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보그에서 박사를 구출한 지 나흘. 로도스 아일랜드는 리유니온을 피해 리 지방의 이동도시 '용문' 외곽까지 밀려와요.
리유니온의 다음 목표가 용문이라는 게 밝혀지고, 용문은 임시 체류와 물자 보급을 대가로 로도스에게 외곽 방위를 맡겨요.
그런데 어젯밤부터, 체르노보그의 생존자들이 황야를 건너 용문으로 몰려들고 있어요. 그들도 감염자예요. 용문에 오면 어떻게 되는지 알면서도요.

이른 아침 작전 회의에서 교관 도베르만이 상황을 정리해줘요. 리유니온의 다음 목표가 용문이라는 게 판명됐고, 오후면 생존자들이 도착할 거라고요.
전황이 달라졌으니 출발 전에 새 전술을 익혀두라며, 도베르만은 한마디를 덧붙여요. 이번에는 지각하지 말라고요. 그 말이 곧 현실이 될 줄은, 아직 아무도 몰라요.
1. 14분 지각
그날 밤, 로도스는 용문 5구역 외곽 검문소에서 근위국과 만나기로 해요. 약속은 10시. 도착은 10시 14분이에요.
마중 나온 사람이 대뜸 시계부터 봐요. 자기 시간을 14분이나 헛되게 썼다고요. 용문근위국 특별감찰팀장 첸이에요.
검문소의 방송이 규칙을 되풀이해요. 재앙의 영향으로 용문 전역이 정박에 들어가고, 5구역 출입구는 두 시간 뒤 봉쇄되며, 등록되지 않은 감염자는 '긴급처리법안'에 따라 구류된다고요.
말을 채 나누기도 전에 소동이 터져요. 등록되지 않은 감염자가 검문에 응하지 않고 몸부림쳐요. "우리는 괴물 같은 게 아니란 말이다!!" 하고요.
첸은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명령해요. 전부 연행하고, 구경꾼은 해산시키고, 조사 구역을 넓히라고요. 감염자에게 용문이 어떤 곳인지, 첫 장면부터 분명해요.
아미야는 속으로 삼켜요. 첸 팀장이 상상했던 것보다 몇 배는 엄격한 사람 같다고요.
첸은 아미야와 박사만 따로 데리고 높은 전망대로 올라가요. 아찔한 높이에 아미야가 휘청이자, 첸이 무심하게 툭 던져요. 로도스도 한 실력 한다고 들었는데, 하고요.
그러면서 첸은 미심쩍어해요. 용문에 오면 감염자가 어떤 취급을 받는지 뻔히 알 텐데, 왜 체르노보그 생존자들이 미친 듯이 이 도시로 몰려드는 거냐고요.
2. 칼날이 닿기 전에
높은 탑 위, 로도스의 실질적 수장 켈시가 용문의 장관 웨이 옌우와 마주 앉아 있어요. 이미 협상이 한창이에요.
켈시의 논지는 냉정해요. 단순 검역만으로는 리유니온을 막을 수 없고, 감염자가 일으킨 집단 폭동에 대응해본 건 로도스뿐이라고요.
감염자에게 가장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건, 오직 같은 감염자들밖에 없습니다.
— 켈시

첸은 곧장 반발해요. 외부 감염자가 용문의 기밀 업무에 끼어드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요. 리유니온과 똑같은 감염자 조직인 로도스를 어떻게 믿느냐고요.
켈시는 물러서지 않아요. 첸이 용문의 안위보다 감염자 배척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면, 지금 당장 자신을 체포해도 좋다고요. 그럼 감옥에서 용문이 불타는 걸 지켜보겠다면서요.

팽팽하던 자리를 웨이 옌우가 정리해요. 저들은 자기 손님이라고요. 그리고 오래된 격언 하나를 꺼내요.
내가 중시하는 것은 단 하나… 오직 실력뿐이다.
— 웨이 옌우
그 앞에 아미야가 체르노보그의 진실을 꺼내요. 로도스는 단순한 폭동이 아니라, 폭동과 동시에 닥친 재앙 속에서 살아 돌아온 조직이라고요. 그리고 리유니온의 리더 탈룰라와 직접 교전했다고요.
재앙에서 살아 돌아온 자를 만날 기회는 드물다며, 웨이 옌우의 눈빛이 달라져요. 첸도 조용히 인정해요. 자신도 그 이름을 알고 있다고요.
웨이 옌우는 로도스를 인정해요. 조건은 두 가지. 첫째, 근위국과 협력해 리유니온의 습격을 막을 것. 둘째는 첫 임무를 끝낸 뒤에 다시 이야기하겠다고 미뤄둬요.
