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 빌리턴은 녹슨 철골과 광산 갱도가 끝없이 이어지는 척박한 땅이에요. 그 황야를 낡은 수송차 한 대가 몇 년째 가로지르고 있었는데요.
이 차 안엔 운전기사와 손님 말고, 아예 눌러사는 두 사람이 있었어요. 그리고 오늘이 이 노선의 마지막 운행이었죠.
별일 없이 끝났다면 좋았을 텐데…… 하필 오늘, 이 차가 강탈당하거든요.
이 수송차엔 6성급 셰프가 살아요
주방을 지키는 어린 카우투스 냄비 뚜껑은 스스로를 '6성급 셰프'라고 불러요. 식은 스튜도 오리지늄 아츠로 슬쩍 데워 낼 만큼, 요리에 진심인 아이죠.
운전기사 알라나는 '황야의 알라나'로 통하는 사람이에요. 허풍도 세고 자존심도 세지만, 2년째 이 아이를 차에 숨겨 키워 온 보호자이기도 해요.
냄비 뚜껑의 소매 밑엔 검은 결정이 돋아 있어요. 이 아이는 감염자거든요. 알라나가 채워 준 팔찌로도 그 빛은 다 가려지지 않아요.
노선이 끊기면 이 차도, 이 집도 사라져요. 그래도 아이는 굳이 씩씩하게 웃어 보여요.
워미는 우울한 적이 없으니까요.
— 냄비 뚜껑
'워미'는 냄비 뚜껑이 자기를 부르는 이름이에요. 슬프지 않다는 그 말이, 왜인지 조금 슬프게 들리죠. 알라나는 마지막 정리를 한다며 아이에게 심부름을 맡겨요. 안전밸브랑 일용품을 사 오고, 낡은 살림을 내다 팔아 오라고요. 둘은 이걸 '분업'이라고 불렀어요.
심부름 나온 아이, 근데 아무도 물건을 안 받아줘요
오랜만에 거리로 나온 냄비 뚜껑은 수레에 짐을 잔뜩 싣고 내리막을 굴러 내려가다, 한 손님 덕에 겨우 멈춰 서요. 석궁을 안고 샌드비스트를 사러 온, 말수 없는 여자였죠.
잡화점 사장님은 처음엔 거래를 거절하다, 알라나의 이름을 듣고서야 짐을 받아 줘요. 관공서에선 줄이 너무 길어 쩔쩔매는데, 웬 씩씩한 언니가 대신 서류를 내주겠다며 명함 한 장을 쥐여 주고요.
그렇게 심부름을 마치고 돌아온 아이를 태운 채, 수송차는 마지막 운행을 시작해요. 그런데—
이 수송차는 탈취되었다. 지금부터 이 차량의 목적지는 그리닝 밸리다.
— 수송차 안내 방송
방송 마이크를 쥔 건 낮에 만난 그 말수 없는 여자였어요. 다른 손엔 석궁이 들려 있었고, 그 끝은 알라나의 머리를 겨누고 있었죠.
머리에 석궁을 겨눈 강도, 근데 자꾸 대화가 통해요
차량 강탈범, 나중에 레이라 불리는 이 여자는 이상하리만치 담담해요. 목적지까지만 가면 아무도 안 다친다고, 돈도 내겠다고 하죠. 알라나는 쉴 새 없이 말을 걸며 틈을 노려요.
하지만 검문소가 발목을 잡아요. 얼마 전 광산 사고로 난민이 몰리면서, 감염자를 색출하는 검사가 시작됐거든요.
냄비 뚜껑의 검사 장치가 울려요. 알라나는 처음으로 고개를 숙여 애원하지만, 검사관은 냉정하기만 하죠.
그 순간 레이가 화살을 쏘아 경비원들을 막아 세우고 냄비 뚜껑을 끌어내요. 알라나는 게이트를 그대로 들이받아 검문소를 돌파하고요. 이제 이 차에 탄 사람은 전부 공범이에요.
이 난리를 감수하며 레이가 그리닝 밸리로 가려는 이유는요—
거대한 그림자를 찾으러 가는 거야. 안개 속에서 빛을 내는, 산처럼 거대한 그림자. 말도 할 줄 알아.
— 레이
약혼식에서 도망친 남자, 하필 도망친 상대와 사랑에 빠져요
차엔 얼떨결에 남은 승객이 하나 더 있었어요. 겁 많은 보험 영업사원 자라크 제리예요. 36명이나 되는 형제자매에게 떠밀려 정해진 약혼식이 싫어, 도망치던 참이었죠.
제리는 도망 도중 가출 흉내를 내던 여자 키이라를 만나 함께 위기를 넘겨요. 그러다 둘은 서로 마음이 통하는 걸 느끼는데…… 알고 보니 두 사람, 원래 서로의 약혼 상대였지 뭐예요.
한편 알라나는 '베헤모스'의 정체를 알아보려 여행기 작가 아스베스토스를 찾아가요. 아스베스토스는 그 거대한 그림자를 부르는 사르곤어 단어를 알려 주지만, 정작 그게 뭔지는 자기도 모른다고 하죠.
그리고 이 황야엔,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을 다시 찾은 소녀도 있었어요. 로도스 아일랜드의 아미야, 그리고 박사와 새비지였죠.
열을 식히려 아츠를 쓴 아이가, 그 아츠 때문에 쓰러져요
사건은 냄비 뚜껑에게서 터져요. 이 아이, 도움이 되고 싶어서 몰래 아츠로 동력로 온도를 맞추고 있었거든요. 그러다 오리지늄 아츠가 폭주해 온몸이 불덩이가 돼요.
알라나는 민간요법이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필사적이에요. 광석병이 불치병인 걸 알면서도, 아이와 함께 나을 거라 믿어 주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었거든요.
그때 명함의 주인이었던 새비지가, 그리고 아미야와 박사가 나타나요. 아미야가 아츠로 결정의 활성을 억눌러 아이를 구해 내죠. 그 명함의 정체는 감염자를 구하는 배, 로도스 아일랜드였어요.
그날 밤, 다 함께 황야에 둘러앉아요. 별을 바라보는 박사 곁에서, 새비지는 오래 묻어 둔 이야기들을 조용히 꺼내 놓고요.

