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잃고 관 속에서 깨어난 박사를, 로도스 아일랜드가 불타는 체르노보그에서 데리고 나가는 중이에요. 도시엔 곧 재앙이 떨어지고, 남은 시간은 한 시간 남짓이에요.
거리는 리유니온으로 가득 차 있어요. 파괴와 약탈, 방화가 끊이지 않고요. 재앙 구름은 이미 머리 위에서 무겁게 모양을 갖춰가요.
구출 작전의 마지막 단계. 목표는 단 하나, 남쪽 출구까지 살아서 닿는 거예요.
이 이야기는 그 짧은 탈출로에서, 로도스 아일랜드가 감염자란 무엇인지, 그리고 동료를 지킨다는 게 무엇인지 몸으로 배워가는 기록이에요.

1. 아자젤이라는 진료소
긴장 속에서도 로도스 아일랜드는 잠깐 웃어요. 니어가 리유니온을 "소풍 가는 바보 집단"이라 진지하게 깎아내리자, 메딕이 그만 웃음을 터뜨리거든요.
니어는 자기가 던진 게 '개그'였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어색해해요. 그 서툰 농담에 아미야도 조용히 웃고요.
저희는 여러분의 슬픈 모습을 보려고 로도스 아일랜드를 세운 게 아니니까요.
— 아미야
이동하던 길에, 일행은 폐허가 된 진료소 하나를 발견해요. 아미야가 전에 와 본 적 있는 곳, 감염자 진료소 아자젤이에요.
사람이 있었던 흔적조차 남지 않았어요. 아자젤은 로도스 아일랜드의 통신망에 닿아 있었는데도, 끝내 도움을 청하지 않고 이렇게 사라져버렸어요.
한 오퍼레이터는 그들의 오만함이 자업자득을 불렀다며 분개해요. 하지만 에이스는 조용히 말려요. 모든 게 그들 탓만은 아니라고요.

아미야는 아자젤이 어떤 곳이었는지 박사에게 들려줘요. 신분을 숨기고 도시에 숨어 사는 감염자들이, 격리 구역으로 추방당하지 않으려 몰래 찾던 마지막 보루였다고요.
광석병은 강력한 힘을 주는 대신 몸과 삶을 통째로 갉아먹어요. 사회적 권리를 빼앗고, 끝엔 반드시 죽음이 기다리고요. 그리고 그 시체는 다시 새로운 감염원이 돼요.
그래서 사람들은 감염자를 병자가 아니라 두려운 존재로 다뤄요. 체르노보그는 바로 그 차별과 추방과 말살의 상징이고요.
아자젤은 분명 리유니온의 요구를 거부했을 거예요. 그리고 그 대가를 치른 거고요. 아미야는 그들의 경계심을 원망하지 않아요.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다고 말해요.
리유니온에 가입하거나 로도스 아일랜드의 손을 잡을 기회를 얻는 감염자는 극히 드물어요. 대부분은 이미 모든 걸 잃은 채, 절망 속에서 죽음을 기다릴 뿐이고요.
아직 이 모든 걸 다 이해하긴 어려울 박사에게, 아미야는 언젠가 직접 마주할 날이 올 거라고 담담히 덧붙여요. 로도스 아일랜드도 어쩌면 아자젤과 마찬가지일지 모른다는 말과 함께요.
2. 한 시간도 남지 않았다
이제 재앙까지 한 시간도 남지 않았어요. 우회할 여유는 없고, 앞을 막은 리유니온 구역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수밖에 없어요.
도베르만은 이 판단을 박사에게 맡겨요. 리유니온의 통신은 원시적이고 진형은 흩어져 있으니, 선두를 기습으로 뚫고 적이 집결하기 전에 다음 구역으로 빠져나간다는 계획이에요.
아미야는 망설임 없이 박사의 선택을 믿겠다고 해요. 그런데 도베르만은 그 대답을 그냥 넘기지 않아요.
박사의 지략을 빌리는 건 좋지만, 아미야가 박사에게 너무 기대선 안 된다고요. 리더는 홀로 설 줄도 알아야 하니까요.
그건 아미야를 아끼기에 하는 말이에요. 도베르만은 박사에게도, 아미야가 더 배우고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을 이해해 달라고 조용히 부탁해요.
그러면서도 도베르만은 못을 박아요. 신뢰는 단 한 번의 전투로 생기는 게 아니라고요. 그래도 박사가 잘하고 있다는 점만큼은, 몇 번이고 인정한다고 덧붙이면서요.
돌격 신호와 함께 로도스 아일랜드는 봉쇄선을 단숨에 뚫어요. 뒤늦게 집결한 리유니온이 쫓아오지만, 일행은 이미 다음 구역으로 빠져나간 뒤예요.
한편, 도시 어딘가에선 소년 지휘관 메피스토가 상황을 읽고 있어요. 파우스트가 로도스 아일랜드를 추적 중이고, 그들은 이제 중심 구역 외곽에 갇힌 신세라고요.
메피스토는 그들이 재앙의 혼란을 틈타 도망치려 한다는 걸 눈치채요. 계획에 방해가 될 것 같으니, 이쯤에서 끝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면서요.
3.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 때
대광장에 이르자 도시의 참상이 한눈에 들어와요.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시민들이 리유니온에게 발이 묶여 공격당하고 있어요.
하지만 이 지형에선 로도스 아일랜드가 불리해요. 에이스는 시민을 지키러 뛰어들 수 없다고, 담담하지만 무겁게 잘라 말해요.
폐허가 된 대광장을 지나며 에이스는 무언가를 떠올리는 듯해요. 감염자를 탄압하던 도시가 감염자의 보복을 받은 셈이라면서요. 다 지난 이야기라며 말을 삼키지만요.
그때 광장 출구에서 엄청난 수의 리유니온이 몰려와요. 도베르만은 이상함을 느껴요. 리유니온에겐 이곳을 지킬 이유가 없는데, 왜 이렇게나 많은 걸까요.
리유니온은 재앙을 두려워하기는커녕 흥분해 있어요. "우리 감염자들의 구세주가 오셨다!"고 외치면서요. 그러곤 이유도 없이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해요.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어요. 니어가 낮게 옛 구절을 읊어요. "솟구치는 구름이 화염 속에서 소용돌이치면……"

