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보그를 삼킨 리유니온은 다음 목표로 극동의 도시국가 용문을 노려요. 각지에서 동시에 튀어나와 순식간에 도시를 장악하고, 법과 질서의 상징이던 근위국 건물까지 통째로 빼앗아가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그 용문을 지키는 칼, 근위국 특별감찰팀장 첸이에요. 냉정하고 강직한 용이죠.
그런데 이번만큼은, 첸이 계속 무언가를 삼키고 있어요. 웨이 장관의 기밀 명령, 버리고 온 동료, 그리고 아주 오래된 자기 자신을요.
1. 물벼락으로 시작하는 재회
첸은 물벼락을 맞고 깨어나요. 어린 시절의 악몽에 잠꼬대를 하던 참이었어요. 컵을 든 건 부호 가문의 아가씨 스와이어, 이곳은 로도스 아일랜드의 선실이에요.
45분 전, 첸은 폭발에 휘말려 기절한 채 팀을 이끌고 이곳으로 도망쳐 왔어요. 스와이어와 로도스 아일랜드가 아니었다면 팀 전체가 리유니온에게 당했을 거예요.

스와이어는 첸을 못 잡아먹어 안달이에요. 근위국은 이미 리유니온 손에 넘어갔고, 그게 다 자리를 비운 첸 탓이라며 몰아세워요. 당장 물러나 특별감찰팀을 넘기라고요.
첸도 지지 않아요. 넌 특별감찰팀을 맡을 그릇이 못 된다며 맞받아쳐요. 둘의 말싸움은 용문 욕설이 오갈 만큼 험악해요.
그런데 스와이어의 등엔 처음 보는 상처가 있어요. 기절한 첸을 안고 벙커로 뛰어들다, 3미터 거리에서 터진 캐스터의 아츠에 등 뒤 벽이 통째로 폭발한 거예요. 앙숙치고는, 목숨을 걸고 첸을 구한 거죠. 호시구마는 그러니 가끔은 좀 잘 대해주라고, 맨날 서로 물어뜯을 필욘 없잖냐고 첸을 나무라요.
2. 연기하는 팀장
첸의 오랜 파트너는 뿔 달린 오니 경감 호시구마예요. 스와이어가 나가고, 호시구마는 요즘 첸이 이상하다고 느껴요.
로도스 오퍼레이터 앞에서 용문의 손실을 냉정하게 들이대는 첸에게, 호시구마는 조용히 한마디 해요. 넌 정치가가 아니라고요.
넌 팀장이자 총경이지, 정치가가 아니라고. 이렇게 연기하는 건 너랑 안 맞아.
— 호시구마
첸은 다 용문을 위해서라고만 해요. 작전은 명령에 따른 것이고, 그 명령의 내용은 기밀이라고요. 근위국에 그런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웨이 장관뿐이란 걸, 호시구마는 금세 눈치채요.
무엇보다, 첸은 아미야와 박사 일행을 그 버려진 도시에 두고 왔어요. 사정을 들은 로도스 오퍼레이터가 분노해요. 근위국은 원래 동료를 그렇게 버리는 곳이냐고요.
첸은 전부 자기 책임이라고 해요. 용문을 지키는 게 최우선이라, 리스크를 끌어안을 수 없었다는 판단이요. 그래도 마음 한구석이 꺼림칙한 걸, 호시구마는 알아채요.
3. 끊긴 통신
그때 기밀 채널로 통신이 들어와요. 첸의 첩보원 XR02가 리유니온에게 포위당했다는 소식이에요.

