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문은 사막을 순항하는 이동식 요새 도시예요. 백 년 가까이 이 도시를 지켜온 전설의 무술 종사가 있는데, 다들 그냥 '종사님'이라고만 불러요. 이번 이야기가 시작될 때 종사님은 마침 은퇴를 앞두고 있었죠.
하필 이 타이밍에 옥문이 옛 짝꿍 도시 용문과 도킹하면서, 별별 사람이 다 몰려들어요. 옛 친구를 배웅하러 온 용문 총독, 사라진 의형제를 찾는 사설탐정, 그리고 검 한 자루를 품에 안고 정신없이 도망치는 사막 소녀까지.
그리고 그날 밤, 우연이라기엔 너무 절묘하게 세 가지 사고가 동시에 터집니다. 총독 암살 시도, 종사님의 애검 도난, 그리고 성 밖 정찰대의 몰살. 옥문은 재앙을 코앞에 두고 이 셋이 사실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걸 아직 몰라요.
1. 도킹 첫날 밤, 사고가 세 개 동시에 터지다
객잔 TV에서는 50년 전 실화를 각색한 드라마 《옥문풍운》이 흘러나와요. 협객과 군대가 힘을 합쳐 외적을 물리쳤다는 얘기인데, 정작 등장인물 절반은 지금 이 객잔에 앉아서 자기 얘기를 자기가 보고 있어요.
연무대에서는 필라인 소녀 와이후가 낯선 이민족 소녀와 겨루는 중이에요. 상대는 오늘 처음 옥문 담을 넘은 지에윈, 사막 유목민 아나사족 출신이죠. 결국 와이후가 이기지만, 지에윈은 검 얘기만 묻고는 사라져요.
한편 좌 장군의 아들 좌락은 오랜만에 귀향했는데도 아버지 뵙기를 미뤄요. 성루에서는 종사 총웨가 여동생 링과 옛이야기를 나누고 있고요.
옥문에 여행 왔다는 사르곤 옷차림의 청년도 한몫 거들어요. 서툰 염국어로 "그 종사가 사르곤에서 내게 무공을 가르쳤어"라며 자랑하다가, 객잔 주인에게 '객잔'과 '객장'도 구분 못 한다고 핀잔을 듣죠.

밤이 되자 셋이 한꺼번에 터져요. 복숭아꽃 향을 풍기는 자객이 용문 총독 웨이 옌우를 노리고, 지에윈은 총웨의 검을 훔쳐 달아나고, 성 밖에서는 재앙정보전달자 소대가 몰살당해요.

