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는 미노스. 명일방주 세계관의 그리스예요. 도시국가, 신전, 연극, 영웅 서사시… 그리고 분쟁은 팔씨름으로 해결합니다. 진짜로요.
근데 이 낭만의 나라, 이웃 사르곤에게 100년 넘게 점령당했던 역사가 있어요. 그리고 종전 겨우 5년 만에, 그 사르곤이 '문화 교류'를 하러 옵니다.
사절단이 들고 온 반환 문화재는 건국 영웅 케레세이라의 리라. "내 리라는, 오직 영웅의 이야기만을 위해 울린다!" 라던, 바로 그 전설의 악기입니다.
1. 대사님, 지각입니다

주인공 티티(본명이 '메제티케티 나수투 마샤예르'라서 다들 티티라고 부릅니다)는 사르곤 사절단의 대사예요. 몰락 귀족에, 박물관 관장에, 뼛속까지 미노스 역사 덕후.
덕후답게 "케레세이라가 걸었던 옛길로 가보고 싶어!"라며 본대를 이탈하고, 관광 가이드북을 낭독하다가 길을 잃습니다. 50kg짜리 문화재 상자는 동행한 수인 귀족 미오와 단둘이 짊어진 채로요. 당연히 지각.
적당히 돈 많은 애 하나 잡아서 여생 편안히 보내자는 마음에 너를 고른 거였는데, 이렇게 촐싹대는 골칫덩어리였을 줄이야……
— 미오

도강을 도와준 뱃사공 크산토스는 뱃멀미로 반쯤 죽어가는 티티에게 사과를 건네주는 다정한 아저씨인데요.
동시에, 전쟁으로 가장 소중한 친구 이타코스를 잃고 사르곤을 뼛속까지 증오하는 전직 유격대원이기도 합니다. 그는 아직 몰라요. 이 컬럼비아 복장의 아가씨가 사르곤 대사라는 걸.
2. 제1회 제1신전 팔씨름 대회
아테누스는 지금 건국 영웅의 제1신전을 재건하는 중이에요. 슬로건은 '순수한 자발성'. 멋있죠? 계획도 책임자도 없다는 뜻입니다.
당연히 진도는 엉망이고, 채석 때문에 배가 묶인 과수농들과 신전 장인들이 주먹다짐 직전까지 갑니다. 여기서 티티의 첫 외교가 나와요. "팔씨름에서 이긴 사람만 발언권을 가진다" — 즉석 대회 개최.

몇 판을 치고받다 지친 양측은 그제야 서로의 사정을 듣게 되고요. 티티는 "햇빛 가리는 산? 그냥 깎아버려. 어차피 밑이 대리석이라 채석장도 되는데?"라는 호쾌한 절충안으로 분쟁을 끝냅니다.

한편 '실종'됐다던 재건 발의자 팔라스는, 사과 상자 안에서 숙면 중인 채로 발견됩니다. 잠꼬대로도 공사 걱정이랑 사과주 걱정을 같이 하는 애주가예요.
티티와 술잔을 나누다가 대뜸 친구 선언을 하는데… 사실 이 사람, 미노스 국경에서 '승리의 여신'이라 불리던 전설의 전직 제사장입니다. 지금은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요양하며 음주 동아리나 만들고 있었지만요.
3. 던져진 도편

수완가 시정감독관 리디아의 제안으로(제안이라 쓰고 정치적 계산이라 읽습니다), 티티가 신전 재건 마무리 책임자가 될지를 아테누스 전통의 도편 투표에 부치게 됩니다.
함께 일한 장인들은 기꺼이 찬성을 새겨요. 그런데.

전쟁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전 유격대원 메가스가 광장을 가로질러 옵니다. 그리고 도편을 투표함에 넣지도 않고, 바닥에 내던져요. 반대표를 던질 가치조차 없다는 뜻으로.
티티는 뺨을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친해진 장인들에게 자신은 '티티'지만, 낯선 미노스인에게 자신은 그냥 침략자의 나라에서 온 사르곤인이라는 것. 그걸 이날 처음, 제대로 실감한 거죠.