이미 몇 발을 맞아 더는 못 버틴다면서, 첩보원은 자기 몸에 정보를 남겨두겠다고 해요. 첸은 살아남으라고 소리치지만, 통신은 그대로 끊겨버려요.
XR02! 죽지 마! 명령이다! 살아남아!
— 첸
첸은 로도스 아일랜드에 정식으로 도움을 요청해요. 돌파구를 뚫고, 곧장 묵워 창고로 향해요.
4. 광석병 걸린 건달도, 좋은 사람일까요
호시구마는 그 첩보원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었어요. 10년 지기 아팟. 술잔이나 닦던 술집 주인이었는데, 첸이 몰래 첩보원으로 키운 거예요. 적어도 나한텐 말해줬어야지, 호시구마가 조용히 원망해요.
호시구마가 미끼를 자처해요. 혼자 매복지로 뛰어들어, 겨우 2분 30초 만에 리유니온을 전부 처리해버려요. 근위국 대원들이 악귀가 따로 없다며 몸서리칠 만큼요.
창고 가장 안쪽, 아팟은 눈이 멀고 화살에 꿰뚫린 채로 첸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죽을 각오로 얻어낸 정보의 좌표를 건네고는, 마지막까지 오니 누님 걱정만 해요.
부자들이 출신 갖고 무시하지 않게 옆에 있어달라고요. 그러곤 첸에게 물어요. 저는 좋은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요, 광석병 걸린 건달도요.
첸은 용문에 직접 물어보라고 해요. 그러곤 자신이 용문을 대신해 답해줘요.
"신경 안 써." 아팟, 넌 늘 용문 사람이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용문 사람이다.
— 첸
그제야 첸은 진작 데려와 뒤에 세워둔 호시구마를 불러줘요. 아팟은 그 품에 안겨, 유골은 이미 황폐해진 옛 아지트에라도 좋으니 다른 사람들과 함께 묻어달라 부탁해요.

누님…… 우리는 항상 당신을 무서워했지만, 사실은…… 늘 응원했었습니다……
— 아팟
5. 아무도 없는 집
아팟이 남긴 좌표는 부유층 거주지의 리유니온 거점을 가리켜요. 그런데 놈들은 견고한 거점을 세우려는 게 아니라, '높은 가치의 목표'를 비밀리에 찾고 있는 것 같아요.
리유니온이 문을 부수려던 그 저택은, 하필 첸의 친아버지 일족의 집이에요. 한때 '첸가'라 불리던 곳, 첸이 빅토리아로 유학 가기 전까지 살던 집이요.

집 안, 어릴 적 규칙들이 벽처럼 되살아나요. 장난감은 똑바로 놓고, 집 밖으로 나가면 안 되고, 허락받기 전엔 어른의 눈을 똑바로 봐선 안 된다는 목소리들이요.
첸의 방은 여전히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어요. 날 위해 비워둔 건가, 아니면 그저 불길한 존재라 여겨 손대지 않은 건가. 첸은 씁쓸하게 웃어요. 그리고 벽 너머에서, 누군가의 증오가 배어든 옛 말들이 흘러나와요.
너는 내 사랑을 얻지 못할 거야. 단 한 줌도.
— 나레이션
첸은 오래된 사진 한 장을 찾아내요. 그러곤 문득 깨달아요. 설마 놈들이 찾던 게 이건가.

첸은 사진 속 누군가에게 조용히 말을 걸어요. 내가 널 반드시 도와주겠다고요. 하지만 왜 하필 지금, 왜 하필 여기서냐고요. 물론, 사진은 대답하지 않아요.
6. 위장 작전
근위국으로 가는 길목엔 다이구 플라자가 있어요. 그곳의 리유니온 캐스터가 이상함을 느껴요. 용문은 텅텅 비었고, 비싼 상품은 죄다 가격표만 남았거든요.
누군가 미리 다 치워둔 것 같다는 거예요. 게다가 다른 구역의 리유니온 부대가 마이크는 켜진 채로, 흔적도 없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어요.
그 불안이 채 무르익기 전에, 첸의 근위국이 옥상에서 레펠을 타고 창문으로 뛰어들어요. 첸은 리유니온을 엄폐물째 통째로 터트리라 명령해요. 다이구 플라자가 스와이어네 가문 재산이라는 건 알면서도요.
통신 너머 스와이어가 폭발하고, 180만 용문폐짜리 피아노도 엄폐물로 쓰이다 박살 나요. 첸의 진짜 목적은 따로 있어요. 적이 보고를 끝낼 때까지 기다렸다가, '근위국이 여기 있다'고 온 용문에 소문내게 놔두는 거예요.
보고를 끝냈다면, 네 임무는 이제 끝난 거다.
— 첸
7. 생과 사를 함께
그러다 3층에 숨겨둔 폭발물이 첸의 발밑에서 터져요. 호시구마가 방패로 첸을 감싸고, 두 사람은 계단 아래로 함께 굴러떨어져요.
한쪽 팔이 부러진 호시구마가, 두 층 분량의 잔해를 방패 하나로 짊어져요. 그러곤 첸을 밀어 올려, 또 한 번 목숨을 구해줘요.
그런데 이번엔 첸이 호시구마를 두고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려요. 예전의 첸이라면 득실을 따져 팀을 우선했겠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첸은 처음으로 속마음을 꺼내요. 넌 이제 그냥 호시구마 경감이 아니라, 내 친구이자 파트너인 호시구마라고요.
네 방패는 지금까지 늘 날 받쳐줬잖아. 가끔은 내가 네 방패가 될 수 있게 해줘. 호시구마.
— 첸
호시구마는 그런 대사를 얼굴 한 번 안 붉히고 한다며 웃어요. 그러곤 근위국으로 향하는 첸에게 딱 하나 경고해요. 절대, 어떤 생각에 잠겨 고집대로 굴지 말라고요. 지금의 너 자신 말고 다른 걸 위해 싸우지 말라고요.
부상으로 빠지는 호시구마 대신, 스와이어가 통신으로 시답잖은 농담을 걸어와요. 랭얌 레스토랑 샌드위치 얘기로 험한 분위기를 슬쩍 풀고는, 끝에 한마디를 남겨요. 목숨이 가장 중요하니, 눈앞의 일에 목숨 걸지 말라고요.
8. 근위국을 되찾으러
근위국 건물 앞, 첸이 대원들 앞에 서요. 우리는 폭도도 범죄자도 아니라고, 복종과 직책과 결의를 기억하라고요.