2. 좌락, 검문 한 번 못 해보고 거한에게 튕겨나가다
자객에게 중상을 입힌 좌락은 범인을 찾아 옥문 구석구석 의원을 뒤져요. 마지막으로 들른 허름한 의원에서, 자기 소개도 안 하는 우람한 남자에게 문전박대를 당하죠.
무공으로 밀고 들어가려던 좌락은 그대로 튕겨 나가요. 와이틴푸이라는 이름의 이 남자는 무기 안 믿고 주먹만 믿는다고 큰소리치는데, 방 안엔 이미 지에윈이 숨어 있었어요.
그런데 이 남자, 어딘가 낯이 익어요. 사실 이 도시엔 그를 십수 년째 찾아다니는 사람이 있거든요. 딸을 두고 사라진 아버지 얘기를, 아직 아무도 모르고 있어요.
사실 상처 입은 지에윈을 몰래 거둬 치료해 준 것도 이 거한이었어요. "움직이지 마. 얌전히 치료받도록." 겉으론 퉁명스럽지만, 좌락한테는 끝까지 시치미를 떼줬죠.
3. 탐정과 특사, 옥문에서 서로 다른 그림자를 쫓다
용문 사설탐정 리는 오랜 의형제를 찾아 옥문에 왔어요. 강호인들 붙잡고 "혹시 우람한 남자 못 보셨어요?"만 며칠째 묻고 다니죠.
같은 시각 용문 특사 린 위시아는 밀수범을 족쳐가며 '산해중'이라는 이름을 캐고 있어요. 베헤모스를 숭배한다는 사이비 도적 떼인데, 20년 전에도 옥문을 노린 적이 있대요.
장터에서 좌락이 산해중의 습격을 받아요. 마침 지나가던 리가 도와주고, 이 자리에서 좌락은 처음으로 "그 거한, 필라인이던데요"라는 결정적인 단서를 흘려요. 리의 표정이 굳어요.
단서를 얻은 리는 결국 객잔 맞은편 의원에 숨어 있던 와이틴푸이를 찾아내요. 그런데 그 자리에 옥문 참지로 부임한 옛 벗 양현까지 우연히 겹쳐요.
리, 양현, 와이틴푸이는 알고 보니 십수 년 전 의형제를 맺은 사이였어요. 하지만 다시 만난 술자리는 서먹하기만 해요.
"몸에 안 좋아." 술도 거절하는 와이틴푸이 앞에서 리는 한숨만 내쉬어요. "와이틴푸이, 이 인간아, 같은 아버지인데도 어쩜……"
4. 새내기 물류회사 사장님, 완장 한 장을 줍다
상촉에서 온 두요야는 옥문에서 막 '행유물류'를 차렸어요. 첫 임무로 재앙정보전달자 호송을 맡겼는데, 부하 둘이 그 몰살당한 소대에 있었던 거예요.
두요야와 와이후는 함께 희생자 집을 돌다가 이상한 점을 느껴요. 다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말끔하거든요.
그리고 린 위시아가 도검방 창고에서 주워온 완장 하나가 모든 의심을 한곳으로 몰아요. 성남의 늙은 도검방 주인, 맹철의.
두요야에게 맹철의는 옥문에서 유일하게 의지하는 어른이에요. 그런데 그날 밤, 도검방 문을 두드린 두요야와 좌락 눈앞에서 검은 복면들이 튀어나와요.
난투 끝에 마주친 건 다친 채 숨어 있던 지에윈. 뒤늦게 달려온 종사의 제자 치우바이가 산해중을 간단히 제압하지만, 정작 이 소동의 주인이어야 할 맹철의는 어디에도 없어요.
5. 창고에서 드러난 20년 묵은 셈법
린 위시아는 창고에서 맹철의와 마주해요. 그는 순순히 진짜 재앙 데이터를 건네며 털어놓죠. 산해중과 손잡고 정찰대의 죽음을 조작한 것도, 종사의 검을 도둑맞게 놔둔 것도, 전부 자기 계획이었다고.
이유는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산해중이 강호인으로 위장해 옥문에 잠입했던 그날 이후, 좌선료 장군은 강호인들을 옥문 운영에서 완전히 밀어냈어요. 맹철의는 그때 옥문을 위해 피 흘렸던 이들이 내쳐진 걸 잊지 않았죠.
"이번 일은 나 한 사람 때문에 시작된 거다." 맹철의가 말해요. 하지만 그를 노리고 나타난 건 산해중 두목이 아니라, 산해중을 부리는 진짜 수장 본인이었어요.
행유물류는 좋은 아이디어였다…… 아무리 그래도 훌륭한 새싹이 내 눈앞에서 꺾여버리는 건 보고만 있을 수 없었어……
— 맹철의
뒤늦게 도착한 두요야 앞에서, 맹철의는 등 뒤로 날아오는 칼을 대신 맞아요. 두요야는 데이터 상자를 품에 안고 뛰어요. 원한도 사죄도, 이제는 아무것도 늦지 않았기를 바라면서.
6. 아버지와 딸, 거리 한복판에서 날아간 주먹 한 방
데이터를 지키려는 두요야를 노리고 산해중이 또 나타나요. 이번엔 와이후가 막아서는데, 상대의 칼이 심상치 않아요. 초식도 없이 그냥 빠르기만 한, 이상한 오리지늄 아츠.
결정적인 순간, 벽 같은 등판 하나가 와이후 앞을 막아서요. 십수 년 만에 마주한 아버지, 와이틴푸이예요.

와이틴푸이는 딸을 지키고 나서야 슬쩍 돌아봐요. "구해줘서 고마워." "다른 할 말은 없어?" "안 해도 된다." 짧은 대화 뒤, 부녀는 그대로 주먹을 맞대요.

"제가 졌어요." 와이후가 먼저 인정해요. 하지만 아버지 턱을 걷어찼던 그 발차기, 아빠가 가르쳐준 게 아니었단 것도 둘 다 알고 있죠.
7. 40년 무공이 주먹 한 방으로 정리되다
그사이 종사의 제자 치우바이도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켜요. 어릴 적 강가 마을이 습격당해 아버지를 잃은 그녀는, 그 습격자 무리를 이끌었던 총웨 곁에 남아 5년째 검을 배워왔거든요.
재앙을 앞둔 그날, 치우바이는 총웨에게 검을 겨눠요. 이기지 못할 걸 알면서도요.

당신을 향해 공격했고, 이 공격으로 당신을 죽이지 못했어요. 제가 당신을 죽일 수 없다고 해서 복수를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단지 '원한'은 더 이상 제가 검을 뽑으려는 이유가 아니게 됐으니까요.
— 치우바이
그리고 3년을 기다려온 또 하나의 대결. 와이틴푸이가 드디어 종사에게 도전장을 내밀어요. 재앙 전야, 병사들의 사기 진작용 비무라는 명목으로요.

결과는 종사의 승리. 하지만 와이틴푸이는 피를 토하면서도 웃어요. "내가 40년 걸려 겨우 네 한 수를 이겼으니, 360년 더 단련하면 아마 완전하게 이길 수 있겠어!" 이 아저씨, 진짜 이상한 데서 긍정적이에요.
8. 재앙이 몰려오다, 늙은 쥐의 마지막 힘
예고된 재앙이 결국 옥문을 덮쳐요. 좌선료 장군은 도시를 우회시키는 대신, 두 달이 아니라 지금 당장 재앙과 정면으로 맞서는 쪽을 택해요.