광장 어딘가에서 두 사람이 이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어요. 리유니온의 요원 크라운슬레이어, 그리고 용 뿔을 가진 누군가예요.

그제야 도베르만은 깨달아요. 리유니온은 복수가 아니라, 체르노보그를 재앙으로 통째로 파괴하는 선전포고를 벌인 거라고요. 감염자의 시대가 왔다는 선언이요.
4. 재앙 아래에서
하늘에서 거대한 운석이 쏟아지기 시작해요. 건물이 무너지고, 리유니온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잿더미가 돼요.
낙석이 메딕을 덮치려는 순간, 박사가 몸을 던져 메딕을 밀쳐내요. 그 바람에 이번엔 박사가 위험해지고요.
니어가 방패를 들고 뛰어들어 박사를 감싸요. 갑옷이 데고 방패가 흔들려도, 니어는 박사에게 뛰라고, 어서 뛰라고 외쳐요.
무슨 일이 있어도 박사가 다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어. 내 눈앞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건 더더욱 안 된다!
— 니어
위기를 넘긴 니어는 박사를 나무라요. 혼자 그런 위험한 짓을 하지 말라고요. 앞으로는 적어도 자신을 데리고 가라고, 자신이 박사를 지키겠다면서요.
간신히 재앙의 첫 단계가 지나가요. 운석의 양이 줄고, 오퍼레이터 전원이 경상뿐이에요. 다들 살아남았다는 안도가 잠깐 스쳐요.
그런데 폐허 곳곳에서 리유니온이 다시 기어 나와요. 추격이 아니라, 재앙을 견디고도 남은 숫자예요.
절반 이상이 소멸했는데도 로도스 아일랜드를 처리하기엔 충분한 머릿수예요. 니어조차 놀라요. 리유니온은 대체 어디서 이렇게 많은 감염자를 모은 걸까요.
이 정도 머릿수라면 정말로 체르노보그를 점령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도베르만이 씁쓸하게 중얼거려요. 대체 리유니온은 어디서 이 많은 감염자를 끌어모은 걸까요.
그 포위망 속에서, 적 한 명이 홀로 이쪽으로 걸어와요. 니어는 그에게서 강철과 유황, 무언가 타오르는 냄새를 맡아요. 사절을 보내기엔, 그 발걸음이 너무 불길해요.
리유니온의 폭군. 자료 속 그 이름을 아미야가 조용히 입에 올려요.
온 땅을 태워버릴…… 화염이란 건가.
— 니어
5. 탈룰라
그의 이름은 탈룰라예요. 손끝에 열기를 모으면 주변의 공기가 아지랑이처럼 일렁이고, 닿는 모든 것이 녹아내려요.
니어는 아미야에게 박사를 데리고 당장 도망치라고 해요. 저 괴물은 가만히 두면 구조대 전원을 잿더미로 만들 거라고요. 하지만 아미야는 물러서지 않아요.
탈룰라가 나직이 "조용히 해" 한마디를 내뱉자, 니어의 갑옷이 순식간에 너덜너덜해져요. 그런데도 니어는 물러나라는 도베르만에게 오히려 물러나라 소리쳐요.
탈룰라는 체르노보그가 해방되었다고 선언해요. 목표는 이미 달성했다면서요. 저항이 대지에 희망을 싹틔울 순 있어도, 너희의 운명을 바꿀 수는 없다고요.
그러면서도 로도스 아일랜드에게 흥미를 보여요. 해방자의 소질을 갖췄다면서요.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진정한 감염자의 편에 서지 않은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말해요.
너희에게 마지막을 선사하도록 하지, 내가 좋아하는 방법으로. ……파멸하라.
— 탈룰라

