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국 변방에 망산 마을이라는 곳이 있어요. 백조에서 멀지 않은데도 지도에도 없고, 들어서면 신호조차 안 잡히는, 이상하리만치 고즈넉한 마을이죠.
그 마을의 작은 찻집에선, 오래도록 손님 하나 없었는데도 점원이 바닥을 광이 나도록 닦고 있었어요. 대체 누굴 이렇게까지 기다리는 걸까요.
이윽고 손님이 들어왔어요. 차를 마시러 온 게 아니라, 사람을 죽이러 온 손님이요.
차도 술도 안 파는 찻집인데, 독은 팔더라고요
찾아온 두 강도는 한때 '풍운삼도'로 불린 육 씨 형제예요. 셋째는 이미 죽고, 남은 첫째와 둘째가 노린 건 어느 영리한 소녀가 가진 절세 비급 무공전이었죠.
소녀는 순순히 비급을 내주는 척했지만, 형제가 값으로 부른 건 소녀의 목숨이었어요. 바로 그때, 세 사람이 픽픽 쓰러져요. 차에 독이 들어 있었거든요.
독을 탄 건 점원 호군. 잡혀 있던 손님 하나, 비쩍 마른 서생 운청평이 살인만은 말려 보지만, 호군은 그마저 묶어버려요.
호군은 그저 이 마을을 떠나고 싶어서 비급이 필요하다고 해요. 2900보면 한 바퀴인 이 마을에서, 여러 해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 풍경에 지쳤다면서요.
한편 마을에 막 들어선 천사 린 칭옌은, 조카뻘인 좌락의 편지 한 통을 들고 있었어요. 실종된 친구 운청평을 찾아달라는 부탁이었죠.
마을은 어딘가 이상했어요. 품에서 갓 구운 전병을 꺼내주는 노인, 그리고 시간을 볼 줄 몰라 9000까지 숫자를 세는 소녀 소서.
소서는 호군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어요. 근데 부탁받은 편지를 잃어버렸고, 비밀도 지키지 못했죠. 호군은 원래 일이 잘 풀리면 소서를 데리고 함께 떠나려 했다면서……
“잘 가, 소서.” 그 한마디 뒤, 그 자리엔 소서의 우산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어요.
린 칭옌이 단서를 좇아 찻집에 이르렀을 때, 호군의 옷섶에 묻은 물감 자국이 그를 붙잡았어요. 소서의 우산에서 봤던 그 색이었거든요.
정체를 들킨 호군은 2층으로 달아났고, 그곳엔 웬 검객이 비급을 든 채 서 있었어요. 그리고 얼마 뒤, 호군은 창밖으로 떨어졌죠.
바닥에 남은 건 시체가 아니라, 산산조각 난 찻주전자뿐이었어요.
죽은 점원의 '유해'를 훔쳐 오라던 서당 선생
찻주전자 조각을 두고, 마을의 포 선생이 나서요.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이 노선생은, 호군의 '유해'를 꼭 돌려받아야 한다고 하죠.
린 칭옌이 그를 찾아가 진실을 듣습니다. 이 마을 사람 상당수가 사실은 창괴 — 사람의 집념이 기물에 깃들어 의식을 얻은 존재라는 걸요.
근처엔 봉인된 베헤모스 '쉐이'가 잠든 쉐이 능묘가 있어요. 천 년을 봉인됐어도 새어 나온 힘만으로 주전자, 부채, 돌멩이 같은 기물을 창괴로 만들기엔 충분했죠.
포 선생은 옛 베헤모스 학자였어요. 소란 피우다 소멸될 창괴들이 안쓰러워, 인의예법을 가르치는 기물학당을 세웠고요.
호군은 남쪽 바다로 좋은 차를 찾아 떠나 끝내 돌아오지 않은 차농의, 그 찻주전자에 깃든 창괴였어요. 늘 마을을 떠나고 싶어 한 것도 그래서였죠.
그런데 며칠 전, 누군가 “창물을 인간으로 만드는 비결”이 담긴 무공전 소문을 편지로 퍼뜨려 마을의 민심을 흔들어 놓았어요.
