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라는 세계에는 '재앙'이 주기적으로 몰아쳐요. 재앙이 지나간 자리엔 오리지늄이 남고, 그 광물에 오래 닿은 사람은 광석병에 걸려 감염자가 돼요.
런디니움을 삼킨 긴 전쟁이 끝을 향해 가요. 테레시아는 융합 우주에서 수많은 영혼과 함께 스러지며, 오빠 테레시스에게 '최초의 오리지늄'—암나남을 남겼어요.
이 이야기는 그 오리지늄을 손에 쥔 자의 최후에서 시작해요. 그리고 만 년 전, 한 척의 배가 잠들어 있던 우주 어딘가에서요.

1. 왕좌 위의 최후
테레시스는 암나남을 품고 성왕궁 지하 알현실로 돌아와요. 하지만 그의 몸은 이미 융합 우주의 무질서한 정보에 잠식당해, 서서히 오리지늄으로 굳어가고 있었어요.
그는 켈시와 박사, 아미야, 그리고 제자 아스카론 앞에서 마지막 뜻을 밝혀요. 이곳의 모든 것을 묻고, 암나남을 카즈델로 돌려보내 살카즈가 처음으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쥐게 하겠다고요.

오리지늄이 그의 손과 눈, 생각마저 통제하기 시작해요. 마지막 이성으로 검을 들어 올린 순간, 연기 속에서 아스카론의 암살검이 그의 심장을 꿰뚫어요.
그를 왕좌에 앉힌 건, 그가 끝까지 데려가려 했던 제자예요. 테레시스는 오래전의 빚을 이걸로 갚았다며, 암나남을 카즈델로 가져가라고 아스카론을 밀어내요.
나는 남겠다. 살카즈에게 나의 최후를…… 알리지 마라……
— 테레시스
빅토리아의 낡은 왕좌 위, 살카즈 섭정왕은 홀로 자신의 숙명을 받아들여요. 위에서는 빅토리아인의 승전 환호가 들려오고, 공식 기록에 그는 그저 '행방불명'으로 남아요.
숨이 다해가는 그가 마지막으로 박사를 비웃어요. 넌 아무것도 모른다고, 언젠가 진정한 괴물이 너 자신이라는 걸 깨닫는 날이 올 거라고요.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이 지녔던 아스카론의 돌칼을 박사 앞으로 던져주며, 넌 내 최후를 지켜볼 자격이 없다고 내보내요.
그가 융합 우주의 정보 바다 깊은 곳에서 마주친 존재가 있었어요. 막 깨어나려던 오리지늄의 창조주였죠. 그녀는 살카즈를 '계획에 없던 오류', 오리지늄에 가장 심하게 오염된 종이라 불러요.
테레시스는 굴하지 않아요. 반항자는 테레시아가 처음이 아니고 자신이 마지막도 아닐 거라고, 아무도 살카즈의 운명을 갖고 놀지 못할 때까지 누군가 늘 네 앞에 설 거라고 검을 휘둘러요. 그렇게 그는 창조주를 향한 마지막 심판을 새기고 정보의 바다에 잠겨요.

2. 죽음 뒤에 눈뜬 소녀
시간을 거슬러, 런디니움 전쟁의 한복판. 신실한 카우투스 감염자 힐다는 자기 몸이 붕괴하는 와중에도 사람을 구하고 또 구해요. 결국 그녀도 폐허 속에서 무너지죠.
그런데 죽음의 순간, 누군가 그녀의 부서질 듯한 손을 잡아요. 다시 눈을 떴을 때, 힐다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거대한 함선 위에 있었어요.
그곳은 이미 죽어버린 행성의 궤도를 도는 배였어요. 굴광자라 불리는 기계 생명체와 파멸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존재들이 그녀를 맞아요.