다만 힌트 하나는 흘려줘요. 리유니온이 예상을 뛰어넘는 피해를 준다면, 로도스가 그 뒤처리까지 맡아주었으면 한다고요. 무슨 뜻인지는 아직 감춘 채로요.
이 애매한 조건에, 아미야가 계약서에 한 줄을 덧붙여요. 조례를 어떻게 해석할지는 갑과 을이 서로 협의해 정하자고요. 웨이 옌우는 흥미로워하며 받아들여요.
협상이 끝나고, 켈시가 박사를 조용히 붙잡아요. 지금까지의 희생에 보답해줬으면 좋겠다며, 짧게 한마디를 건네요.
잘 돌아왔어.
— 켈시
3. 슬럼가의 부적
용문 슬럼가. 흰머리의 우르수스 소녀 하나가 아이들을 숨기고 있어요. 미샤예요.
미샤는 직접 만든 인형을 아이들에게 쥐여줘요. 소중한 사람이 언제나 안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부적이라고요. 만드는 법은 어머니가 가르쳐 주셨대요.
그러곤 아이들을 숨기고 홀로 폭도들을 유인해요. 이제 그 애들이 있는 곳으로는 돌아갈 수 없겠다고 스스로 되뇌면서요. 그 폭도들은 미샤를 끈질기게 쫓고 있어요.
때마침 로도스의 임무는 슬럼가 감염자 보호였어요. 정찰에 나선 아미야가 폭도에게 붙잡힌 아이를 발견해요.
아미야가 아츠로 폭도들을 쫓아내요. 아이들은 그런 아미야를 '토끼 언니'라 부르며 고마워해요. 하지만 폭도들은 도망치며 아미야에게 괴물이라 소리쳐요.
그 직후, 근위국에서 뜻밖의 명령이 내려와요. 흰 머리에 145cm 전후의 우르수스 소녀, 이름은 미샤. 발견 즉시 근위국에 연락하라고요.
첸에게 이 명령이 정말 필요한 거냐고 되묻자, 첸은 딱 잘라 답해요. 의심할 여지가 없으니 바로 시작하라고요. 로도스가 왜 그 소녀를 쫓아야 하는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요.
4. 무죄추정
아미야는 도망친 미샤를 먼저 찾아내요. 로도스가 감염자를 위한 조직이라고 밝히지만, 미샤는 믿지 않아요.
당연해요. 미샤가 아는 용문은, 감염자를 범죄자보다 더 혹독하게 대하는 곳이니까요. 대체 무슨 근거로 감염자를 돕겠다는 거냐고 쏘아붙여요.
아미야는 말 대신 자기 손을 보여줘요. 오리지늄이 배어나온 그 손을요.
네, 미샤 씨와 똑같아요.
— 아미야
아미야는 솔직해요. 왜 감염자들이 미샤를 잡으려 하는지 자기도 모른다고요. 그래도 죄 없는 감염자가 위험에 빠지는 건 두고 볼 수 없다고요.
아미야는 미샤가 섣불리 움직이면 슬럼가 아이들까지 위험해진다고 설득해요. 로도스도 방금 그 아이들을 폭도에게서 구해낸 참이라면서요.
미샤는 결국 따라나서요.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라면서요. 아미야는 그래도 고맙다고 답해요.
5. 펭귄 로지스틱스의 서비스
미샤를 근위국까지 호송하는 임무가 떨어져요. 슬럼가는 미로 같아서, 로도스만으론 벅차요.
그래서 용문 지리에 밝은 운송 회사 펭귄 로지스틱스가 붙어요. 밝고 수다스러운 안내 담당 엑시아와, 무뚝뚝한 배달원 텍사스요.
엑시아가 가장 안전한 경로를 찾아줘요. 다만 어느 길이든 위험하다는 말과 함께요. 적이 합창단을 만들 만큼 잔뜩 깔려 있대요.
리스캄이 적의 이동 방향을 묻자, 엑시아가 태연히 답해요. 여기로 오는 중이라고요. 로도스는 이미 포위된 상태예요.
리유니온이 슬럼가를 경유해 용문에 숨어든 것도, 목표가 로도스와 똑같이 미샤라는 것도 점점 분명해져요. 그렇지 않고서야 리유니온이 로도스를 공격할 이유가 없거든요.
호송 중에도 미샤는 계속 오해해요. 결국 자기를 근위국에 넘기려는 거였냐고요. 도와주러 온 줄 알았는데, 라고요.