특별히 허락해 줄게. 내 꼬리를 쓰다듬어도 되고, 스트레스 풀듯이 내 등을 마구 헝클어 놓아도 돼. 아니면 내 털로 눈물 닦아도 되고. …… 눈물 닦는 건 취소. 축축해지는 건 질색이야.
— 미오
4. 리라 탈취 대작전 (범인: 다정한 뱃사공)
티티의 정체와 문화재의 정체를 알아챈 크산토스가 움직입니다. 작전은 이래요.
제자 리케이온이 식자재 운반선으로 호텔 주방을 정통으로 들이받아 화재 소동을 일으키고, 그 틈에 크산토스가 4층 객실에서 리라를 탈취해 창밖으로 뛰어내린다. 참고로 리케이온은 배를 못 몹니다. 제사장 학원 시절 포뮬러 전차 레이싱 전부 낙제. 그러니까 그 충돌, 연기가 아니라 실력이에요.
부두 추격전이 벌어지는데, 사정을 모르는 장인들은 "달리기 시합이야? 아가씨 힘내!"라며 응원합니다. 평화롭다……

다행히 리라는 무사했어요. 티티가 출발 전에 씌워 둔 과잉보호급 포장 — "건물이 무너져도 리라는 안전해!" — 덕분에 받침대에 금만 갔거든요.
크산토스와 리케이온은 체포됩니다. 티티는 "제 개인 물품이고, 작은 오해예요"라며 덮어주지만… 부대사 베누이가 리디아를 정치적으로 협박해서, 두 사람을 반역 혐의로 사형수 감옥에 처넣어 버려요.
5. 그런데 그 리라, 가짜입니다

균열을 수리하던 티티가 뭔가를 발견합니다. 단면에 남은 사르곤 특유의 건조 방지 공정. 그리고 100년 전 사르곤 수지.
사르곤이 들고 온 반환 문화재가, 모조품이었던 겁니다. 파디샤조차 몰랐을 정교한 가짜. 교환식을 멈춰야 한다는 티티에게, 베누이는 시대의 명언을 남깁니다.
문화재 교환식에서 중요한 건 '문화재'가 아니라 '교환식'이야. 문화재가 가짜면 어때? 그래도 소리는 나잖아?
— 베누이
티티의 결론은 이래요. 대사로서 폭로하면 외교 충돌이 터진다. 그러니 개인으로서, 교환식 당일에 가짜 리라를 훔쳐서 평생 도망자가 된다. 그러면 크산토스와 리케이온의 죄도 흐지부지되니까.
네, 자기만 손해 보는 계획을 세우는 데는 천재적인 사람입니다. 미오 왈 — "그건 최선이 아니라, 그저 '메제티케티'다운 해결법이잖아!"
6. 소리 없는 밤

그런 티티 앞에, 엔디미온 신전의 제사장 카산드라가 나타나서 버든비스트 목장의 울타리를 뽑습니다. 울타리로 위장돼 있던 것은 — 진짜 케레세이라의 리라.
옛 아테누스가 함락된 날부터, 어떤 현을 달아도 울지 않는 악기. 전설 그대로 침묵에 빠진 리라였습니다. 카산드라는 말해요. 당신이 이걸 울릴 수 있다면, 가져가서 교환식을 완성해도 좋다고.