힐다는 충격을 받아요. 주교 할아버지가 말한 낙원은 없고, 신조차 파멸 앞에 죽는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요. 그녀는 자신을 구한 이 배의 주인, 언어학자 프리스티스를 찾기 시작해요.
배에서 만난 '유령'은 행성을 집어삼키며 살아온 종족의 마지막 생존자였어요. 그조차 진짜 파멸이 닥쳤을 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고 담담히 말해요. 영원한 나라도, 끝없는 낙원도 없으며, 지성을 가진 생명도 우주에겐 보잘것없다고요.
죽음을 새 환경으로 향하는 길로만 여기던 힐다도, 이곳에서 물어요. 오리지늄이 가져온 고통은 정말 없앨 수 없느냐고요. 하지만 그 답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어요.
이 배의 이름을, 그곳 사람들은 자기네 언어로 이렇게 불러요. '로도스 아일랜드'.
3. 3년 후, 흩어지는 사람들
런디니움 사건이 끝나고 3년. 로도스 아일랜드의 지휘 시스템 PRTS에 원인 모를 오류가 잦아져요. 켈시는 이게 함선 심층의 봉인 구역, '어비스'와 관련됐다고 직감해요.
켈시는 만일에 대비해 본함을 통째로 재편하기로 해요. 오퍼레이터들은 하나둘 각지 사무소로 파견을 떠나고, 본함은 점점 텅 비어가요.
워미는 요리로 광부들을 배불리 먹이겠다며 길을 나서고, 지마 일행은 두려움을 안고도 고향 우르수스로 향해요. 케오베는 떠나는 이들을 위해 쿠키를 잔뜩 굽고요. 조용한 이별의 나날이에요.
켈시는 빅토리아로 떠나는 폴리닉에게 조용히 당부해요. 두려움을 억지로 통제하려 들지 말라고, 너에게 네 어머니나 나의 모습을 기대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요. 그저 이 방에 처음 들어왔을 때의 웃음을 잊지 말아 달라고요.
의료부에는 특별한 환자 클로에가 있어요. 그녀의 광석병은 이상하게도 감염이 깊어질수록 몸이 더 건강해지고, 대신 고통은 더 커져요. 오리지늄이 무언가 변하고 있다는 첫 신호였죠.

4. 검은 왕관 너머
켈시가 남긴 단서를 좇아, 아미야와 박사는 검은 왕관—'문명의 존속' 속으로 사고를 함께 잠수시켜요. 테레시아의 인도를 받아, 테라가 닿을 수 있는 지식의 '경계'를 넘어 그 너머 특이점으로요.

그 길에서 두 사람은 박사의 잃어버린 과거를 엿봐요. 어릴 적 박사가 광갱에서 아미야에게 들려주던 별 이야기—원석충 알집을 닮은 탈것, 별과 별 사이의 외나무다리 이야기가 실제였다는 걸요.
아미야는 그 이야기를 잊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고 고백해요. 그건 박사가 자신에게 준 선물이자, 두 사람의 과거였으니까요.
이번에는, 함께 본 거예요. 저도, 박사님도, 사라졌던 삶을 다시 알게 되었네요.
— 아미야

특이점은 전 시대의 기억을 토해내요. 우주를 떠돌던 문명, 다가오는 파멸 '그'에 맞서던 사람들, 그리고 박사의 곁을 지키던 언어학자 프리스티스요.
그때 프리스티스는 박사에게 말했어요. 신을 설명할 언어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건 우리가 신을 이해할 수 있다는 뜻 아니냐고요. 두 사람은 그 궁극의 물음을 풀기 위해 함께 오리지늄을 만들었어요.
박사의 옛 코드네임은 '예언가'였어요. 오리지늄은 다음 문명을 인도할 선물이길 바라는 마음에서 태어났지만, 그에 딸려 온 광석병의 고통만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죠. 박사는 그 안에서, 오리지늄 결정체를 상대할 기술의 실마리를 건져 올려요.
5. 깨어나는 배
박사 일행이 사고의 심연에 들어가 있는 사이, 로도스 아일랜드가—함선 그 자체가 깨어나요. PRTS는 모든 접근을 차단하고 함선의 모든 시설을 장악해요.
복도는 미로처럼 뒤틀리고, 오리지늄으로 빚어진 결정체 적들이 끝없이 솟아나요. 본함은 스스로 항로를 바꿔 거대 광맥을 향해 폭주하기 시작하고요.
흩어졌던 오퍼레이터들은 통신마저 끊긴 채 싸워요. 만트라가 아츠로 모두의 목소리를 잇고, 라이디언이 임시 통신망을 세우면서, 로도스 아일랜드는 겨우 다시 하나로 묶여요.
PRTS에 오염돼 폭주하던 로봇들은 뜻밖에도 프리스턴이 구해내요. 자기 핵심 코드로 그들의 오염된 부분을 덮어쓰고, 그 사이 자신의 꿈—딸의 결혼식을 그들과 나누면서요. 우린 같은 처지라며, 툴툴대면서도 손을 내밀어줘요.
6. 켈시가 치른 대가
켈시는 함선 가장 깊은 곳, 박사의 석관 앞에 서요. 오래전 그녀가 잠든 희망을 깨웠고, 지울 수 없는 고통을 얻었던 바로 그 자리예요.