돌멩이 하나를 평생에 걸쳐 사러 온 남자
아주 오래전, 한 온화한 남자가 강가에서 아이에게 예쁜 돌 하나를 팔라고 청해요. 값은 부르는 대로 주겠다면서요. 아이는 거절하죠.
그날 이후 남자는 아이가 청년이 되고 노인이 되도록, 열흘 만에, 혹은 3년 5년 만에 계속 찾아와요. 하지만 한 번도 억지로 뺏진 않았어요.
지금 그 아이는 만 어르신이 되어 병상에 누워, 잃어버린 돌을 찾아달라며 천사에게 재산의 절반을 걸어요.
린 칭옌은 도둑의 진짜 목적이 돌이 아니라 창고 속 유산이었고, 범인이 어르신의 둘째 아들임을 조용히 밝혀내요. 그리고 정작 그 돌은, 강가에서 창괴가 되어 있었죠.

어르신 곁엔 그 온화한 남자가 또 찾아와 있었어요. 평생 빈손으로 돌아가면서도 왜 자꾸 오느냐 묻자, 남자는 그저 이 돌이 좋고, 오는 길의 바람과 사람이 좋았을 뿐이라고 해요.
이제 돌을 주겠다는 어르신에게, 남자는 돌이 스스로 선택하게 하자며, 이젠 그만 내려놓아도 된다고 답해요.
어르신은 편안히 눈을 감았고, 강가의 그 돌도 물속으로 조용히 미끄러져 들어갔어요.
백 년째, 이길 수 없는 바둑을 이기려는 남자
뒷산에선 난가라는 소년이 바둑 한 판을 백 년 넘게 붙잡고 있었어요. 어떤 신선이 “이 판을 이기면 소원을 들어주겠다” 약속했거든요.
소원은 죽은 연인 백금과 다시 만나는 것. 문제는 이 판이 이길 수도 질 수도 없는 무승부, 삼패였다는 거예요. 이기려 집착할수록 판은 더 풀리지 않았죠.
산을 오르던 운청평이 그 판을 들여다봐요. 그리고 승부처를 버리고 엉뚱한 곳에 돌 하나를 놓아, 백 년의 교착을 단번에 풀어버리죠.
먼저 버리고, 다음에 바라보고, 마지막에 얻는 것입니다.
— 운청평
신선은 약속을 지켰어요. 난가는 백금과 재회하고, 여한 없이 떠나가요. 사실 난가도 이미 오래전에 죽은 몸이었거든요.
그런데 운청평과 함께 산을 오르던 그 백금은…… 백금의 의관묘 앞에 놓여 난가의 눈물과 그리움에 젖은 종이돈이, 창괴가 된 것이었어요.
소원을 이룬 '백금'은 다음 생엔 꼭 다시 만나자는 부탁을 남기고, 한 다발의 종이돈으로 돌아갔어요. 120년 전 그 재난의 밤, 난가는 사람들을 구하다 휩쓸렸고, 백금은 그를 빼내고 숨을 거뒀었죠.
잃어버린 검이, 매년 그를 찾아오는 소녀였습니다
별호 '도혼검'인 검객 정수는 7년 전 이 마을에서 검을 잃고, 그걸 하늘의 경고로 여겨 강호에서 손을 떼려 해요.
그런데 그때부터 매년 가을, 검을 지닌 여자가 찾아와 검술을 가르쳐 달라 조르죠. 7년을 그렇게 만나는 동안, 소녀는 스스로 놀랍도록 강해져요.
그 소녀가 바로, 정수의 잃어버린 검이 창괴가 된 존재였어요. 주인과 함께 강호를 봤을 뿐 제 발로 겪어본 적은 없어서, 자기 이름으로 강호를 살고 싶었던 거죠.
하지만 창괴는 마을을 감싼 보이지 않는 장벽을 넘지 못해요. 그래서 그 소녀가 무공전을 빼앗아 장벽을 뚫으려 했던 거였어요.
살인을 저질렀으니 벌해야 한다는 린 칭옌 앞에서, 검객은 그녀를 감싸요. 하지만 소녀는 이미 흉포한 창기에 사로잡혀 가고 있었죠.