꿈속의 아버지 이야기를 잠깐 할게요. 몰락한 가문, 무엇 하나 해내지 못했던 나약한 사람. 귀족들이 장례식장에서까지 대놓고 비웃던 사람.
그런 아버지가, 어째서인지 영웅 이야기를 들려줄 때만은 힘찬 목소리였습니다. 30년간 비밀을 지킨 침묵의 영웅 시오피. 이방인을 위해 연주하기를 거부한 케레세이라. 그리고 — "우리 모두에겐 영웅이 될 기회가 주어지는 거란다, 티티."
리라는 끝내 울지 않았어요. 대신, 잠든 티티 옆에서 미오가 중얼거립니다. "'기적'이 필요하다고 했나? 그 정도쯤이야!" …그리고 아침, 목장의 버든비스트 수십 마리가 전부 탈출합니다. 얘가 사고를 쳤어요.
7. 노를 든 남자의 과거
장면은 사형수 감옥. 옆 감방의 노숙자 노인이 알고 보니 이타코스의 아버지였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크산토스의 과거가 풀립니다.
전쟁이 끝나면 돌아오겠다던 친구는 돌아오지 않았고, 크산토스는 그를 찾아 마을을 떠났습니다. 1년. 모든 유격대를 떠돌면서, 죽은 친구의 갑옷을, 부츠를, 방패를, 아츠 유닛을 하나씩 추적했어요. 그리고 유품을 찾을 때마다 "너에게 필요하니 가져라" 하고 전우에게 넘긴 뒤, 똑같은 한마디를 남깁니다.
동포여, 내게 방향만 짚어주면 된다.
— 크산토스
그리고 노인의 입에서 진짜 폭탄이 떨어집니다. 그의 조부는 이동도시 건설에 강제 징용된 미노스인 엔지니어였고, 당시 엔지니어 노트에는 강제 노역자들의 이름과 출신이 전부 기록돼 있으며, 사르곤은 그 노트를 모두 압수해 갔다는 것.
그러니까 사르곤이 교환식에서 가져가려는 '기술 자료'의 정체는 — 자국 전쟁범죄의 증거 원본입니다. "파디샤 말라는 미노스인을 노역에 동원하지 않았다"는 역사를 완성하기 위한 마지막 조각이요.
8. 교환식 당일, 도시 전체가 폭주한다

당일, 일이 동시다발로 터집니다. 정시 퇴근의 화신인 서기관 헤카데모스, 로도스 아일랜드 의사 레나, 그리고 카산드라가 공모해 탈옥 작전을 실행하는데요.
정작 감옥에서는 이타코스의 부친이 교대 시간표부터 족쇄 해제까지 풀서비스를 제공한 덕에, 구하러 잠입한 헤카데모스가 오히려 크산토스 사제에게 침입자로 오인당해 재갈부터 물립니다. 폭주 버든비스트는 라케다이몬에서 온 과묵한 제사장 시니스카가 손가락 하나로 진압하고요(발밑 타일이 갈라집니다), 리라는 무사히 제1신전에 '배달'됩니다.

그 소동 사이에, 조용히 빛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레나와 리디아 자매.
입양아였던 리디아에게 정원을 가르쳐 준 언니 레나. 광석병에 걸린 언니 대신 후계자가 되었다가, 가문도 상속권도 다 버리고 시정감독관이 된 동생 리디아. "언니는 왜 늘 그렇게 '위대'한 건데?"라는 말은 원망이면서, 동시에 몇십 년 묵은 그리움이에요.
리디아는 언니의 발목을 잡을 수 있었으면서, 잡지 않았습니다. "이 십여 분은 내가 주는 마지막 선물이야. 난 이제 언니에게 빚진 거 없어."
그리고 나중에, 레나는 버든비스트가 짓밟고 간 공공 정원에서 발견합니다. 어린 시절 "길을 잃으면 이 꽃을 찾아와"라고 약속했던 연푸른 보로니아가, 정원 가득 심겨 있었다는 걸. — "고마워, 리디아. 나 집에 돌아왔어."
탈옥 조에도 잊을 수 없는 장면이 하나 더 있어요. 헤카데모스와 리케이온. 리케이온이 감염된 그날의 진실(활을 세게 당긴 범인이 헤카데모스였습니다)과 함께, 3대 3으로 멈춰 있던 두 사람의 변론 전적이 소환됩니다. 최후의 변론 주제는 — "감염자는 영웅이 될 수 있는가".
난 너를 모두가 인정하는 진짜 영웅으로 만들겠어. 그 대가로 내가 바라는 '이득'은 오직 하나…… 우리의 마지막 변론에서 너를 이기는 거.
— 헤카데모스
리케이온의 답: "……미친놈." 헤카데모스의 답: "칭찬 고마워. 어쨌든 동의한 모양이네."
9. 연극, 진짜 단검, 그리고 리라가 울리다
교환식 개막극은 티티 본인의 선택으로, 100년간 아무도 올리지 못한 금기의 고전 정극 《케레세이라와 이방인》. 이방인 역은 사르곤인인 티티가 직접 맡습니다. "이건 사르곤인으로서 내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책임"이라면서요.
그런데 무대 위에서, 티티는 알아차립니다. 처형 장면에 쓸 고무 소품 단검이 진짜 단검으로 바꿔치기되어 있다는 걸. 병사 역 배우도 낯선 사람이라는 걸. 사고를 가장한 살인.
티티는… 그래도 눈을 감습니다. 친구를 믿기로 해요.