아미야는 변명하지 않아요. 지금은 심정보다 안전이 먼저라며, 미샤를 노린 감염자들이 리유니온의 마크를 달고 있었다고만 알려줘요.
리스캄과 프란카는 뒤에서 투덜대요. 완전히 첸의 심부름꾼이 된 기분이라고요. 근위국은 확보한 감염자가 중요 인물이라는 것조차 이제 와서 알려줬거든요.
그래도 아미야는 근위국이 정보를 다 열지 않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여요. 지금은 미샤를 무사히 데려다주는 것, 그게 로도스의 임무니까요.
6. 낙하물
펭귄 로지스틱스의 길은 상식을 벗어나요. 지도가 가리키는 건 자꾸 '위'예요. 계단을 오르고, 옥상으로 올라가고, 결국엔 옥상에서 뛰어내리라고 해요.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어떤 길이든 지나가라, 펭귄 로지스틱스의 신조 중 하나다.
— 텍사스
그렇게 도망치던 중, 리유니온이 리더급을 데려와요. 미샤를 정확히 노린 지휘관이 나타나요.

스컬슈레더. 미샤를 향한 그의 집착은 섬뜩할 만큼 또렷해요. 중요한 건 그 녀석을 찾은 게 아니라, 그 녀석이 나타났다는 사실이라고 중얼거려요.
동료가 왜 그냥 놓아줬냐고 다그쳐도 스컬슈레더는 태연해요. 어차피 도망칠 수 없을 거라고요. 그 확신이, 이 추격이 이미 짜인 판이라는 걸 넌지시 내비쳐요.
옥상 탈출조차 순탄치 않아요. 리유니온이 낡은 제트팩을 메고 건물 사이를 날아 추격해오거든요. 프란카는 출입구를 용접해 막고, 텍사스는 잠긴 문을 그냥 걷어차서 열어버려요.
간신히 따돌리고 옥상을 넘어 달아나는 와중, 미샤가 묻고 또 물어요. 어째서 같은 감염자끼리 이러는 거냐고요.
7. 위생관리
달아나던 미샤가 갑자기 쓰러져요. 광석병 발작의 전조증상이에요.
이상해요. 미샤가 용문에 온 건 겨우 일주일 전이거든요. 자신이 언제부터 감염자였는지도 잘 모르는 아이인데, 증상은 급성으로 치닫고 있어요.
긴박한 와중에도 리스캄과 프란카는 티격태격해요. 프란카가 죽으면 화장해달라는 리스캄의 농담에, 프란카가 자긴 폭발하는 날 꼭 네 옆에서 터져주겠다고 맞받아치거든요. 이 콤비의 만담은 좀처럼 멈추질 않아요.
아미야는 급하게 응급처치를 하며 마음을 굳혀요. 이 일이 끝나면 미샤를 로도스에 맡겨달라고 용문에 청하겠다고요. 그게 자기들 책임이기도 하다면서요.
리유니온은 이제 잠복조차 버려요. 대놓고 떼로 몰려들어, 길을 막아선 용문 토박이 감염자들까지 짓밟아요. 감염자 구제를 자칭하는 조직이 감염자를 공격하는 거예요.
집이 부서진 감염자 하나가 로도스에게 힘없이 말해요. 여길 벗어나서 대체 어디로 가라는 거냐고요. 여기가 자기 집인데, 전부 망가져 버렸다고요. 그래도 너희 잘못은 아니라면서요.
프란카가 그 대비를 짚어줘요. 로도스는 안 되는 걸 된다고 말하지 않지만, 리유니온은 감염자에게 거짓된 환상을 심어준다고요.
그런 환상에 빠진 감염자가, 거짓말도 못 하고 비위도 맞춰줄 줄 모르는 정직한 토끼 아가씨 말을 믿겠어?
— 프란카
그때, 쓰러졌던 미샤가 조용히 입을 열어요.
…나는 믿어.
— 미샤
8. 못 지킬 약속
마침내 로도스는 미샤를 첸에게 인계해요. 근위국이 검사해서 문제가 없으면, 곧바로 로도스에 넘겨줄 수 있다는 약조와 함께요.
헤어지기 직전, 미샤가 아미야에게 부탁 하나를 남겨요. 자기가 없는 동안 슬럼가 아이들을 보살펴 달라고요.
그리고 아미야도 미샤에게 약속 하나를 청해요.
다음에 저한테도… 인형 만드는 방법, 가르쳐 주세요.
— 아미야
미샤는 웃으며 그러겠다고 해요. 두 사람은 잠깐의 이별이라 믿으며 손을 놓아요.
