끝나느냐고 모르테가 묻자, 샤마르는 조용히 답해요. 이 세상의 생김새를, 우리가 예전에 살던 곳을 떠올려 보라고요.
왜 결말이 그렇게 되는지, 알겠지?
— 샤마르
돌아갈 곳을 잃은 사람들의 함선에서
누군가는 기억 속 마을을 끝내 못 찾았고, 누군가는 존재하지도 않는 고향의 이름을 품고 있어요. 누군가는 돌아갈 나라가 사라졌고, 누군가는 그저 옥상에서 보이던 풍경 한 장을 그리워하죠.
그래도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같은 걸 확인해요. 떠나온 곳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사실만은, 기억을 잃어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는 걸요.
떠나온 사람들이 왜 자꾸 돌아갈 곳을 떠올리냐고요? 어쩌면 우린 모두, 그저 돌아갈 곳을 찾고 있을 뿐인지도 몰라요. 벨로니 마을에서 메테오라이트가 했던 그 말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