성문 한쪽은 종사의 동생 링이 혼자 맡아요. 폭풍이 몰아치는데 술 항아리부터 여는 게 이 언니다운 방식이죠. "잘 왔어!" 잔도 없이 술을 들이켜며 재앙과 맞서요.
코어 중추부를 지키던 흠천감 캐스터들이 밀리자, 용문의 그림자 래트킹(린 위시아의 아버지)이 직접 나서요. 평소엔 그저 산책이나 다니던 노인인 줄 알았는데, 오리지늄 폭풍을 통째로 밀어내는 실력을 보여줘요.

하지만 무리한 대가는 커요.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아버지 앞을, 린 위시아가 대신 막아서요.
잡담은 그만. 다들 다쳤으니까, 호흡을 가다듬어. 얼마 남지 않았어. 앞을 봐!
— 린 위시아
9. 검을 뽑자 보인 것
재앙 한복판, 정신을 잃은 지에윈이 무의식중에 종사의 검을 뽑아요. 그 순간 검에 봉인돼 있던 기억이 흘러나오죠. 총웨는 사실 천 년 전 사냥당한 재앙급 괴수 '쉐이'가 스스로를 열두 조각으로 나눠 봉인한 파편 중 하나였어요.

총웨에게는 링 말고도 니엔, 시라는 동생들이 더 있어요. 다들 쉐이의 파편이면서,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인간 세상에 흩어져 살고 있죠.
그리고 이 모든 소동 뒤에는 또 다른 조각 '야'가 있었어요. 천 년 전 사냥에서 크게 다쳐 자취를 감췄던 그가, 산해중을 잠깐 이용해 쉐이의 행방을 캐물으려 한 거였죠.
총웨는 환상 속에서 야와 마주 앉아요. 얼어붙은 강 위, 조각배 하나에 둘이 각각 서서요.

너는 자신을 검에 봉인하고 인간의 몸을 얻으면서까지 자신을 그들의 일원이라 생각했지만, 결국 얻은 게 뭐지?
— 야
재앙은 아직 끝나지 않았네. 사람들은 심지어 귀공의 존재조차도 모르지. 누군가는 옥문을 위해 도리를 따져야만 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사람은, 나밖에 없네.
— 총웨
대화는 결론 없이 끝나요. 야는 주먹 한 방에 나가떨어지고, 옥문을 떠나라는 말만 남긴 채 사라져요.
총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아요. 죽음을 앞둔 모든 생명은 다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걸, 그도 알고 있으니까요.
에필로그: 다들 각자의 원한을 내려놓고
재앙이 지나간 뒤, 다들 제 갈 길을 찾아요. 검은 종사의 손을 떠나 와이틴푸이에게 맡겨져요. "다시 대결하는 증표로 삼아도 좋네." 40년 걸려 겨우 한 수 이긴 남자는, 다시 40년을 기약하며 검을 받아들죠.
지에윈은 무덤에 검을 두고 왔다가, 결국 다시 가져와 진짜 주인에게 돌려줘요. 스승이 그리워했던 게 검 하나만은 아니었다는 걸, 어렴풋이 눈치챈 채로요.
린 위시아는 빅토리아 유학 대신 용문에 남기로 해요. "누군가 내려놓은 짐은, 누군가가 짊어져야 하니까." 와이후는 계속 무공을 연마하며 아버지에게 재대결을 예고하고, 치우바이도 검을 든 채 또 다른 목표를 찾아 떠나요.
와이후는 리에게 아버지의 남은 약값을 대신 갚겠다고 나서지만, 의원은 그저 손사래를 쳐요. "사람을 살리고 돌보는 일이 종일 치고받고 싸우는 일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어서." 결국 와이후는 눌러앉아 청소를 거들죠.
웨이 옌우는 마지막으로 종사에게 검법 하나를 보여줘요. 적소 검법의 진짜 마지막 초식, '천당'을.
검은 마음에 따라 움직이며, 휘두름에 후회란 없다. 조금이라도 망설이는 순간, 검은 날을 잃어 도리어 자신을 해치게 되죠.
— 웨이 옌우
성문 앞, 종사는 혼자 바둑을 두는 낯선 나그네와 마주쳐요. 사실은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온, 또 다른 '형제'였죠.

너의 검 덕분에 내가 배운 게 있었어. 또 만나게 될 거야. 잘 있어, 형제여.
— 낯선 목소리
좌선료 장군은 그제야 녹무관에게서 스승의 마지막 선물 《무공전》을 전해 받아요. 무예로 몸을 다스리라는 공법까지 딸려서요. 종사는 그렇게 작별 인사도 없이, 반 시진 전에 이미 옥문을 떠난 뒤였죠.
백 년 만에 처음으로, 종사는 옥문을 떠나요. 열여덟 번째 북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좌선료 장군이 직접 배웅의 북을 쳐요.

드라마 《옥문풍운》은 협객들이 나라를 위해 원한을 내려놓았다는 이야기였죠. 옥문의 진짜 이야기도 다르지 않았어요. 검 한 자루를 둘러싸고, 다들 각자의 원한을 내려놓는 법을 배웠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