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수스의 공업도시 체르노보그가 무너졌어요. 감염자들의 무장조직 리유니온이 재앙을 일으켜, 요새도 도시도 통째로 부숴버렸거든요.
그 잿더미 위로, 서로 아무 상관도 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흩어져 있는데요. 누구는 전쟁의 의미를 묻고, 누구는 살아갈 이유를 건네받아요.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같은 질문 앞에서 잠깐 멈춰 서요. 이름도 없이 스러진 사람들의 죽음은, 정말 아무 의미가 없었을까, 하고요.
20년 만에 만난 전우, 근데 이제 서로 다른 편이라니
이름도 명찰도 제대로 못 본 어느 가드 오퍼레이터가 체르노보그의 폐허에서 눈을 떠요. 박사를 구하러 잠입했다가 부대가 전멸한 모양인데, 곁엔 로도스 아일랜드 특수 용지에 적힌 쪽지 한 장만 놓여 있어요. 몸을 숨기고 밤을 기다리라고요.
그때 근처에서 두 남자의 대화가 들려와요. 한쪽은 헬라그, 우르수스의 노장이자 지금은 로도스의 진료소에 몸담은 사람이에요. 다른 한쪽은 패트리어트, 리유니온 북툰드라 유격대의 리더인데요. 20년 전, 헬라그가 존경하던 살카즈 병사 '불드록카스티' 바로 그 사람이었어요.
패트리어트는 광석병으로 성대가 망가져 이제 말을 길게 못 해요. 그래도 또박또박, 감염자의 권리를 위해 싸우겠다고 말하죠. 우르수스가 감염자도 우르수스인으로 봐줬다면, 애초에 전쟁 같은 건 없었을 거라고요.
헬라그는 지쳐 있어요. 그는 리유니온이 벌이는 게 결국 우르수스인이 우르수스인을 도륙하는 내전이라고 봐요. 이제는 그저 곁의 사람들을 지키고 싶을 뿐이라고요.
자네들은 전구를 다시 밝히고 싶어하는 것이고, 난 단지 쇼핑센터가 다시 지어지길 바랄 뿐일세. 이게 우리의 차이지.
— 헬라그
패트리어트는 자기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걸 알아요. 광석병이 결국 그를 데려갈 테니까요. 그래서 전쟁을 싫어하는 헬라그에게, 대신 자기가 싸우겠다고 해요. 두 사람은 다시는 서로의 적이 되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헤어져요.
이름도 못 물어본 놈을 위해, 목숨을 던진 전사
헤어지기 전, 패트리어트가 유품 하나를 건네요. 로도스의 어느 살카즈 전사가 용병단에 홀로 맞서다 죽었다고요. 수많은 정예를 베어 넘기면서, 적들을 일부러 폐허 쪽으로 유인했다는데… 무언가를, 아니 누군가를 숨기려는 것처럼요.
폐허에 쓰러져 있던 그 가드가, 바로 그 '누군가'였어요. 그를 살린 건 스카우트, 로도스 아일랜드의 살카즈 오퍼레이터였고요.
스카우트가 남긴 마지막 이야기가 흘러나와요. 그는 박사를 걱정해요. 전쟁과 살육이 박사를 전쟁 기계로 만들어버린 게 아닐까, 그래서 박사가 다시는 전투를 지휘하지 않고 새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요.
그리고 자기 팀 이야기를 해요. 열두 명. 적진을 뚫고 원군을 격퇴했지만 전부 전사한 팀원들이요. 아무도 그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부디 그들의 증인이 되어달라고 부탁해요.
누구도 내 팀과 팀원 이름을 기억하진 못 하겠지만, 그들의 죽음은 존엄했다고. 그들은 절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 스카우트
마지막 부탁은 이거였어요. 이름 모를 형제여, 너는 너 자신을 위해 살아가라고. 네가 죽길 바랐다면 이렇게 말을 많이 하지도 않았을 거라고요. 가드는 흐느끼며 반드시 해내겠다 다짐하고, 패트리어트는 그에게 오늘 밤 남쪽으로 떠나든 체르노보그에 남아 사람들을 돕든 선택은 자유라고 말해줘요.
동료가 되자는 제안을, 굳이 거절한 살카즈
한편, 리유니온의 새 용병단 리더 W에게 골치 아픈 보고가 올라와요. 배신하고 도주한 부대를 쫓던 추격대가 통째로 사라졌다고요. 범인은 살카즈 전사 한 명.
그는 플레임브링어, 어느 전쟁에서 매복에 당해 홀로 살아남은 용병 '소드캐스터'였어요. W는 그를 알아보고 웃으며 편으로 꼬시지만, 플레임브링어는 무질서한 파괴엔 관심 없다며 거절해요. 그는 그저 자기가 살아있는 의미를, 칼날을 갈 곳을 찾고 있을 뿐이었거든요.

W는 결정적인 미끼를 던져요. 플레임브링어의 옛 용병 부대를 몰살시킨 음모가 있었고, 그 배후가 그가 향하려는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고요. 플레임브링어는 포위망을 뚫고 그곳, 로도스 아일랜드로 향해요.
도베르만 교관이 규칙을 어기면 봐주지 않겠다는 경고와 함께 그를 받아들여요. 그리고 의료부에서 그를 만나고 싶어 하는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었죠. 그 얼굴을 본 플레임브링어는, 옅게 웃어요.
숨 막히는 족쇄에서 벗어나야만,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거니까.
— 플레임브링어
함정을 죄다 해체하고 찾아온 손님, 근데 살리러 왔대요
무대는 저 멀리 시라쿠사의 숲으로 옮겨가요. 버메일, 복수심에 사로잡혀 온 사방에 함정을 깔아둔 외팔이 불포 소녀가 살고 있어요.