용문근위국으로서, 우리의 것을 되찾자.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 첸
그런데 건물 안이 이상하리만치 조용해요. 아래층엔 한 놈도 없고, 위로 갈수록 리유니온이 늘어나지만 공격할 기미가 없어요. 마치 낮잠이라도 자는 것처럼요. 지휘소는 함정이 뻔한 옥상에 있고요.
9. 악마들
옥상에서 기다린 건 리유니온의 소년 지휘관 메피스토와, 그의 과묵한 스나이퍼 파우스트예요. 감염자를 체스 말처럼 정확하게 부리는 자죠.
메피스토가 아츠를 쓰자, 쓰러진 리유니온들의 오리지늄이 몸을 꿰뚫고 자라나요. 상처가 치유되고 고통도 못 느끼는 '죽지 않는 호위'로 개조되는 거예요.
하지만 첸도 준비가 돼 있었어요. 근위국의 감염자 스물한 명 중 넷은 첸이 심어둔 첩자고, 그중 한 명이 메피스토의 계획을 통째로 흘려준 거예요. 메피스토가 파우스트를 구했다고 믿은 것부터가 첸의 판이었어요.
메피스토는 첸을 회유하려 들어요. 너도 결국 용문한테 쓰이다 버려질 거라고요.
너도 결국엔 그 사람들한테 체스말 처럼 쓰이다가 버려질 거란 건 알고 있어?
— 메피스토
10. 뽑히지 않는 검
첸에겐 웨이 장관이 빌려준 검이 있어요. 참룡의 검, 코드네임 적소예요. 뽑을 가치가 있을 때 말고는 함부로 살기를 내뿜지 말라던, 평범하지 않은 무기죠.
첸은 발도를 시도하지만, 적소는 검집에서 나오려 하지 않아요. 파우스트의 십자포화 속에서, 첸은 검을 반만 뽑아 겨우 화살을 쳐내며 버텨요.

메피스토는 첸을 장기말이라 조롱하지만, 첸은 잘라 말해요. 자신은 누구의 말도 아니라고요.
이런 장기판은 내 성에 맞지 않아. 꼬맹아, 난 누군가의 장기말이 아니라, 용문의 칼날이다.
— 첸
그런데 메피스토는 첸의 약점을 정확히 알고 있어요. '리더'가 알려줬다며, 첸이 검을 못 뽑는 걸 꿰뚫어봐요. 결국 첸은 충격파에 늑골이 부러진 채 밀려요.
메피스토의 오리지늄 아츠는 오직 감염자에게만 통해요. 그런데 첸에게 묻은 가루를 보곤, 무언가 알아챈 듯 의미심장하게 중얼거려요. 첸이 대체 무엇인지, 그 답을 이야기는 끝내 명확히 밝히지 않아요.
11. 하늘에서 온 원군
첸이 함께 죽는 것까지 각오한 순간, 하늘에서 로도스 아일랜드의 항공기 '나쁜 녀석들'호가 나타나요.