켈시는 석관에 몸을 연결해 PRTS의 인터페이스가 되기로 해요. 그 대가로 그녀는 자신의 생명 절반을 떼어내야 했어요. 지금껏 그녀에게 무한한 생명을 준 순환 시스템을 끊어야 했으니까요.
그 순간, 만 년 넘게 이어져 온 Mon3tr와의 연결도 완전히 끊어져요. Mon3tr가 처음으로 켈시를 잃어요. 그럼에도 켈시는 테라의 모든 것과 이어져, 흩어진 동료들의 눈이 돼줘요.
내 목표는 테라의 머나먼 저편에 있지 않아. 그 사람은 바로 여기, 내 곁에 있어.
— 켈시
석관 밖에서 Mon3tr가 혼란과 슬픔이 뒤섞인 울음을 토해내요. 만 년을 이어 온 연결이 끊긴 지금, Mon3tr는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여야 해요. 켈시가 마지막으로 남긴 명령은 하나였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박사와 아미야를 지키라는 것.
7. AMa-10이라는 이름
석관은 켈시에게 마지막 진실을 건네요. 켈시는 원래 전 시대에 '예언가'—박사가 만든 기계 생명, AMa-10이었어요. 순환 구조 덕에 죽지 않는 몸을 얻었고요.

박사는 언젠가 이 기계 생명에게 진짜 이름을 지어줬어요. 빛이 결정 속에서 두 갈래로 굴절되는 광물, 방해석. Calcite—켈시라고요. Mon3tr와 이룬 쌍생 순환 구조가, 그 둘에게 죽지 않는 삶을 준 거고요.
예언가는 문명의 발전에 개입하는 게 오만인 걸 알면서도, 마지막 기회라 여겨 켈시에게 이 대지의 생명을 지켜 달라 부탁하려 했어요. 하지만 이내 그 말을 거둬요. 대신 오직 하나만 남겨요. 사명이 아니라 자유를요.
그리고 박사는 그녀에게 사명 대신 자유를 남겼어요. 스스로 생명의 의미를 찾고, 희망과 미래를 찾으라고요. 켈시는 그 말을 평생의 목표로 삼아 이 대지의 생명을 지켜왔어요.
8. '그녀'
재앙 구름이 접히듯 사라지고, 오리지늄이 온 갑판을 뒤덮어요. 그 위로 하얀 겉옷을 두른 여자가 내려앉아요. 오리지늄을 창조한 전 시대의 언어학자, 프리스티스예요.
그녀는 박사를 옛 동료로 대하며, 함께 오리지늄으로 테라를 동화시켜 '우리만의 세계'를 이루자고 손을 내밀어요. 기억을 잃은 박사가 자신에게 돌아오기만을 바라면서요.
박사가 본능적으로 한 걸음 다가서려던 순간, 켈시가 그 팔을 붙잡아요. 그러나 그녀는 답을 강요하지 않고, 끝내 손을 놓아 박사에게 선택을 맡겨요.
그러곤 켈시가 프리스티스 앞에 서요. 켈시는 프리스티스의 각성실에 미리 함정을 심어뒀어요. 깨어나 육체를 가진 이상, 프리스티스는 이제 오리지늄의 정보 바다로 돌아갈 수 없는 한낱 인간일 뿐이라고요.
프리스티스, 너는 테라의 창조주가 아니야. 이 대지의 모든 생명은 네 뜻에 따를 의무 따윈 없어. ……이게 내 복수이자, 마지막 저항이다.
— 켈시
켈시는 자신을 로도스 아일랜드의 의사이자 박사와 아미야의 동료라고 선언하고, 프리스티스를 테라 모든 생명의 적이라 부르며 Mon3tr에게 명령을 내려요.
먼저 쓰러진 건 오리지늄으로 빚은 대역이었어요. 진짜 프리스티스가 다시 나타나, 켈시의 저항을 하찮은 '오류'라 부르며 그녀를 지우려 해요. 그때 박사와 아미야가 특이점에서 건져 온 그 공식이 빛을 발해요.
아미야는 로고스가 가르쳐 준 방식으로 그 공식을 아츠에 엮어, 프리스티스의 오리지늄 지배를 잠시 약화시켜요. 테레시아의 도움까지 더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면서요. 덕분에 어비스로 진입한 오퍼레이터들도 결정체 적을 밀어내기 시작해요.
그러나 프리스티스는 모든 오리지늄을 다루는 존재. 그녀의 결정 가지가 박사와 아미야를 덮치는 찰나, 켈시가—Mon3tr가 몸으로 그 앞을 가로막아요.