그 순간 난입한 것이 탈옥수 크산토스입니다. 가짜 병사를 걷어차 암살을 저지하고, 무대 위에서 도시 전체를 향해 포효해요. "놈들이 가져가려는 건 이동도시를 세우며 우리가 흘린 피와 땀의 기록이다! 그걸 부추긴 당신들도 공범이다!"
그 분노에 티티가 내놓은 답은, 사과도 변명도 아니었습니다. — "이것은 제가 사르곤인으로서 당신에게 빚진 전투예요." 교환식 한복판에서, 대사와 뱃사공의 정식 결투가 벌어집니다.

결투 끝에, 크산토스의 피가 조각상 곁 진짜 리라의 현에 튑니다. 그 순간 — 100년간 침묵하던 리라가, 웁니다.
그리고 무대 위 세 사람은 신탁의 환상을 공유하게 돼요. 티티가 본 것은 아버지의 과거였습니다.
미노스에 징집됐던 허약한 사르곤 경비병. 미노스인 포로에게 매일 영웅 이야기를 졸라서 100편 넘게 받아 적던 사람(포로가 대충 지어낸 이야기도 섞여 있었는데, 시오피 이야기가 바로 그거였어요). 감방 문을 '깜빡' 잠그지 않고, 무거운 갑옷 탓에 '어쩔 수 없이' 추격에 실패해 준 사람.
군사재판감 실수로 송환된 무능한 남자. 그 사람이 딸의 마음에 영웅의 씨앗을 심은 사람이었습니다. 크산토스가 옆에서 말해줘요. "그는 영웅의 씨앗을 당신의 마음속에 심은 거다."

크산토스도 환상 속에서 답을 얻습니다. 그토록 떠올리지 못했던, 이타코스를 배웅하던 날 자신이 했던 대답을.
그래, 하지만 괜찮아. 봄이 오면 전보다 더 따뜻해질 테니까.
— 크산토스
에필로그: 파디샤가 될 사람

티티는 엔지니어 노트를 전부 사르곤으로 가져갑니다. 파디샤가 원한 대로 묻어버리는 대신 — 박물관 특별전으로 만천하에 공개해 버려요. 사르곤 역사책이 거짓이라는 걸, 사르곤인들이 직접 보게.
리디아는 이미 기록 전체의 사본과 논문, 컬럼비아 학술지 특집호까지 준비해 뒀고요. 참고로 이 시정감독관, 탈옥 계획도 다 알면서 열쇠를 책상 위에 '깜빡' 두고 다니던 사람입니다.
크산토스는 구금 대신 스스로 시민 투표로 심판받기를 택합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내 행위는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다"면서. 티티는 '명예 미노스인' 훈장과 함께, 카산드라의 수상한 신탁 해석을 하나 받아요. — "당신이 파디샤가 될 것임을 보여준 계시라고 생각합니다."
3개월 후, 왕중왕의 사자가 박물관에 도착합니다. 필사적으로 어필하는 베누이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고("거기 시끄러운 선생님, 제가 찾아온 사람은 당신이 아닙니다"), 사자는 티티에게 황금성 초청을 전합니다.
한편 미노스에서는 코리니아의 장사꾼 제사장 페리안드로스가 도시국가 연맹 부활과 전통 경기 축제를 제안하고… 카산드라는 여전히, 팔라스가 받아온 '불안한 신탁'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다음 미노스 이야기의 떡밥은 이미 뿌려졌어요.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뱃멀미하던 지각 대사는 훔친 나라의 영웅이 되었고, 리라를 훔친 도둑은 리라를 울린 사람이 되었고, 진짜 도둑질(역사 세탁)을 하려던 쪽만 빈손으로 돌아갔습니다. 케레세이라기의 그 문장 그대로요. — 리라는, 오직 영웅의 이야기만을 위해 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