불을 다루는 오퍼레이터 블레이즈가 강하하고, 아미야가 아츠로 메피스토 호위들의 지워진 감정을 되살려요. 감정을 잃은 감염자들이 갑자기 소리 없이 통곡하기 시작해요.
아미야는 메피스토를 향해 물러서지 않겠다고 선언해요. 다만 당신은 나의 적이 아니라며, 없앨 것은 오직 당신의 원한과 악독함뿐이라고요.
메피스토, 지금 이 전장에 외롭게 홀로 서있는 건, 바로 당신이에요!
— 아미야
첸은 아미야에게 사과해요. 전장이 시끄러워 못 들었다며 아미야가 시치미를 떼주자, 첸은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를 삼켜요. 그리고 이번엔 박사에게 지휘를 맡기기로 해요. 한 번, 너를 믿어보겠다면서요.
12. 붉게 물들어라
블레이즈는 파우스트의 투명 석궁병들, '환영 석궁병'을 잡아내요. 자기 피를 뿌려 불을 붙이는 기술로, 공기 굴절 위장을 통째로 태워 드러내버려요.
박사의 지휘와 로도스의 엄호로 마침내 공간이 열려요. 첸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참룡의 검을 뽑아 열몇의 호위를 단 한 번에 베어넘겨요.
붉게 물들어라……
— 첸

메피스토와 파우스트는 연쇄 폭발을 틈타 퇴각해요. 메피스토는 끝까지 이해하지 못해요. 소집해둔 리유니온 스무 개 소대와 두 개 대대가, 대체 왜 아직도 오지 않는 건지요.
배신인가, 정보가 샜나. 메피스토는 탈룰라 누나가 이런 짓을 꾸몄을 리 없다며 스스로를 다독여요. 그 이름이, 이 밤의 진짜 무게를 처음으로 슬쩍 드러내요.
13. 표적치료
통신 너머로 웨이 옌우와 켈시의 목소리가 겹쳐요. 그리고 이 모든 게 처음부터 웨이 옌우가 짠 계획이었음이 드러나요.
아미야를 버려진 도시에 둔 것도, 근위국을 일부러 고립시킨 것도, 전부 리유니온이 방심하고 전 병력을 끌고 나오게 만드는 미끼였어요.
흩어져 있던 리유니온을 용문 전역의 봉쇄망으로 한곳에 몰아넣고, 미리 매복한 정예로 통째로 섬멸하는 것. 도시라는 환부에서 병소만 골라 도려내는, 그야말로 '표적치료'예요. 첸이 계속 삼켜왔던 그 기밀 명령의 정체가, 바로 이거였던 거죠.
로도스 아일랜드는 이용당한 걸 알아요. 하지만 지금은 증거가 부족하고, 스와이어가 추격병을 함께 막아준 것도 사실이라, 아미야는 분노를 삼켜요. 웨이는 태연히 말해요. 결과만 만족스러우면 된다고요.
용문의 문제는 용문 스스로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어야지. 그게 바로 가장 중요한 걸세.
— 웨이 옌우
그러곤 박사에게 덧붙여요. 우리가 비록 친구는 아니지만, 적어도 아직 적은 아니지 않냐고요. 리유니온을 완전히 섬멸하기 전까진 협력은 유효하다며, 로도스와 용문의 위태로운 동행은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이어져요.
에필로그 — 시작에 불과한 밤
장관 사무소, 웨이 옌우와 그의 오랜 동반자 후미즈키가 마주 앉아요. 승리한 밤인데도 웨이의 표정은 어두워요.
이건 리유니온의 총공격이 분명한데, 왜 정작 그들의 지도자 탈룰라는 용문에 나타나지 않았을까. 우르수스 제국 전체에 수상한 기운이 감돌아요. 이 모든 게 그저 하나의 시작일 뿐이라는 예감이요.
후미즈키가 오래된 이름을 꺼내요. 20년 전 우르수스의 정복을 막아낸 그 싸움, 만약 그때 졌다면 지금 그 자리에 앉은 건 웨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을 거라고요. 카셰이 공작이라고요.

후미즈키는 탈룰라에게서 왠지 그 사람의 모습이 느껴진다고 해요. 웨이의 대답이, 이 밤 마지막 진실을 조용히 내려놔요.
하지만 그는 이미 죽었다. 탈룰라의 손에 살해당했지.
— 웨이 옌우
냉정한 용문의 칼은, 동료를 버리고 오래된 집까지 베어가며 리유니온을 완벽한 함정에 몰아넣었어요. 하지만 그 완벽한 판을 짠 건 칼을 쥔 자신이 아니었고, 삼켜야 했던 명령과 죄책감과 옛 상처는 여전히 첸의 몸속에 남아 있어요. 그리고 이 긴긴밤은, 웨이 옌우의 예감처럼 아직 시작에 불과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