뇌법이 떨어지자 소녀는 사라지고, 그 자리엔 소박하게 제본된 책 한 권 — 《무공전》만 남았어요.
검을 잃은 검객은 자수를 결심해요. 그리고 그 앞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한 여자가 나타나 “앞으로 가고 싶다”고 하죠. 검객은 잠시 망설이다, 함께 가지 않겠냐고 물어요.
천하제일이 되려고, 기어이 '신'을 불러냈습니다
한편 옥문에 난입해 무공전을 훔쳐 사라진 무인이 있었어요. 와이후의 아버지, 사람들이 '대협'이라 부르는 와이틴푸이죠.
딸 와이후와 노련한 추적자 리가 그를 뒤쫓아요. 무예엔 언제나 정직했던 아버지가 왜 이렇게 됐는지, 와이후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소동의 중심엔 막일이라는 영리한 소녀가 있었어요. 무공전을 미끼로 강호인과 창괴를 산꼭대기로 불러모아, 서로 싸우게 만드는 '영웅 잔치'를 연 거죠.
막일은 운청평에게 비급의 진위 감정을 시켜요. 하지만 운청평은 사람들 앞에서 진실을 말해버려요. 이 책엔 신비한 힘 같은 건 없고, 얼마든지 인쇄해 나눠줄 수 있으니 다툴 필요가 없다고요.
군중이 등을 돌리자, 막일은 최후의 수단을 꺼내요. 무공전에 깃든 힘으로, 봉인된 베헤모스 '숴'의 화신을 불러낸 거예요.

뇌법조차 허공을 치듯 통하지 않는 그 환상 앞에, 한 사람이 걸어 나가요. 반년 전 겨뤘던 종사, 즉 저 '숴'를 다시 이기려는 집념에 사로잡힌 와이틴푸이였죠.

30여 합. 벼랑 끝까지 몰리고도 그는 물러서지 않았어요. 그때 딸의 외침이 그를 멈춰 세웠고, 와이틴푸이는 잊고 있던 것들을 되찾아요. 40년의 약속, 지켜야 할 딸, 그리고 자기 이름을요.
나와 겨룰 수 있는 건 오직 나 자신뿐. 앞에 길이 없다면, 나는 돌아보아야 한다.
— 와이틴푸이
마지막 일격으로 '숴'를 지운 그는, 그대로 벼랑 아래로 떨어졌어요. 좌락이 서둘러 산 아래 수색을 명했죠.
이 마을은, 누군가 지어준 것이었어요
막일은 끝내 붙잡히지만, 이 모든 소동엔 이유가 있었어요. 그녀는 전쟁을 막을 어떤 물건을 찾으려고, 계원의 주인 '이'를 만나기 위해 판을 벌인 거였거든요.
계원은 쉐이 능묘 바로 위에 세워진 정원이에요. 그 관리자 량이, 오래전 이야기 하나를 들려줘요.
언젠가 량은 능묘 근처를 떠도는 창괴들을 모두 처분하라는 명을 받았어요. 하지만 그것들에게 사람과 똑같은 감정과 그리움이 있다는 걸 알고는, 처분하는 대신 폐허 위에 마을을 하나 지어줬죠.
고향이 무너졌는데도 기어이 돌아와 다시 밭을 갈겠다는 어느 귀향민을 보고 마음을 굳혔던 거예요. 망가졌어도 고향은 고향이니까요.
그 마을엔, 난가와 백금이 새집의 첫 물건으로 함께 빚었던 꽃병 창괴도 있었어요. 두 사람이 돌아오길 백 년째 기다리면서요.
선생님, 전 사람을 기다리고 있어요.
— 꽃병 창괴
그렇게 망산 마을이 태어났어요. 집념으로 빚어진 것들이 기다리고 그리워하며, 사람과 나란히 사는 곳으로요.
손님도 없는데 바닥을 닦던 그 찻집 점원을 기억하나요? 실은 이 마을 전체가 그 찻집이었어요. 언젠가 올 누군가를 위해, 오늘도 조용히 비질을 하는.
량, 정원을 깨끗이 청소하고,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라.
—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