그토록 찾던 빛을 만났는데, 정작 그건 아니래요
레이는 원래 갱도의 공기를 확인하는 탐사원이었어요. 등지느러미 색으로 독가스를 알려 주던 샌드비스트가, 얼마 전 가스 사고로 죽었죠. 빈 케이지 앞에서 레이는 어릴 적 자길 구해 준 '빛'을 다시 찾겠다고 마음먹어요.
넋이 나간 채 걷던 레이는, 죽은 샌드비스트인 줄 알고 박사의 후드를 붙들고 있던 자기 손을 발견해요. 알고 보니 로도스 아일랜드 일행이 내내 뒤를 따르고 있었거든요.

일행이 도착한 곳은 모래폭풍을 막아 주는 바위 요새, 건강한 샌드비스트가 가득한 오아시스였어요. 냄비 뚜껑은 신나서 샌드비스트들에게 당근 쿠키를 나눠 주고요.

그런데 재앙이 몰려와요. 모두가 대피하는 사이, 레이는 남은 샌드비스트들을 지키려다 뒤처지고 말죠. 그때 샌드비스트들이 기묘한 뼈피리 소리를 내며 레이를 지하 깊은 동굴로 데려가요.
그곳엔, 수백 년째 어둠에 갇혀 몸도 못 움직이는 거대한 존재가 있었어요.

'베헤모스'? 내가 찾던 게, 너였어?
— 레이
하지만 베헤모스는 담담히 말해요. 자긴 움직일 수도 없는데 어떻게 널 구했겠냐고, 여기 자기 동족은 없다고요. 네가 찾던 건 여기 없다고 쐐기를 박듯 말하죠. 그러고는 되물어요. 그럼 넌 무엇 때문에 이 먼 곳까지 왔냐고.
빛의 정체
결국 일행은 그리닝 밸리엔 닿지 못하고 멀리서 바라만 보고 돌아와요. 레이가 찾던 건 없다고 판명이 났고요. 그런데 레이는 이상하게도 아쉬워 보이지 않았어요.
로도스 아일랜드로 돌아온 레이는 탐사원으로 입사해, 처음으로 자기 번호가 적힌 ID 태그를 받아요. 임시직 탐사원에겐 번호표조차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레이는 박사에게 묻죠. 그때 그 빛은 대체 무엇이었냐고.
그 순간 아미야의 눈앞에 한 장면이 스쳐요. 갓 발굴된 로도스 아일랜드가 오리지늄 황야를 가로지르고, 조난당한 사냥꾼들에게 누군가 손을 내밀던 장면이요. 십수 년 전, 사냥꾼 무리에 섞여 있던 어린 레이를 구한 '빛'은—바로 이 배와, 그 배의 그 사람이었어요.
왜냐하면, 나는 모두에게 돌아갈 집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니까.
— 박사
냄비 뚜껑은 새비지에게 아츠 스태프 다루는 법을 배워요. 자꾸 서툴러 눈물이 터지지만, 알라나는 옷자락을 붙잡고 울어도 된다고 말해 줘요. 적어도 이번 여행의 끝에서, 아이는 빈손이 아니었으니까요.
두 사람은 이제 광석병 치료법을 찾으러 로도스 아일랜드로 향해요. 2년 전 사고로 소식이 끊긴 아빠를, 언젠가 다시 만날 그날을 위해서요.
마지막 운행이 강탈로 끝나 버린 낡은 수송차는, 그렇게 예정에 없던 가장 긴 여행을 마쳤어요. 누군가는 돌아갈 집을 찾았고, 누군가는 그 집이 되어 주기로 했죠. 어둠 속에서도 굳이 웃던 아이는, 이번만큼은 정말로 빈손이 아니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