미샤를 넘긴 뒤에도 리유니온은 물러날 줄을 몰라요. 아미야는 그제야 짐작해요. 미샤에게 용문의 안위와 얽힌 무언가가 있는 게 아닐까 하고요. 정보일 수도, 비밀일 수도 있는 그것을요.
한편, 황야에서는 리유니온의 리더 탈룰라가 용문을 올려다보고 있어요. 곁의 크라운슬레이어가 묻지 않을 수 없어요. 부담도 대가도 큰 이 도시에, 왜 이렇게까지 집착하느냐고요.
탈룰라의 대답은 전략이 아니었어요. 감염자의 손에 있어야 할 것을 되찾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기 위해서라고요. 그렇게 하는 게 더 재미있다면서요.
저 빌딩들이 용문의 상징이라고, 탈룰라는 나직이 되뇌어요. 그러곤 마치 다른 누군가에게 말하듯 자기 이름을 스스로 불러요. 그렇지, 탈룰라, 하고요.
9. 너무 늦어버린
미샤가 용문으로 넘어간 뒤로도 리유니온은 로도스를 놓아주지 않아요. 아미야는 오히려 안심해요. 미샤가 넘어간 걸 저들이 눈치채기 전까지는, 로도스가 미끼가 되어줄 테니까요.
옥상에서 벌어진 마지막 결전에서, 스컬슈레더가 로도스를 막다른 곳으로 몰아붙여요. 동포들의 목숨값을 네놈들의 피로 치르라며, 감염자의 배신자라 부르면서요.
그 말에 아미야가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여요.
먼저 원한을 품고, 먼저 다른 사람들을 다치게 하고, 먼저 폭력을 행사한 건…… 체르노보그에 있던 당신들이잖아요!!
— 아미야
그 무렵 미샤는 호송 중인 첸에게 마지막 부탁을 남겨요. 슬럼가의 감염된 아이들을 보살펴 달라고요. 첸은 감염자는 용문의 시민이 아니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결국 자기 책무는 다하겠다고 답해요.
그러곤 첸은 미샤에게 진실의 한 조각을 알려줘요. 리유니온의 손에 미샤가 넘어가는 것만은 반드시 막아야 했다고요.
바로 그 순간, 첸 곁에 그림자가 드리워요. 정체 모를 인물 하나가 나타나, 재미있는 시나리오를 준비해뒀다고 속삭여요. 시나리오를 더 재미있게 하려면 근위국이 꼭 참여해줘야 한다면서요.
치열한 접전 끝에 로도스는 스컬슈레더를 밀어내요. 그런데 그 순간, 스컬슈레더에게 통신이 들어와요. W가 있던 쪽에서 목표 탈취에 성공했다는 소식이요.
스컬슈레더는 곧장 탈룰라에게 신호를 보내고 퇴각해요. 리유니온이 순식간에,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계획처럼 물러나버려요.
아미야는 그제야 등골이 서늘해져요. 리유니온은 애초에 로도스의 발을 묶어두려고 여기 있었던 거예요. 진짜 목표는 따로 있었던 거고요.
근위국 쪽에서 다급한 보고가 올라와요. 지원 부대가 리유니온에게 발이 묶였고, 미샤를 노린 습격이 이미 성공했다는 소식이요.
믿기지 않는 첸에게, 대원이 덧붙여요. 그 습격을 해낸 적은 단 한 명이었다고요.

설마……
— 첸
에필로그 — 같지만 다른
미샤가 왜 그토록 쫓기는 존재였는지, 그 실마리는 마지막에야 드러나요. 미샤의 부친이 체르노보그에서 가장 유명한 과학자이자, 중요한 정치 인물이었다고요.
용문도, 리유니온도, 어쩌면 미샤 자신에게 남겨진 무언가를 노렸던 거예요. 확실한 증거는 없어도, 첸은 그 애가 리유니온의 손에 넘어가는 것만은 막고 싶었어요.
그러나 이제 미샤는 정체불명의 인물, 'W'의 손에 넘어가버렸어요. 로도스가 온 힘을 다해 지켜낸 하룻밤은, 결국 미샤를 지키지 못한 하룻밤이 되고 말아요.
같은 감염자여도 누군가는 진실을 건네고, 누군가는 거짓을 건네요. 로도스는 슬럼가의 소녀에게 손을 내밀었고, 리유니온은 그 소녀를 빼앗아 갔어요. 인형 만드는 법을 가르쳐 달라던 약속만이, 못 지킬 약속으로 남은 채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