니어가 막겠다며 뛰어들지만 늦었어요. 그 순간, 아미야가 모두의 앞을 가로막고 서요.
아미야가 어둠 같은 힘으로 방벽을 세워, 탈룰라의 아츠를 광장 밖으로 새어 나가지 못하게 홀로 억눌러요.

방벽이 불타기 시작해요. 도베르만이 다급히 외쳐요. 이대로 가면 아미야의 반지가, 그녀를 억누르던 마지막 봉인이 버티지 못한다고요.
아미야는 그래도 놓지 않아요. 설령 자신이 재난을 불러오게 되더라도, 이제 다시는 소중한 사람을 눈앞에서 잃을 수 없다면서요. 박사에게 미리 사과까지 하면서요.
탈룰라는 그 모습에 나직이 감탄해요. "멋지군." 하지만 아미야의 몸은 이미 한계예요.
니어도 마지막 힘을 짜내 뛰어들려 해요. 카시미어의 빛에 이 몸을 바치겠다는 기사의 맹세를 읊으면서요. 도베르만은 박사에게 어서 가라고, 아미야는 우리가 돕겠다고 외치고요.
그때 에이스가 아미야의 곁에 서요. 넌 이미 충분히 노력했다고, 이젠 우리가 함께 짊어지겠다고요.
네 고통을, 우리도 함께 짊어지게 해다오.
— 에이스
에이스는 도베르만에게 다들 데리고 먼저 가라고 해요. 곧 따라가겠다는 말과 함께요. 하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에이스는 기억을 잃은 박사에게 마지막으로 털어놔요. 박사는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자신은 박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억하고 있다고요.
언젠가 너와 아미야는 이 잔혹한 대지에 맞서야 할 때가 올 거야. 그러니, 아미야를 잘 지켜줘, 박사.
— 에이스
6. 남겨진 사람들
니어와 도베르만이 아미야와 박사를 데리고 포위망을 돌파해요. 정신을 잃은 아미야를 업은 채로요.