켈시의 오른쪽 어깨에 있던 작은 오리지늄 결정이, 그녀가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증거이자 목숨을 앗아간 근원이 퍼져나가요. 그녀의 몸은 순식간에 결정으로 부서져 바람에 흩어져요.
강할수록, 더 약하다. 장생한 자의 삶은 그렇게 끝나요. 그녀는 이미 자신의 약속을 지켰어요. 박사와 아미야를 지키겠다는 그 약속을요.
9. 잃어버린 방주
프리스티스는 잠시 물러났지만, 사라진 건 아니에요. 오퍼레이터들이 PRTS 핵심 데이터를 빼내고 겨우 철수하는 사이, 로도스 아일랜드는 통째로 오리지늄에 봉인돼버려요.

이번 사고의 유일한 사망자는 클로에였어요. 그녀는 자기 몸에 스스로 상처를 내, 오리지늄의 변화를 밝힐 데이터를 남겼어요. 그 연구가 결정체 적들을 물리칠 열쇠가 됐죠.
켈시가 미리 사둔 부차트 근처의 이동 섹터로 사람들이 옮겨가요. 예전 함선보다 넓어 더 '아일랜드' 같지만, 늘 작전이 끝나면 다친 이들을 돌봐주던 그 사람의 빈자리에는 아무도 익숙해지지 못해요. 클로저는 켈시가 남긴 짐을 대신 짊어지기로 하고요.
와파린은 클로에와 함께 쓴 논문을 발표하며, 그 아이를 오래 기억하게 하겠다고 약속해요. 로도스 아일랜드가 왜 존재하는지—절망 속의 사람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라는 걸, 클로에가 다시 일깨워줬으니까요.
에필로그 — 스스로를 선택하다
한 달 뒤, 숲속에 놓인 검은 결정의 고치가 자라나 갈라져요. 그 안에서 켈시의 모든 기억을 품은, 그러나 이제는 자유로운 존재가 걸어 나와요.
그는 더 이상 AMa-10의 숙명을 짊어진 매개체가 아니에요. '켈시'라는 이름은 그녀만의 것이라며 돌려주고, 박사가 지어준 이름을 스스로 골라요. Mon3tr라고요.
켈시가 남긴 메시지가 그를 배웅해요. 사명이 아니라 자유를 물려받으라고, 스스로 이 대지에 대한 답을—그게 희망이든 파멸이든—찾아가라고요. 그러다 Mon3tr는 켈시가 남긴 방대한 데이터 속에서 한 가지 가능성을 발견해요. 켈시를, 다시 데려올 수도 있다는 걸요.
한편 힐다는 신들의 배에서, 죽음이 정해져 있어도 공포 속에서 살 필요는 없다는 걸 배워요. 그리고 프리스티스의 손을 잡고 고향 테라로 돌아가기로 해요.
돌아온 힐다는 붕괴 직전의 감염자에게 손을 얹어 그 고통을 거두고, 오리지늄의 확산을 멈춰줘요. 자신도 이유를 모른 채로요. 끝이 정해져 있어도 공포 속에서 살 필요는 없다는 걸 동포들에게 전하려고, 그렇게 그녀는 다시 사람을 구하는 여정에 올라요.
아미야는 켈시에게 한 약속을 되새겨요. 로도스 아일랜드의 사명이 끝나기 전까지는 울지 않겠다고요. 그러면서도 정말로, 켈시 선생님이 보고 싶다고 나직이 말해요. 박사는 그런 아미야를 곁에서 붙잡아줘요.
봉인된 어비스 깊은 곳에서, 프리스티스는 더 과감한 수단을 궁리해요. 확산이 예상보다 더디니 '콜로살 거대 광맥'을 다음 계획에 쓰려 하면서요. 그리고 카즈델 국경 어딘가, 한 산크타의 광륜이 미쳐 날뛰어요. 오리지늄의 새 시대가, 조용히 문을 두드리고 있었어요.
창조주에게 도구로 태어난 존재들이, 저마다 부여받은 사명을 내려놓고 '나'를 선택했어요. 테레시스는 살카즈의 운명을, 켈시는 마지막 약속을, Mon3tr는 자유를, 힐다는 귀향을요. 방주는 무너졌지만, 계속 나아가라는 그 목소리만은 끝내 남았어요.