그 숲에 이그제큐터가 찾아와요. 라테라노 공증소의 집행자인데, 날아드는 화살을 맨손으로 잡고 함정을 죄다 해체해버리는 사람이에요. 그가 집행하러 온 건 어느 유언. 예전에 버메일에게 철로 만든 팔을 달아줬던 그 '늙은 사냥꾼'이, 사실은 유언을 남긴 뒤렌마트였어요.
그는 불치병으로 수술대에서 눈을 감았어요. 남긴 재산 전부를 버메일의 치료비로 넘기면서, 딱 하나를 부탁했죠. '버메일을 살아가게 해달라'고요.
'살아가고 싶습니까?' 긍정하거나 부정하거나, 당신은 대답만 하면 됩니다.
— 이그제큐터
버메일은 필사적으로 거부하지만, 이그제큐터는 물러서지 않아요. 결국 종족 사람들과 작별하고 나면 로도스 아일랜드로 가겠다는 약속을 받아내죠. 사냥꾼은 마지막까지, 그 아이가 자기 같은 삶에서 벗어나 살아가길 바랐거든요.
3시간째 사격 훈련, 근데 정작 부족한 건 자신감
용문에 정박한 로도스 안에서는, 블랙스틸의 리스캄이 후배 제시카에게 사격을 가르치고 있어요. 제시카는 뭐든 완벽하게 하려다 도리어 위축되는 성격이거든요.
농땡이 치러 온 척 프란카가 끼어드는데요. 그녀가 제시카의 심사 자료를 보고는 한마디 해요. 상위권은 아니어도 종합 성적은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고, 이건 절대 열등생의 데이터가 아니라고요. 제시카에게 정말 부족한 건 실력이 아니라 자신감이었던 거예요.
숙제를 자꾸 태워먹는 아이
로도스의 '교실'에서는 이프리트가 박사가 내준 숙제와 씨름하고 있어요. 불꽃을 다루는 이 소녀는, 감정이 격해지면 자기도 모르게 주변을 태워버리거든요. 책상도, 애써 푼 숙제도요.
꿈속에선 늘 '괴물'이 이프리트를 비웃어요. 남을 다치게 하고, 스스로를 제어조차 못 하는 괴물이라고요. 검사하러 온 간호사에게 성을 내다가, 냉기를 쓰는 프로스트리프와 가까이 가면 베어버리는 레드 앞에서 이프리트는 그만 폭발할 뻔해요.
그때 옛 친구의 기억이 물의 아츠로 불길을 잠재워줘요. 정신을 차린 이프리트는, 프로스트리프와 간호사에게 사과하기로 마음먹어요. 이번엔 정말 자기 잘못이었다면서요.
내 앞길을 막는 것들은 전부 불태워버릴 거지만, 그래도 그렇게 해선 안 되는 것은 절대 손대지 않을 거야!
— 이프리트
올지 안 올지 모를 사람을 위해, 관측소를 지키는 고집
북부의 얼어붙은 빙원, 라인 랩의 관측원 마젤란은 관측소 하나를 혼자 지키고 있어요. 낙천적이고 수다스러운 탐험가죠. 그런 그녀 앞에 눈보라를 뚫고 한 여자가 나타나, 마젤란은 유령인 줄 알고 기겁해요.
여자의 이름은 시몬. 사실은 산탈라, 라인 랩과 협력하게 된 로도스가 마젤란을 데리러 보낸 사미 출신 오퍼레이터였어요. 그런데 하필 관측소의 난방이 고장 나버려요.
마젤란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관측소를 지키겠다고 해요. 지금껏 방문객이 하나도 없었는데도요. 언젠가 누군가 이곳을 반드시 지나갈 거라고, 그렇게 믿거든요.
언젠가, 우리의 발자국이 이 땅 전체를 뒤덮을 거예요.
— 마젤란
그 고집에 마음이 움직인 산탈라가, 대신 눈보라 속으로 나가요. 사미의 죽은 이들이 그녀에게 남긴 힘으로요. 그녀가 노래를 부르자, 북부의 눈보라가 잦아들기 시작해요.
깜깜한 배관 속에서, 전구 하나를 갈며
로도스로 돌아오면, 켈시와 수석 엔지니어 클로저가 있어요. 기억을 잃은 박사를 어떻게 맞이할지로 티격태격하다, 둘은 끊어진 전선을 고치러 어두운 배관 속으로 들어가요.
가는 길에 사르곤 출신의 새 오퍼레이터 헤비레인을 만나기도 하고요. 깜깜한 어둠 속에서 전구 하나를 갈며, 클로저는 켈시에게 속마음을 물어요. 체르노보그행을 결정한 아미야를, 그저 지지할 수밖에 없었던 켈시의 마음을요.
적어도 우린 밤을 넘겼으니, 이제 해야 할 일은 해가 뜰 때까지 살아남는 것뿐이겠지.
— 켈시
전구에 불이 들어와요. 밤길을 걸으려면 빛이 필요한 법이니까요. 켈시는 조용히 말해요. 정말 따뜻한 빛이라고요.
이름 없는 이들이 남긴 것
체르노보그가 무너진 뒤, 이렇게 서로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저마다 흘러가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들은 하나같이 누군가의 마지막 부탁을 짊어지고 있어요. 대신 싸워달라는, 부디 살아가라는, 언젠가 올 사람을 믿어달라는 부탁을요.
이름도 없이 스러진 이들의 죽음은, 정말 아무 의미가 없었을까요. 적어도 그 이름을 대신 기억하고, 그 부탁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남아 있는 한,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