니어가 무언가 말하려 하자 도베르만이 조용히 막아요. 아미야가 들어선 안 된다고요. 아미야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짊어지고 있으니까요.
동료들이 목숨을 바쳐 열어준 길이에요. 그 노력을 헛되게 할 수는 없어요. 도베르만은 침울해할 때가 아니라며 스스로를 다잡아요.
그러곤 씁쓸하게 혼잣말을 흘려요. 생각해보니 자신에게 안심하라 말했던 이들은, 이제껏 누구 하나 돌아오지 못했다고요.
깨어난 아미야는 이상함을 느껴요. 잠시 의식을 잃었을 뿐이라며 스스로 걷겠다고 하지만, 에이스와 다른 이들이 보이지 않거든요. 그래도 더 캐묻지는 않아요. 에이스라면 문제없을 거라고, 로도스 아일랜드 사람들은 다 강하니까요, 하고 스스로를 다독여요.
남쪽 출구가 코앞이에요. 아미야는 걸음을 옮기다, 박사에게 아주 잠깐만 기대도 되겠냐고 물어요. 잠시만, 아주 잠시만이라도요.
7. 출구를 막아선 여자
겨우 출구에 닿았는데, 누군가 앞을 막아서요. 탈룰라의 부하도, 수비 담당도 아닌, 스스로 W라 부르는 여자예요.
W는 로도스 아일랜드가 아니라 박사를 만나러 여기서 계속 기다렸다고 해요. 박사에게 물어볼 게 있다면서, 그를 넘겨달라고요. 박사의 이름을 부르면서요.
W는 오는 길에 우르수스인도 속아 넘어갈 만큼 잘 위장한 정찰팀을 만났다고 흘려요. 아미야는 그들이 무사하길 바라며 안도하지만, 곧 그 말의 진짜 뜻을 알아채요.
W는 아미야에게 묻어요. 대체 어떤 마법을 써서, 사람들이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부하로 만들었냐고요. 당신에게 그 사람들이 희생할 만한 가치가 있느냐고요.
그건 아미야가 가장 견딜 수 없는 말이었어요.
사람의 목숨에는 모두 가치가 있는데…… 당신이 그걸 모욕할 자격은 없다고요!
— 아미야
박사를 지키려 니어가 나서지만, W는 자신은 탈룰라와도 맞지 않고 수비 전문도 아니라며 여유롭게 굴어요. 그저 박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뿐이라는 듯이요.
짧은 교전 끝에, W는 무언가를 알아채요. "아, 아, 하하…… 그렇게 된 거구나…… 이제 기억났어, 아미야." 그러곤 원하는 걸 손에 넣었으니 가도 좋다고 물러서요.
리유니온도 물러나요. 탈룰라의 명령이라면서요. W는 지루한 건 질색이라며, 다음에 다시 만나자는 인사를 남겨요. 아미야에게, 그리고 박사에게요.
다음엔, 당신이 직접 진실을 말하도록 해 줄게, {박사}.
— W
8. 최후의 두 사람
그 무렵, 광장에 남은 오퍼레이터 하나가 겨우 정신을 차려요. 탈룰라라는 괴물이 혼자서 모두를 잿더미로 만든 지옥을, 그는 비명 지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못 했다며 자책해요.
가드 오퍼레이터들이 체스 말처럼 튕겨 나가고, 디펜더들이 버터처럼 짓눌려 죽어간 광경을요. 그 괴물 자체가 재앙의 화신이었다고, 부하는 떨리는 목소리로 되뇌어요.
그를 응급처치해 살려낸 건 한쪽 팔을 잃은 에이스였어요. 이렇게 보여도 아직 한쪽 팔은 남아 있다며, 그 팔로 여전히 탈룰라를 막으러 가겠다면서요.
부하는 도망치시라 애원하지만, 에이스는 물러서지 않아요. 박사와 아미야의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는 도망칠 수 없다고요.
네 목숨은 내 한쪽 팔과 맞바꾸었다. 설령 네 목숨을 1분밖에 늘려주지 못한다고 해도, 네 목숨엔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 에이스
곧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에이스는 다시 괴물에게로 걸어가요. 잘 버티고 있으라는 당부와 함께요. 남겨진 오퍼레이터는 아미야가, 모두의 소원을 이루어 주길 바라며 눈을 감아요.
거리의 절반이 숯덩어리가 되고 강철마저 녹아내린 그곳에서, 누군가는 여전히 싸우고 있었어요. 탈룰라조차 그 집요함에 "기억해 두도록 하지, 로도스 아일랜드"라고 중얼거릴 만큼요.
에필로그 — 눈물은 아직
탈출에 성공한 일행 속에서, 한 메딕이 끝내 울음을 터뜨려요. 아미야는 그 곁에 앉아, 자기가 들었던 말 한마디를 조용히 건네요.
눈물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남겨두어야 한다고요. 지금은 아직…… 안 됩니다.
— 아미야
돌아가는 길, 아미야는 후방의 오퍼레이터를 자신이 호송하겠다고 자청해요. 괜찮다는 말만 반복하면서요. 걱정하는 니어에게도, 저는 괜찮다고요.
동료들의 이름을, 아미야는 아직 정확히 모른 채예요. 짐작하면서도 묻지 못하고, 다만 앞으로 걸어갈 뿐이에요.
재앙까지 남은 한 시간을 빠져나오는 동안, 니어는 박사를 지켰고, 아미야는 방벽으로 모두를 막아섰고, 에이스와 이름 없는 오퍼레이터들은 뒤에 남았어요. 박사와 아미야를 남쪽 출구까지 보내기 위해서요.
그렇게 로도스 아일랜드는 불타는 체르노보그를 등져요. 눈물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미뤄둔 채, 돌아갈 곳을 향해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